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탈출, "불평등은 악이기에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
앵거스 디턴은 소비함수 추정 등 소비와 빈곤, 복지에 대한 분석 공로로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다. 앵거스 디턴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자 작년 9월에 발간되었던 앵거스 디턴의 대표 저서 『위대한 탈출 :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는 지난 한달 간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앵거스 디턴의 저서가 왜곡 번역되었다면서 비판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디턴이 언급한 Inquality(불균등)의 개념을 오해하고 자신들의 신앙과도 같던 양극화-불평등 논리가 깨어나가자 이에 대한 반발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에 시장경제제도연구소는 지난 3일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앵거스 디턴 『위대한 탈출』의 의의와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빈곤탈출로서의 ‘위대한 탈출’, 성장과 불균등, 한국에서의 함의에 대한 고견을 나누었다. 아래 글은 패널로 참석한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앵거스 디턴 노벨경제학상 수상 의의와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

거대한 탈출과 대분기

최근 서양의 침체와 동양(중국)의 부상은 국가 또는 문명의 흥망성쇠와 관련하여 학문적 관심이 되었다. 서양이 앞서가던 중국을 어떻게 따돌리고 세계를 주도하는 문명권으로 부상하게 되었는가가 관심사였다. “어떻게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이 질문은 “왜 근대 서양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났는가?”와 쌍둥이 질문이다. 기술에서 서양보다 앞서있던 여러 지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왜 서양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났는가가 학문적 탐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대분기를 몇 차례 경험하였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대분기는 서양 근대 문명의 발생이다. 서양 근대 문명의 발생은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초래했다. 다음 그림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여러 가지 지수에서 수직 상승이 일어났다. 인구ㆍ임금ㆍ부ㆍ수명ㆍ건강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앵거스 디턴은 ‘The Great Escape’라고 하였다.

   
▲ 앵거스 디턴이 명명한 ‘The Great Escape’, 인구 임금 부 수명 건강 등에서 일어난 ‘수직 상승’ 추세.

모리스는 사회발전지수를 결정하는 요인을 4가지, 곧 에너지 획득, 조직화/도시성, 전쟁 수행 능력, 정보기술로 분류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에너지 획득이다. 인간은 에너지를 섭취하고 소비하지 않으면 죽는다. 조직화는 중앙집권화와 제도 구축 능력이다. 정보기술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소통 능력이다.

영국에서 볼턴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발명되었고, 증기력으로 돌아가는 방적공장은 1785년에 문을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산업혁명은 사회 발전을 빠르고 풍부하게 추진함으로써 단단한 천장인 43점대를 돌파하였다. 산업혁명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확산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 리듬에 합류한 나라들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앵거스 디턴이 말한 ‘거대한 탈출’을 이룩하였다.

디턴은 구체적인 사실을 분석함으로써 ‘The Great Escape’가 가져다준 혜택을 여러 관점에서 입증하였다. 그는 이런 분석을 통해 인류 문명이 점점 더 발전하고 앞으로도 더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설파하였다. 그러나 그는 ‘The Great Escape’로 인한 성장은 필연적으로 국가 안에서의 불평등과 국가 간에 불평등을 초래하였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지적하였다.

대탈출과 불평등

물론 불평등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이것을 문제로 인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문제 삼아 자본주의를 완전히 다른 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몇몇 혁명가들은 이 요구를 수용하여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의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갖는 놀랄만한 생산력에 감복하여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충분하게 달성한 다음에 도래할 수 있는 사회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아직도 마르크스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선진자본주의 사회가 마르크스가 꿈꾼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디턴은 이점에서 그런 종류의 평등주의 학자들과 구분된다. 디턴은 불평등을 성장의 필연적인 결과로 인정하지만, 그 불평등을 교정하기 위해 성장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장의 엔진이 꺼지면 초래될 수 있는 문제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불평등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피케티를 인용하면서 불평등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불평등이 문제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연상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주로 ‘The Great Escape’로 인한 빈국과 부국 사이의 불평등을 문제 삼았기 때문에 한 국가 안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한 나라 안에서의 불평등과 나라 사이의 불평등을 다루는 그의 방식은 우리에게도 소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디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진보와 불평등 사이의 끝없는 춤, 진보가 어떻게 불평등을 창조하고, 때때로 불평등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보여줌으로써, 따라 잡으려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주는 도움, 어떻게 탈출한 사람이 그들 뒤에 있는 탈출로를 파괴함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보호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1)

“현재의 생활은 과거 역사 어느 때와 비교해 보아도 제일 낫다. 더 많은 사람이 부유하게 되었고, 더 적은 사람들이 비참하고 가난하다. 더 오래 살고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 4명 가운데 1명이 죽는 것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극빈의 공포와 영아 사망의 공포를 경험한다. 세계는 거대하게 불평등하다.”2)

“불평등은 빈번하게 진보의 결과이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부자가 될 수는 없다. …… 불평등은 역으로 진보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좋을 수 있다. 인도의 어린이들은 교육이 이룬 성과를 보고 그들 또한 교육을 받으려 한다. 불평등은 승리자들이 그들이 타고 오른 사다리를 걷어참으로써 그들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경우에는 나쁘게 된다. 새롭게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들의 부를 사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공교육이나 건강 보험을 제한할 수 있다.”3)

디턴이 ‘경제 성장은 가난과 극심한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게 하는 엔진’이며4), 경제 성장이 불평등을 필연적으로 결과한다고 하였지만, 불평등이 경제 성장의 동력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물론 불평등이 사람들에게 유인을 제공하고, 그 유인이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인과의 중간 단계들을 생략하고 불평등과 경제성장 사이에 인과관계가 쌍방으로 작용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The Great Escape’에 성공한 개인이나 국가들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The Great Escape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 경제학자 마틴 펠드슈타인의 주장인 “소득 불평등은 바로잡아야 할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는 파레토 법칙이 소득 불평등의 증가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턴은 한 나라 안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일으킬 수 있는 부정적인 요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요인이 성장을 포기하고 분배에 집중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성장이 낳은 놀라운 결과를 인정하고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장을 통한 분배는 부와 재산의 불평등을 초래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복지는 향상되기 때문이다. 성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와 소득의 격차를 크게 하지만, 교육ㆍ의료ㆍ건강의 혜택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은 악이기 때문에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 디턴은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되면서 소득수준과 건강실태의 분포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준다./사진=자유경제원 토론회 게시판

부의 집중과 정치, 디턴의 낙관주의

디턴은 민주정치가 금권정치로 타락하면 부자가 아닌 사람은 사실상 투표권을 상실한다는 루이스 브랜다이스 판사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브랜다이스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것과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는 것은 서로 상충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민주정치에 필수적인 정치적 평등은 늘 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위협을 받았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면 민주정치에 대한 위협도 커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디턴은 미국에서 소득과 부가 극단적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부의 유래 없는 집중 현상은 성장의 원동력인 창조적 파괴의 숨통을 막고 민주주의와 성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부가 지나치게 집중되면 앞서 탈출한 사람들이 뒤에 남겨진 탈출 경로를 막으려 수 있기 때문이다.

디턴은 다수를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익 집단의 지대 추구가 기승을 부리면 그 나라는 쇠퇴할 것이라는 올슨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성장이 낮아지면 다른 사람을 희생해야만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분배 갈등은 심화된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노년층과 젊은 층, 의료 서비스 제공자와 환자, 그리고 정당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디턴은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탈출 욕구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면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탈출 수단과 경험이 누적되어 미래의 탈출자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 뒤의 터널을 막을 수도 있지만, 터널을 파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5)

디턴은 한 국가 안에서, 또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불평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불평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불평등에 대한 도덕적 인식이 아니라 과학적 인식이 필요하다. 디턴은 원조를 통해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줄일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생각에도 반대했다. 원조는 의도와 달리 개발도상국 정부의 부패를 조장하여 빈곤층에게 해가 되고, 결국 나쁜 정부를 지원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디턴의 이런 통찰은 우리가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도움을 준다. 원조뿐만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의 복지정책에도 해당한다. 세금과 재분배 시스템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한 국가와 문명의 흥망의 문법

디턴의 The Great Escape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The Great Escape’ 뿐만 아니라 니얼 퍼거슨의 The Great Degeneration, Civilization: The West and the Rest와 이안 모리스의 Why the West Rules - For now이다.

퍼거슨과 모리스는 서양 문명이 중국을 추월한 이유와 왜 서양이 중국에 추격을 당하고 앞으로는 중국이 미국(서양)을 앞설 수도 있는가를 분석하였다. 국가나 문명의 발전 방식과 몰락 방정식을 학문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그들이 제시한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1500년경,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 몇몇 작은 국가들은 과연 어떤 연유로 다방면에서 훨씬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있던 유라시아 대륙 동쪽 국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다른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과거 서양의 패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미래도 예측할 수 있을까? 이것이 정말 서양 패권 시대의 끝이자 동양 패권 시대의 시작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서구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이은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를 동력으로 대서양을 건너,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지나, 마침내 산업혁명과 제국의 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절정에 달한, 인류 대부분을 지배했던 문명의 황혼을 목도하고 있는 것일까?”6)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퍼거슨은 서양과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구분 짓는 제도, 관련 개념, 행위가 복합된 여섯 가지 비장의 무기 곧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사회, 직업윤리를 설정하였다.7)

그 뒤 퍼거슨은 대분기의 원인을 탐색하면서 인간 조직을 두 단계로 구분한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 존 월리스, 배리 와인개스트를 인용하였다.8) 첫 번째 단계는 자연 상태 즉 ‘제한적 접근 패턴’이란 이름을 붙인 단계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느린 경제 성장
* 비교적 적은 수의 민간 조직
* 국민의 동의 없이 운영되는 작은 중앙정부
* 개인 및 왕가의 혈통에 따라 조직되는 사회 관계

두 번째는 ‘개방적 접근 패턴’으로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빠른 경제 성장
* 다양한 조직을 갖춘 풍요롭고 활기찬 시민 사회
* 크고 분화된 정부
* 법치주의처럼 비개인적인 힘에 지배되는 사회적 관계, 안정적인 재산권과 공정성, 이론뿐일지라도 보장되는 평등

영국을 시작으로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이런 단계를 거쳐 대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오늘날 서양 문명의 퇴보를 서양 제도의 쇠퇴로 설명하면서,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블랙박스 4개 곧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 시민사회를 분석하였다.9)

모리스가 말하는 ‘사회 발전’은 ‘기본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회적 능력, 자신들의 목표에 맞게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지적 환경을 형성해내는 사회의 능력’을 의미한다.10) 모리스는 ‘사회발전지수’를 ‘에너지 획득, 조직화, 전쟁 수행 능력, 정보 기술’을 통해 측정하였다. 그는 2000년에 얻을 수 있는 사회 발전의 최고치를 각각 250점, 전체 1000점으로 설정하였다.11) 모리스는 혁신이 초래하는 결과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모리스가 말하는 혁신은 디턴의 ‘성장’ 개념과 유사하다.

“혁신은 변화를 의미하며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초래한다. 사회 발전은 승자와 패자를,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남녀노소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창출한다. 후진성의 이점이 이전에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중심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회 발전은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지고 관리하기 힘들어지는 사회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역설, 즉 사회 발전이 바로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바로 그런 힘을 창출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런 힘이 통제를 벗어날 때 그리고 특히 변화하는 환경이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때, 기원전 2200년경처럼 혼란과 파괴, 붕괴가 따를 수 있다.”12)

모리스에 따르면 역사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그 해결을 요구하는 세계에 적응해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사회 발전은 그 발전을 가로막는 새로운 힘을 생성한다. 사람들은 역설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소하지만 어떤 역설은 진정으로 변혁적인 전환에만 굴복하는 단단한 천장을 형성한다. 천장을 만나면 사회는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단단한 천장에서 발전과 붕괴의 양 갈래 길을 만난다. 사회가 천장에 봉착하면 꼼짝하지 못하고 몇 세기를 지속하기도 한다. 그 사회가 단단한 천장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모리스가 ‘묵시록의 다섯 기수’라고 부른 기후 변화, 기아, 질병, 이주, 국가 붕괴가 나타난다. 특히 나머지 4개가 기후 변화의 시기와 일치하면 사회 발전은 수세기 동안 지체되거나 암흑기에 접어든다.13)

거대한 탈출과 한국

과거의 한 문명과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흥망성쇠를 분석하여 역사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 문명이나 나라의 흥망성쇠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해가는 나라와 망해가는 나라를 특징짓는 요인들은 존재한다. 그 요인들을 어떻게 국가 운영에 반영하는가는 학문적 논의가 아닌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다.

발표자들이 잘 보여주었듯이 앵거스 디턴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디턴의 메시지는 이미 자유주의자들도 한 이야기지만, 그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말이 힘을 얻었으니 그의 입을 빌리는 것도 자유주의 사상의 전파에 효과적인 하나의 방책이다.

디턴이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는 ‘후진성의 이점’14)을 우리는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빈곤과 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나는 원동력인 경제 성장’이 흔들리면서 불평등이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의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성장 둔화를 극복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불평등 해소를 무조건 선으로 인정하는 우리의 현실에 디턴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분배에 대한 욕구를 자제하고 성장의 리듬을 회복해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1) Angus Deaton, 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p.xiii.

2) Deaton (2013), p.1.

3) Deaton (2013), p.1.

4) Deaton (2013), p.325.

5) Deaton (2013), pp.326-328.

6) 니얼 퍼거슨, 『시빌라이제이션: 서양과 나머지 세계』, 구세희ㆍ김정희 옮김, 21세기북스, 2011, 12-13쪽

7) 퍼거슨 (2011), 53쪽.

8) 니얼 퍼거슨, 『위대한 퇴보』, 구세희 옮김, 21세기북스, 2013, 40쪽.

9) 퍼거슨 (2013), 21-22쪽.

10) 모리스 (2013),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44쪽.

11) 모리스 (2013), 220쪽.

12) 모리스 (2013), 278쪽.

13) 모리스 (2013), 772쪽.

14) Deaton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