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지난 5월 21일 과잉범죄화 연속토론회를 개최했다. 제5차 토론회의 주제는 <'사법(私法)의 공법(公法)화’, 대한민국 과잉범죄화 부추긴다>로 국민의 사적 자치를 보호해야 할 법이 과잉입법으로 인해 오히려 자유를 훼손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와 제언이 오갔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준선 교수(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오늘날 한국에 존재하는 수천개의 법률 속에 숨어 있는 형벌규정은 과거의 적폐(積弊)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사법개혁이나 검찰개혁과 같은 미봉책으로는 불가능 하며 오래 묵은 폐단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최준선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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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선 교수 |
과잉범죄화(overcriminalization)란 범죄의 중대성 여부 또는 위법행위자의 비난가능성과 관계없이 형평성을 잃은 처벌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정당성이 없는 과도한 처벌을 말하며 형사정의체제(criminal justice system)를 남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른 제재수단으로도 충분히 통제가능한 행위를 굳이 형벌로써 통제하는 것도 과잉범죄화의 일종이라 할 것이다.
강제규범인 법률은 자율규범인 도덕의 최소한으로서 도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작동되어야 한다. 형벌이라는 강력한 제재수단을 동원하여야만 하는 행위는 매우 제한되어야 한다. 단순히 도덕적 '비난가능성’(moral blameworthiness)을 훨씬 넘어서는 행위에 대하여만, 그리고 사회적으로 처벌가능성이 관하여 합의된 행위에 대해서만 형벌이 가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가 무시된, 그리고 단순히 도덕적 비난가능성이 있을 뿐인 행위에 대하여 입법기관과 법집행기관이 연합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입법자는 해마다 수십 건의 형사특별법과 행정규제법을 생산한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지만 미국인 범죄자는 세계 범죄자의 25%를 차지하고 감옥 면적은 세계 최대이다. 이에 못지않게 한국의 감옥도 넘쳐난다. 2010년 한국의 전과자 수는 약 1,100만 명으로 인구대비 전과자의 비중은 약 22%로서 비율과 증가속도 면에서 미국에 못지않다.
특히 각종 행정규제를 위반했을 때 부과되는 제재수단 중 형벌의 비중이 44%에 달한다. 무수한 행정규제 위반행위에 대한 무분별한 형사처벌 입법이 전과자를 양산하는 과잉범죄화로 이어지고 있다. 범죄자들을 위한 시설과 통제하기 위한 국가의 비용, 즉 국민의 부담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교화를 통하여 참된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든다는 형벌의 목적에 따르면 형벌이 “희망의 사다리”나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되어야 할 텐데, 실제로는 “절망의 사다리”, 끝 모를 “추락의 사다리”가 되고 있다. 교도소는 새로운 빈곤의 덫이 되고 있다.
이익집단들의 지대추구행위
형벌의 사용이 용이한 사회에서는 사회 주체는 형벌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는 강렬한 유혹을 받는다. 경쟁자를 축출하고 지대를 추구하는 가장 합법적이고 유효한 수단이 법이기 때문이다. 이들 이익집단의 지대추구(rent-seeking)를 교사, 방조, 조력하는 것이 입법기관과 그 집행기관이다.
이익집단의 요구가 있으면 입법자는 더욱 거리낌 없이 법안을 만든다. 공공선택이론을 빌리면 입법자들은 항상 경쟁적인 입법수요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아무 법안이나 열심히 만든다. 심지어 위헌인 것을 알면서도 만든다. 형사법규가 포함된 법안을 만들 때마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입법기관과 법집행기관 자체도 이익집단일 수 있다. 이 집단은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법률을 만들고, 강력한 법집행을 추구하는 것은 바른 사회를 건설한다는 매우 자연스럽고 애국적으로 보이는 가면 뒤에서 실은 법률을 사적인 지대추구를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이익집단이 된다. 입법자는 법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권력자가 된다.
그들은 권력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른 지대는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이를 집행하는 자는 형벌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집행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재량권을 갖게 되며, 그 재량권은 금전적, 비금전적 편익과 연결되어 부패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후진국의 사례에서 익히 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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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집단의 요구가 있으면 입법자는 더욱 거리낌 없이 법안을 만든다. 공공선택이론을 빌리면 입법자들은 항상 경쟁적인 입법수요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아무 법안이나 열심히 만든다. 심지어 위헌인 것을 알면서도 만든다. /사진=자유경제원 |
조선시대 가간한 채무자를 악질 채권자가 고발하면 원님은 곤장을 때려 채무자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채권을 집행했다. 악질 채권자(이익집단)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로부터 상납을 받은 원님(권력자)은 축재한다. 권력자의 권력과 금전적, 비금전적 편익이 바로 이익집단들이 누리는 지대(rent)이다. 한국의 과거에도 그런 일이 많았다.
오늘날 한국에 존재하는 수천 개의 법률 속에 숨어 있는 형벌규정은 과거의 적폐(積弊)일 수 있다. 입법에 있어 지대추구와 관련이 없는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라! 오늘날 한국 국회의원의 세계 최강의 입법권력을! 그들이 누리는 지대 또한 세계 최강이다!
시스템의 개조가 필요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보자. 100만원을 초과하여 금품을 받은 공무원, 교직원, 언론인은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우리 형법 체계상 “가능성”만으로 처벌할 수는 있다. 추상적 위험범인 경우이다.
“현주건조물방화죄”처럼 사람이 사는 집에 불을 놓은 것은 인명살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실제로 인명이 살상되지 않더라도 처벌한다. “일반건물방화죄”보다 무겁게 처벌한다. 공무원, 교직원, 언론인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은 것이 대단히 위험한 범죄라는 말인가?
물론 pornography를 소지만 하여도, 마약을 소지만 하여도 미국에서는 처벌한다. 그러나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의 소지가 마약과 pornography소지와 같은 것으로 평가되는 가벌성이 있는 것인가? 추상적 위험범의 종류가 확대되면 그만큼 국민의 행동은 제약을 받게 되며 삶의 질과 국가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과잉범죄화를 줄이는 것이 바로 복지다. 국민을 전과자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건전한 정신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혁신 복지”(安), “보편적 복지”(文), “맞춤형 복지”(朴)는 찬란한 언어의 향연일 뿐이다. 거창한 복지 프로그램은 결국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 데, 즉 표를 얻는데 쓰겠다는 공약일 뿐이다.
“무상급식”은 “세금급식”이며, “선택적 복지”는 국민 스스로가 선택하는 복지가 아니라 권력자가 선별하는 “선별적 복지”이다. 전과자를 양산하지 않고 범법자 스스로 생업에 종사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 복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률시스템에 대한 혁신에 가까운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전을 출판하는 현암사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헌법 1개, 법률 1360개(대통령령, 부령까지 합하면 4,433개)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법률을 전수조사하여 벌금, 징역형 등으로 되어 있는 것을 행정질서벌, 즉 과태료로 대거 전환하여야 한다. 고의성이 없거나 경미한 범죄의 경우 처벌을 면제하여야 하고, 형벌의 경우에도 자유형을 대폭 줄이고 재산형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사법개혁이나 검찰개혁과 같은 미봉책으로는 안 된다. 오래 묵은 폐단(積幣)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 개혁이 필요하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