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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
본죽 김철호 회장, 죽에 대한 편견을 깨다
죽에 대한 인식전환, 본죽
본죽으로 시작한 본아이에프는 2002년 9월 종로구 연건동 대학로에서 처음 창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아이에프는 본죽의 성공에 힘입어 본비빔밥(2006년), 본죽/비빔밥 프리미엄카페(2008년), 본도시락(2010년)을 차례차례 설립하였으며, 2015년부터는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에도 진출하여 본설렁탕과 피자체인점 일마지오(2015)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한편, 최근에는 죽, 탕, 반찬, 건강즙 등을 장기보존이 가능한 포장으로 만든 간편식 시장에도 진출하였다. 그리하여 현재 본아이에프는 채 15년이 안되는 기간동안 수천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한 거대 프렌차이즈 외식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본아이에프의 비약적 성장에는 무엇보다 본죽의 성장이 핵심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본죽은 설립 8년 만에 1,200개의 가맹점을 개설하였으며, 일본, 중국, 미국 등에도 직영점을 개설하는 등 해외진출도 시도하고 있는 대단히 성공한 외식 프렌차이즈로 평가되고 있다.
본죽은 소비자의 인식전환을 이끌어내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 본죽 이전, 식당에서 만드는 죽이란 대개 환자들을 위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죽이라는 음식을 일반대중들의 외식을 위한 메뉴로 생각하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본죽 이전에도 죽을 전문 메뉴로 하던 식당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지만, 당시 여의도의 대여죽집이나 한남동의 해천죽집 정도를 제외하면, 죽만을 파는 식당이란 드물기도 하였거니와, 아예 죽 전문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개의 경우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이 죽을 접하는 경우는 일식당의 조찬 메뉴나 코스요리의 전채식(appetizer)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그도 아니면 기껏해야 전골요리의 마지막 식사 정도로만 접할 수 있었다. 즉 본죽 이전의 죽이란 일반 대중이 찾는 메뉴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죽은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는 (소화잘되는) 식사로 이와 같은 보편적인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본죽이 이루어 놓은 인식전환의 성공은 죽 전문점이나 유사 성격의 프렌차이즈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 전역에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던 죽 전문점은, 이제 하나의 지역 상권에서도 여러 업체들이 경쟁할 정도로 많아졌다. 결국, 본죽의 성공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라면, 죽이라는 음식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 즉 환자나 노약자들을 위한 변방의 음식이었던 죽에 대한 인식을 건강과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찾는 대중적인 웰빙음식으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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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죽은 설립이후 15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수천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한 거대 프렌차이즈 외식 기업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기업의 외형적 성장에 걸맞은 경영과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사진=본죽 홈페이지 |
양복 입은 호떡장사 김철호 회장
본죽의 설립자인 김철호 회장은 충청남도 서천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한국일보사에 입사하여 광고개발부에서 일했다. 김철호 회장은 1993년 인삼제품 제조 및 판매를 주업으로 하는 기업인 (주)우신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이후 목욕용품 전문업체인 우신HM, 우신홈쇼핑의 대표를 역임하는 등 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하지만 많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그러했듯이,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최종 부도 처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사업이 실패한 이후, 김철호 회장은 호떡 노점, 요리학원 총무 등의 경험을 통해 음식업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꾀하였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점 전문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여, (주)맛깔컨설팅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2002년 아내 최복이와 함께 서울 대학로에서 죽 전문점 '본죽’을 개업하면서 사업가로서 성공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음식점 컨설팅으로 업종을 전환하기 이전부터 김철호 회장은 다소 독특한 성향을 나타내곤 했는데 이는 본죽 성공의 원인으로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김철호는 호떡 장사를 할 당시, 항상 정장을 입었다고 하는데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는 홍보전략의 일환이 아니라 스스로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양복정장을 입고 일을 하는 것은 불편할 뿐 아니라, 추운 겨울 근무복으로는 결코 합리적이라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호떡 장사를 그만둘 때까지 고집스럽게 지속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정한 원칙을 타협하지 않고 고수하겠다는 의지 또는 고집을 나타낸 사례라고 보인다. 김철호 회장의 고집은 그가 요리학원에서 수련할 당시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요리학원의 수강료가 부족해지자, 학원의 허드렛일을 돕는 총무 역할을 맡으면서 학원비 보조를 받았다고 하는데, 학원비 보조금의 액수와 총무로서의 업무량을 비교해보면 이 역시 다소 무모해 보이는 고집을 드러내는 사례라 평가된다.
본죽의 성공요인, 블루오션 전략
본죽의 성공요인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하게는 경쟁이 치열한 외식업계에서 드물게 경쟁압력이 낮은 메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식당을 창업할 때에는 위험을 회피한다는 차원에서 대중적인, 즉 어느 정도의 수요를 갖춘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아무리 특별한 비법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수요 자체가 작은 음식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죽이라는 음식은 대부분 환자들만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에, 본죽이 창업하기 이전에는 죽전문점이라는 형태의 식당은 찾아보기 아주 힘든 상황이었다. 요컨대 죽집이란 경쟁압력이 드물정도로 낮은 대표적인 블루오션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자서전에서도 밝히고 있다시피, 왜 죽을 선택했느냐는 물음에 '남들이 안하는 것이라서’라고 답을 한 것을 보면, 외식업 메뉴선택의 기준이 '경쟁의 부재’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1인분을 기준으로 만들어야 하는 죽이라는 음식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자서전에서는 '원칙대로, 한그릇 한그릇 정성을 다해서 만든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 하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죽이라는 음식은 그 특성상 다른 음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야만 조리가 되기 때문에 '단위당 노동투입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여럿이 함께 먹는 전골이나 찌개, 구이, 또는 main dish 등과는 달리, 죽이란 대개 1인분을 기준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열과 시간이 인력을 대신하는 음식들(가령 설렁탕이나 곰탕) 등과는 달리, 죽은 만드는 동안 눌어붙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음식에 비해 조리과정 상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 그릇의 죽을 제대로 조리하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재료에 비해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며, 이를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 '정성’인 것이다. 본죽에서 자랑스레 내세우고 있는 '고객 1인을 위한 정성’이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메뉴의 특성에서 비롯된 바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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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아이에프가 지금까지 외형적 성장에 더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향후에는 미래의 기업환경에도 유연히 적응해나갈 내실을 함께 다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양복 입은 호떡장사꾼 김철호 회장의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해 본다./사진=본죽 홈페이지 |
세 번째 요인은 김철호 회장이 음식장사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 '음식점은 못 팔아서 망하는 것이지, 퍼줘서 망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초창기 본죽은 '양적 푸짐함’을 영업의 중요한 승부수로 간주한 듯하다. 예컨대 양이 적은 사람에게는 1인분을 1/3씩 나누어 포장해주는 방식을 쓰면서까지 푸짐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특히 새로운 시장으로 여겼던 젊은 소비자들에 대해서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많은 량을 제공하였다. 결국 고객이 포만감과 푸짐함을 느껴 다시 찾도록 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죽이란 음식은 사실 다른 음식과는 달리, 두 배로 양을 늘인다 해도 재료가 두 배가 들지는 않으며, 대체로 두어 숟가락 분량의 쌀과 물만 더 부어주면 된다. 따라서 별다른 부담 없이 푸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음식업종에서는 좀처럼 따라하기 어려운 영리한 전략이다.
네 번째 요인은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죽은 기본적으로 쌀을 불려서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에, 주문을 받고 만들기 시작하면 음식을 내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미리 만들어 놓으면 금방 불기 때문에 맛을 보장할 수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외식업으로는 치명적인 단점이며, 불어 터진 죽 역시 용서받기 어려운 문제이다. 본죽은 이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해결했는지 방법은 알 수 없지만, 5일간의 가맹점주 조리교육비로 770만원을 책정한 것을 보면 비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본죽은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건강죽, 전통죽, 보양죽, 미용죽 등 대략 30여개의 죽 종류를 가지고 있다. 전복죽이나 호박죽 정도만으로 한정되었던 기존의 죽 메뉴에 비하면 대단히 다양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주된 고객을 취향이 비교적 까다로운 여성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메뉴의 다양화를 전략적으로 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젊은 여성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모든 연령층의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출 수 있다는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다섯 번째 요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창업비용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외식업의 창업이란 본인이 원하는 사업을 한다는 의미보다는 대부분 가족생계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따라서 프렌차이즈 외식업의 창업은 창업비용이 중요한 고려변수가 된다. 본죽은 다른 메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한 편이다. 외식업의 대표격인 치킨의 창업비용이 5천~2억원 가량, 피자의 경우에는 1억1천~2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반면 본죽의 경우에는 6천5백만원 가량으로 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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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 식음료 프렌차이즈 사업체 창업비용 |
여섯 번째로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적절히 읽어내고 이를 사업 성공의 여건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핵가족화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인구고령화와 만혼 등의 풍조로 인해 1인 가족화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는 가정 내에서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죽을 쑤어줄 사람이 점차 감소해왔음을 의미한다. 외식업으로서의 죽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된 것이다. 또한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웰빙 인식의 확산에 따라, 보다 양질의 아침식사를 원하는 사람들 역시 그동안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아침을 굶는 것 보다는 인스턴트라도 무엇인가를 먹는 것이, 그보다는 따뜻하고 소화 잘 되는 죽을 먹는 것이 더 몸에 이롭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확산된 것이다. 본죽은 이러한 변화를 빠르게 읽고 수요 증가를 더욱 촉진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는,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원대한 계획 정도를 꼽아볼 수 있다. 김철호 회장은 자서전에서 첫 식당을 열 때부터 환자가 아닌 일반대중을 염두에 두었을 뿐 아니라, 아예 해외진출까지 염두에 둔 것이 프렌차이즈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본죽 1호점의 주된 마케팅 대상이 서울대병원의 환자들이었음을 고려하면, 초창기 사업성공의 원인이 원대한 계획과 부단한 노력 외에도 얼마간의 운이 작용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원대한 계획은 사업 성공의 핵심요인은 아니었겠지만 성공기조 지속의 자양분 역할을 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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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아이에프는 본죽의 성공에 힘입어 본비빔밥(2006년), 본죽/비빔밥 프리미엄카페(2008년), 본도시락(2010년)을 차례차례 설립하였으며, 2015년부터는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시장에도 진출하여 본설렁탕과 피자체인점 일마지오(2015)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사진=본죽 홈페이지 |
Before & After, '죽의 대중화'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렇듯이 본죽 역시, 시장의 흐름을 살펴 수요의 흐름을 파악해내고, 또 필요한 경우 소비자들의 수요를 적절히 이끌어내기도 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본죽이 다른 식음료 프렌차이즈와 차별화되는 가장 뚜렷한 점은, 아무도 대중 외식업종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죽이라는 음식을 대중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죽의 대중화’야 말로 본죽 이전과 이후를 가름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본죽은 설립이후 15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수천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한 거대 프렌차이즈 외식 기업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기업의 외형적 성장에 걸맞은 경영과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본 아이에프가 지금까지 외형적 성장에 더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향후에는 미래의 기업환경에도 유연히 적응해나갈 내실을 함께 다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양복 입은 호떡장사꾼 김철호 회장의 또 다른 변화를 기대해 본다.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1) 대표적인 치킨 프렌차이즈 업체인 B사의 경우 치킨전문점: 4천7백만원, 치킨카페 8천만원, 치킨맥주점: 1억1천만원, 프리미엄 치킨점: 2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저렴한 프렌차이즈인 A사의 경우 점포당 1억1천만원이, 세계적 피자 프렌차이즈인 D사의 점포당 창업비용은 2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밥전문점의 경우도 1억1천~1억3천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떡볶이 전문점의 경우 4천5백~7천만원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음.
<참고자료>
꿈꾸는 죽장수 본죽 이야기(2009), 김철호, 북리슨
정성(2010), 김철호, 비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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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경제원 '한국의 기업가'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