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뒤에 숨은 좌파
작년 초, 수학의 정석 집필자 홍성대 교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상산고등학교의 교무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바로 역사 교과서로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선택하는 것은 엄연히 각 고교의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채택하려던 고교들은 좌파단체들의 협박에 그 자유를 탄압당했고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 반민족, 독재찬양 등의 온갖 모욕을 받았다. 좌파적 이념이 가득찬 다른 교과서는 민족주의 뒤로 숨어 비판을 피했다. 그 누구도 각 고교의 자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민족의 이념에 거스른 교학사에 대한 분노는 국민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이다.
이영훈 교수 등의 탈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학자들은 이런 현실에도 용기를 내어 민족주의를 건드렸다. 새삼스럽지만 이영훈 교수는 이미 민족주의의 광기에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사료에 근거한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이영훈 교수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발길질, 그리고 깨진 달걀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민족에 반대하는 생각을 다수의 폭력으로 매장하는 사회,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이것을 자위행위에 비유하였다. 겨우 한 순간의 싸구려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진실을 폭력으로 덮는 광기, 이것이 근대에 독립 운동을 위해 국민들의 힘을 모으고자 만들어진 민족주의의 말로이다. 일제가 이 땅에서 나간 지 벌써 7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공동체의식이던 민족이념은 아직도 남아 좌파의 나팔수가 되어 대한민국을 괴롭히고 있다.
그것의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조선왕조는 과거에 존재했던 나라들과 같이 여러 모순으로 쇠퇴해 나라가 망했지만 그것을 전부 다 일본의 탓으로 돌리는 문화적 민족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우리 내부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위행위에 몰두하게 만든 것이다.
둘째로, 일제시대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무런 근거 자료가 없는 여러 설이 난무하여 그것이 결국 교과서나 각종 매체에서 정론으로 다루어 졌다. 그리고 그렇게 날조된 기억은 좌파 작가들에 의해 상업화되면서 성역으로 변해 갔다. 결국 통계와 사료를 제시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야기하면 광기어린 대중에게 둘러싸여 버리는 사태를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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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교수 등 탈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학자들은 용기를 내어 민족주의를 건드렸다. 사료에 근거한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이영훈 교수에게 돌아온 것은 비난과 발길질이었다./사진='대한민국 역사'의 표지(이영훈 교수 저) |
셋째,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다. 3.1운동 중에 체포되어 재판 받는 과정에서 일본인 검사마저 논파한 한용운 선생의 자유에 대한 역설을 생각해 보자. 이영훈 교수가 역사의 시작과 끝은 이기적인 인간 개인이라고 '대한민국 이야기’의 머리말에서 주장한 것을 생각해 보자. 개인의 자유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도 독립운동을 선택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는 개인도 있었지만 일본의 교육을 받고 일본인으로 사회화되어 그 시대에 순응하여 평범하게 살아가거나 일제 지배 하에서 출세한 평범한 개인도 있었다. 윤치호 선생 같은 시대의 한계(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인류의 현자들도 넘지 못한 정도로 시대의 한계란 넘기 어려운 것이다.)를 넘지 못한 반쪽짜리 선각자도 있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이런 개인의 자유마저도 탄압하고 건국세력을 친일파로 몰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자 하는 좌파의 좋은 나팔수가 되었다.
넷째, 위안부 문제에 얽힌 여러 가지 문제를 단지 민족의 비극이라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조선인 위안부 20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숫자까지 나왔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임과 동시에 당시 사회문제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급격한 도시화로 농촌의 여성이 도시에 나왔음에도 그들을 수용할 직장이 없어 여성들이 취업을 가장한 위안부모집, 즉 취업사기에 너무 손쉽게 넘어갔고, 일본에서 이전부터 시행되었던 공창제의 문제, 그리고 조선이나 일본이나 아주 후진적이었던 당시 여성 인권의 문제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민족주의적, 감정적이 되었다. 이것을 이용하여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여러 친북 의혹이 있는 문제가 많은 단체이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의 뒤에 숨어 자신들의 성향을 감추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시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역설하다가 온갖 고난을 겪은 성서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같이, 이승만도 조선의 문제점을 역설하다가 감옥에 갔으며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기틀을 닦았던 성서의 느헤미야와 같이 이승만도 이 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이런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영웅이자 누구보다도 일제를 혐오했던 이승만을 좌파의 나팔수 민족주의는 소인배, 친일파로 매도하였다.
마지막으로 현대사 또한 좌파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정작 좌파의 대부인 마르크스는 민족주의를 혐오했지만 한국의 좌파들은 민족주의를 떠받들며 현대사를 나쁜 과거사로 치부하고 청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역사가는 조작된 과거사가 아닌 올바른 과거사를 사료에 기초하여 대중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줘야 한다고 하지만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대학살자 마오쩌둥의 역사관에 기초한 책이 필독서로 지정되는 게 현실이다.
결국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 노무현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고 대한민국은 잘못된 국가, 과거사 청산, 제 2의 건국 등등을 말하게 만들었다. 결국 노무현은 '소급입법금지원칙’, '연좌제 금지 원칙’과 같은 헌법의 원칙들은 다 무시한 과거사 특별법, 친일재산환수법과 같은, 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엉터리 법들을 만들었다. 좌파들은 그렇게까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도 교단에서 좌편향 교사들이 세뇌하고 있는 왜곡된 역사관, 즉 '대한민국은 친일세력에서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사대주의자들이 만든 나라이며 그들에 의해 민족분단과 미국의 신 식민지배가 고착화되었다’을 배우며 자라난 아이들이 결국 좌파들이 선동하는 광기에 가득 찬 촛불집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민족이란 근대에 만들어진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에 불과하다. 게다가 민족주의는 일본으로부터 한국이 독립함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이제 민족과 같은 허상의 개념은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민족을 팔아 북한을 옹호하고 자신은 민족주의 뒤에 숨는 좌파에게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역사로부터의 자유, 이기심을 지닌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낸 시장의 역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는 산 자의 것이다. 결코 죽은 자의 것이 아니다. /이태엽 중앙대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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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영웅이자 누구보다도 일제를 혐오했던 이승만을, 좌파의 나팔수 민족주의는 소인배 및 친일파로 매도했다./사진=연합뉴스 |
(이 글은 자유경제원 '청년함성'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