|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
언 귀를 비빈다.
살아 남아야지,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
할 말은 미리미리 삼키고
생수를 마신다.
바닥난 하늘을 본다.
흐림.
함박눈이 내리려나?
꼬리를 감춘 사람들이 얼핏 온화해 보인다.
1974년, 무죄?
제 죄명을 모르시다니요?
제 땅에 악착같이 살아 있잖아요?
제 땅에서 죽으려는, 죽을 죄를 졌잖아요?
무슨 소릴, 제 땅이라니? 이 땅은 공동 소유야. 넌 무죄야, 죄가 없어.
정말 죄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 고마움 저 혼자 가져도 좋을까요?
무인도를 위하여
바닷물이 스르르 흘러 들어와
나를 몇 개의 섬으로 만든다.
가라앉혀라,
내게 와 죄짓지 않고 마을을 이룬 자들도
이유 없이 뿔뿔이 떠나가거든
시커먼 삼각 파도를 치고
수평선 하나 걸리지 않게 흘러가거라,
흘러가거라, 모든 섬에서
막배가 끊어진다.
- 무인도를 위하여 전문 / 신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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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철 시인의 초기작품이다. 그는 국민대 교수이기도 하다. 국민대 학창시절 시에 대해서 그에게 배운 적이 있다. 매섭고, 모질게 시의 교육을 받았고, 신대철 교수가 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지금도 내 뇌리에 박혀있다.
“자네가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이제 시인이네. 새로운 시의 길을 걸을 것이네. 하산하게” 무슨 검술을 배운 것도 아닌데...10년전 그 사건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너무 자주 찾아가서 배울려고 해서 못 찾아오게 하려는 ‘유인술’이었는 지도 모르지만, 입에 발린 말로 형식적 칭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신대철 시인이 나에게 했던 말이기에 나는 그 말을 놓지 않고 있다. 그래도 시는 어렵다. 10년전 내가 썼던 시 중에서 ‘a와 the’ 작품을 많이 칭찬했었다. 신대철 교수는 그 작품을 ‘언지 던지’라고 불렀다.
나는 이후로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 작품을 많이 읽었다. 이 작품은 10년을 읽어도 솔직히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번에 또 읽어도 잘 이해가 안간다. 그때 신대철 시인에게 직접 시의 핵심 혹은 이 시가 말하고 싶은 속뜻이 무엇인지 물어볼 것을...라고 10년동안 생각했다. 생각할 때 마다 따라온 대답은 안 묻길 잘했다이다. 물었다면 대답을 안해줬을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시를 느껴야하는 것이지, 시인에게 그것을 묻는 것은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종종 신대철 시인은 말했다. 시는 시인이 쓴 그 다음에는 독자들이 그 시를 갖는 것이라고.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사족이 길었다.
내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첫 번째 문장과 마지막 연의 첫 번째 문장 때문이다.
이 시인은 “개나리꽃이 피지 않는 걸 보고 봄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개나리꽃이 피지 않은 것을 보고 겨울인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 즉, 긍정적 시각은 2연에서도 이어진다. 제땅에서 죽을 죄를 지었다는 자백에 대해 “공동소유”라는 말을 한다. 나는 이 말을 사회, 지구, 혹은 인류적 관점에서 인간을 조명하는 철학적 단어가 아닐까싶다.
무인도를 위하여 바닷물이 스스르 흘러서 나를 몇 개의 섬으로 만든다고 했다. 나는 곧 무인도라는 말인데, 유형의 개인과 개인, 마을과 마을, 나라와 나라를 지칭하는 상징적 단어가 바로 섬이 아닐까 싶다.
시인은 “내게 와 죄짓지 않고 마을을 이룬 자들도 이유 없이 뿔뿔이 떠나가거든”이라고 말한다. 떠나가려거든이 아니고 떠나가거든이다. 떠나간 이후에 시커먼 삼각파도가 치는 것이다.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바닷물이 스스르 흘러와 몇 개의 섬이 되듯이 마을이 몇 개의 섬으로 나뉠지라도, 결국 그 뿌리는 하나라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시인은 2연에서 “공동소유”라고 말하고 있다. 바닷물이 있어서 서로 떨어져 무인도로 보일지라도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이렇게 해석한다. 혹 나의 이 해석이 신대철 시인의 본 의도와 방향이 많이 다를지라도 ‘공동소유’로서 무죄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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