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8.15 특별사면의 범위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의 특별사면이 이뤄질 것인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22일 긴급좌담회 ‘기업인 사면, 어떻게 볼 것인가?’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패널로 참석한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기업인들의 대표적 죄목인 배임죄는 처벌기준이 모호할뿐더러 그 정도 또한 지나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금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과잉처벌의 덫의 걸린 기업인들에게 기업현장으로 돌아갈 새로운 기회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부원장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면에서 기업인만 제외하는 것 또한 역차별에 해당하며 추진력이 기업의 오너에게 집중되어 있는 국내 기업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이번 특별사면 대상자에 기업인을 포함함으로써 기업인의 사기를 진작하고 투자확대라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아래는 최승노 부원장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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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
과잉범죄화 현상이 심각하다. 특히 기업인의 경영행위를 범법행위로 처벌하려는 법이 넘쳐나고 있다. 사실 기업인들의 대표적 죄목인 배임죄는 처벌기준이 모호할뿐더러 그 정도 또한 지나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러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광복절 특별사면은 과잉처벌의 덫에 걸린 기업인들에게 기업현장으로 돌아갈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기업인이 특사 대상이 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면에서 기업인만 제외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에 해당한다. 게다가 기업인을 포함하는 것이 국가발전이라는 특사의 본래 목적에도 더 부합한다. 또한 국민대통합의 전제인 경제성장은 기업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인에 대한 특사는 꼭 필요한 일이다.
전과자를 양산하는 법률
2010년 통계에 의하면 벌금 이상의 형벌을 1회 이상 받은 국민이 누적 1100만 명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22%는 전과자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2000년대 들어서만 1.5배 증가한 우리나라의 전과자 수치는 OECD 국가들 중 최상위를 달리고 있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는 형국이라니,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가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대거 등장한 법의 상당수가 징역과 벌금 등의 처벌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최근 2년간 쏟아져 나온 하도급법, 공정거래법만 해도 18대 국회의 4년 치에 달하는 양이다. 단순 과태료가 아닌 징역, 벌금 등의 형벌을 내리도록 규정한 법률이 700여개, 형벌조항 수는 5000여개다.
법률 외에 시행령, 고시, 규칙, 조례, 행정명령까지 포함하면 처벌규제 조항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매년 증가하는 전과자의 70%는 형법 위반이 아닌 행정규제 위반 사범이라는 조사결과로 미루어봤을 때, 2020년 국내 인구 대비 전과자 수 비중은 3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과잉입법, 과잉규제가 범법자를 양산해내고 있다. 국유지나 타인 소유의 산에서 도토리를 따는 행위마저 ‘7년 이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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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역차별을 낳은 반기업정서
과잉범죄화와 관련하여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특사를 지시하면서 그 목적이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에 있음을 밝혔다. 사실 대량으로 전과자를 만들어내는 체제에서 대량 사면이 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사면은 기본적으로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 당시 8번, 이명박 정권 당시 7번 등 역대 정부에서 사면이 남발됐던 점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번 특사는 박 대통령의 두 번째 특사로, 비교적 원칙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경제활성화 측면에서 기업인이 사면될 경우 예상되는 대상자로는 SK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가 있다. 4년의 형기 중 절반 이상인 2년 6개월을 복역했고 형제가 모두 형을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최태원 회장이 가중처벌의 대상이었다는 점을 참작할 만하다. 구본상 LIG 넥스원 전 부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또한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CJ 이재현 회장, 효성그룹 조성래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형이 확정될 경우 검토 가능할 것이다. 정치권의 사면 대상자로는 이상득 전 국회부회장,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이야기하며 기업인과 정치인의 특별사면을 반대한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을 사면해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과거에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에 반대 입장에 대한 근거가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기업인에 대한 형량이 높아지면서 과거와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반(反)기업정서가 거세지면서 시민단체가 기업을 공격하는 목소리를 키우자 법원마저 기업에 대한 처벌수위를 지나칠 정도로 높이고 있다. 급기야 합리적이지 않은 규제와 법률까지 만들어냈다. 세계적으로 처벌하지 않거나 가벼운 벌금을 부과하는 죄목에 징역형을 선고하고, 2∼3년 집행유예를 받을 범죄에도 3∼4년의 징역을 선고하고 있다. 과거의 봐주기 처벌에서 이제는 징벌적 처벌이 나타나는 역차별의 시대가 되었다.
특히 기업총수들이 업무상 배임의 죄목으로 심판의 도마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다. 배임죄는 ‘타인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하는 죄’를 말한다. 이러한 배임죄는 본질적으로 ‘배신죄’의 성격을 가지므로 민사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형사 처분의 단골손님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더구나 처벌 기준마저 예측 가능성과 명료성 원칙에 어긋난다. 형벌만능주의와 포퓰리즘의 합작인 배임죄가 기업인들에게 사법폭행을 가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총수가 제자리를 찾아야할 때
경영판단은 본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판단의 결과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행위는 기업가 정신을 무력화하여 우리경제의 활력을 앗아갈 수 있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원이 존중하는 사법상의 관행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수만 명의 임직원들로 구성된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그 핵심추진력은 기업의 오너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SK그룹은 전반적으로 안정된 선진기업이지만 최 형제가 자리를 비운 이후 대규모의 투자결정이나 기업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특사의 최종목표인 국민대통합은 경제난이 해결된 후 민심이 안정된 상황에서 가능하다.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이 만연한 상황에서 대통합을 꿈꾸는 것은 허황한 일이다. 우리경제를 침체의 늪에서 꺼내줄 핵심동력은 기업이다. 활발한 기업 활동은 일자리와 더불어 민간수요를 창출한다. 따라서 국민대통합의 전제조건인 경제성장을 위해 기업인들의 사기를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가뜩이나 만연한 반기업정서가 기업총수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업의 추진력을 꺾어버리는 실정이다. 이번 특별사면 대상자에 기업인을 포함함으로써 기업인의 사기를 진작하고 투자확대라는 기반을 다져야한다. 상당부분의 형을 치르고 위법사실에 대해 반성하는 기업인들에게 사면을 통해 기업 현장으로 돌아갈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경제의 재도약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