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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노동시장 과잉규제 '고용절벽' 부를 수도
정책이 실패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릇된 용어의 사용이다. 예컨대 세금을 올리면 무조건 ‘세금폭탄’이고 감세를 하면 ‘부자감세’다. 감세는 가계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소비지출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 감세는 일종의 경제의 선순환을 위한 마중물이다. 따라서 부자감세가 아니라 감세를 통해 부자가 되는 길을 모색하는 ‘감세부자’가 맞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해고를 쉽게 하자는 것으로 ‘악마화’ 되어 버렸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 보면 노동시장이 유연화될 때 재취업의 가능성은 그 만큼 높아진다. 물론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 처음에는 해고가 늘어 실업이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과 마찰은 이제는 실업보험 등 각종 안전장치를 통해 상당정도 그 충격이 흡수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시장 유연화 자체를 금기시 하거나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 재취업은 물론 ‘새로운 취업’의 기회도 증가한다. 부자감세가 아닌 감세부자 이듯이, 해고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닌 고용증진을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인 것이다. 노동시장의 질적인 변화 없이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경험적으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국가의 고용률이 높다.
■ 귀족노조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
우리나라에서 귀족노조는 거저 나온 말이 아니다. 일부 대표 사업장에서 억대의 고액 연봉을 받는 조합원들은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하청업체 근로자를 외면하고 있다. 억대 연봉이 ‘그들의 생산성에 의해 뒷받침’된 것 이라면 굳이 현재의 작업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다른 데 가더라도 지금의 생산성을 발휘할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고임금은 생산성이 아닌 ‘머리띠’에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세습하려고까지 하고 있다. 이들을 보는 국민들의 인내심은 거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최근 노동개혁 차원에서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가 정책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비정규직의 ‘보호강화’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간 노동정책은 해고요건 강화 등 규제강화 쪽으로의 일방통행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규직 과보호 해소가 아닌, 비정규직 보호 강화를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과보호를 걷어내는 것이 노동시장 개혁의 제1 순위여야 한다.
<그림-1>은 노동개혁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국가 간 평균근로시간 비교자료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노동시장 전체의 ‘고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곁들여지고 있다. <그림-1>에서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2100시간이다. 주당 법정근로시간 ‘40시간/주’에 52주를 곱하면 ‘2080시간/년’이 얻어진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과다노동 국가는 아니다.
OECD의 평균근로시간이 짧은 것은 ‘단시간 근로’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평균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각종 유연근무제도를 활성화해 근로시간의 ‘질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양한 선택적 시간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재택근로 등이 그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같은 근로형태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근로형태다. 따라서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평균근로시간을 낮출 수 없다. 평균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여기면 이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의 핵심
정부는 2014. 12. 29에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최근 주요 선진국의 비정규직 사용의 유연성 제고 추세와 달리 지금까지의 비정규직 사용기간 및 허용분야 규제 등은 그대로 유지하되 차별시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종합대책안의 골격이다.
차별시정 강화를 위해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권’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서도 임금·복지 등 차별 대우를 받았을 경우 노조가 근로자를 대신해 차별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기간은 본인이 35세 이상이고 희망하는 경우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3개월’만 근무해도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며, 정규직 미(未)전환 시 이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비용절감 차원에서 채용하는 관행을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유지를 ‘고비용구조’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 업무 비정규직 사용제한, 불법파견 감독강화 등을 담고 있다. 큰 흐름은 비정규직 등 고용보호 규제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요 선진 국가 사례를 살펴보면, 고용보호 규제 강화는 대체로 전체 고용수준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2) 이상희, “비정규직 규제,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세미나(2015. 2. 12) 발제문.
그리고 비정규직 사용의 유연화는 고용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독일, 일본 등에서 그 같은 효과가 관찰되고 있다. 다만 비정규직 사용의 유연화가 비정규직 고용 후 정규직으로의 전환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연구는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입법을 전후해 비정규직이 줄고 감소한 비정규직의 상당수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기간제 근로자와 같은 직접고용을 줄이고 파견 등의 간접고용 비중을 늘림으로써 비정규직 보호법을 우회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일정 부분 정규직을 늘리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될 것은, 법제로써 고용에 국가가 관여하면 그만큼 신규고용이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비정규직은 혜택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또는 현재 실업 상태인 근로자에 대한 취업기회는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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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과 자유경제원이 공동주최한 '비정규직 규제,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토론회 모습. |
■ 고용 유연화, 한국은 '逆주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왔지만 우리나라는 정규직 보호가 더욱 강화되는 등 노동시장이 오히려 경직화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06~2013년 세계 각국과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 지수를 비교 분석한 ‘노동의 미래와 노동 유연성’ 보고서(2015. 1.16)를 펴냈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경직성 지수는 2006년 평균 29.5에서 2013년 28.3으로 하락했다. 비(非)OECD 회원국들도 평균 35.0에서 31.5로 개선된 반면 한국은 28.3에서 35.8로 큰 폭으로 개악됐다. 노동시장 유연성의 종합평가에서 한국은 2008년 107개국 중 38위에서 2013년엔 70위로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대다수 국가가 해고 간소화, 비정규직 허용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을 추진한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노조 강경 투쟁에다 국회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뒤엉키면서 정규직만의 고용 천국을 만든 것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1200여명을 원청인 현대차 소속 근로자로 인정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에는 문제가 있다. 사법부가 파견법을 마치 ‘도급금지법’ 처럼 과잉 해석했기 때문이다. 도급계약에서 비롯되는 근무시간, 작업속도 결정 등 최소한의 지휘명령권도 인정하지 않고 도급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업무협조 및 지시를 파견의 노무지휘로 간주한 것이다.
또한 사내하도급업체가 고유한 기술이나 자본, 독립된 사업시설을 갖고 있지 않은 것도 불법파견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내하도급은 자동차 생산에서는 보편적 생산방식이다. 독일과 일본 자동차 메이커는 제조공정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해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우리 기업에만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몰아갈 경우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이 같은 과잉규제는 종국적으로 ‘고용절벽’을 가져오게 한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공동으로 ‘500대 기업(매출액 기준) 채용계획’을 설문 조사한 결과(2015. 1. 27)를 발표했다. 올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계획을 확정한 곳은 180개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중 151개사만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29개사는 채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원을 늘릴 것’이라고 답한 데는 33社에 그쳤다. 대졸 구직자들이 취업 문턱을 넘기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 에필로그
일자리는 전형적인 파생수요다. 일감이 일자리를 만든다. 일감은 시장에서 만들어지며,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에서 출발한다. 법제로 고용을 규율할 수는 없다. 베커 교수의 ‘승자의 저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법제가 잘 정비되고 노조의 힘이 강한 나라의 실업률이 오히려 높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과거 산업화시대에 도입된 노동 관련 법·제도를 경제환경 변화에 맞게 바꿔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는 구조개선이 필요하다. 계약직의 고용기간 확대, 파견근로 대폭허용 등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사관계는 ‘사적 계약’이므로 국가 개입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비용절감 차원이 아닌 유연성 제고를 위한 비정규직 활용은 진일보한 다양한 근로형태를 창출할 수 있다. 정규직 대 비정규직의 2분법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비정규직 규제,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세미나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