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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불행 중 다행이다. 북한의 휴전선 지뢰 도발 사건 직후 그중 시원한 말이 나왔던 게 8월12일자 동아일보 사설 ‘청와대와 군(軍), 그 정도 응징으로 북(北)이 움찔하겠나?’였다. 같은 날짜 조선-중앙 사설의 어설픈 논리, 미적지근한 대응 주장과는 썩 구분됐다.
이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북 지뢰 도발, 냉정하고 정확하게 응징해야’였는데, 응징보다는 냉정에 무게가 실렸다. 중앙일보는 한 술 더 떴는데, 뜬금없는 사회통합 타령을 했다. 사실상의 전쟁행위를 감행해온 적에 대한 응징 얘기를 쏙 빼놓은 그런 신문들과 대조적으로 동아일보는 군 통수권자의 결기부터 강조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가 결코 반가울 순 없지만 그것까지 두려워한다면 북의 군사도발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결코 지킬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결기를 보여야 한다.”국방부가 북의 소행임을 밝힌 엊그제 그날 바로 대통령 발언이 등장하지 않았던 걸 지적한 것이다.
그게 맞는 말이다. 모처럼 정신 차린 야당도 강력한 대북 응징을 주문하고 있는 판이다. 우리병사의 한 명은 두 다리를 잃었고, 다른 한 명은 한쪽 발목이 날아갔는데, 이렇게 당하고도 대화의 손길을 내민다? 더구나 김정은이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한 첫 도발이라서 효율적인 상황관리가 중요한데, 안타깝지만 여기까지가 우리 실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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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호 국방부 조사단장(국방전비태세검열단 부단장)이 10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북한이 비무장지대(DMZ)에 살상용 목함지뢰를 매설한 행위와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연평해전>을 본 600만 명이 지뢰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더구나 영화 <연평해전> 흥행 성공 직후가 아닌가. 영화 매체는 영화 이상의 것, 즉 사회의 집단정서에까지 영향을 깊숙하게 준다. 그 영화에 무려 600만 관객이 몰려 우리 해군의 손발을 묶었던 엉터리 교전수칙 때문에 당했던 13년 전 해전에 분노와 눈물을 함께 했다.
이후 천안함과 연평도를 거쳐 다시 휴전선 지뢰에 당한 지금 적과의 대화를 말하고 사회통합의 계기로 삼자고? 그것이야말로 정신착란의 징후가 아닐까? 지뢰가 터지던 그 날 필자는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토론회 ‘<연평해전>이 한국사회에 던진 의미는 무엇인가’에서 발제를 맡았다.
그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국방을 미군에 외주(外注) 준 한국사회의 웰빙문화의 타락”이었다. 그 결과 생겨난 전쟁공포증 혹은 가짜 평화주의라는 고질병이 언론과 정치권의 지리멸렬로 연결된다는 걸 고발했다.
다시 확인하지만, 바로 지금 상황에서 적과의 대화를 말하고 사회통합의 계기로 삼자는 주문이야말로 적 앞에 무장해제를 말하는 속삭임이다. 약골사회에서만이 그런 ‘배신의 목소리’가 평화의 이름 아래 등장한다. 유감스럽게도 이게 너무 오래 반복됐다. 그 결과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일하며 싸우자”는 박정희 시대의 캐치프레이즈가 통하던 30여년을 빼곤 지금 우린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지경이다.
“<연평해전>은 물론 서해교전 이후 다시 발생했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을 다시 겪으며 또 한 번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았으면서도 우리 군은 도발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당한만큼 갚아준다는 보복의지야말로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나라의 기본인데, 우린 그게 없다. 혹시 강경대응을 하자는 목소리를 누가 내면 “그럼 전쟁을 벌이자는 얘기냐?”는 얼치기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당신이 느꼈던 슬픔과 짜증 그리고 답답함이 이런 한국사회 집단정서에 대한 극복의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영화체험으로 그칠 게 우려된다. 그 경우 대한민국은 또 한 번 골병 든 사회로 회귀할 것이다. ”
그날 발제문에서 필자가 경고한 것처럼 지뢰사건에 대한 대응 역시 앞으로가 중요하다. 사실 영화‘연평해전’을 무려 600만 명의 관람객은 지금도 궁금하다. 왜 우리가 손발을 묶인 채 적탄에 노출되어야 했던가에 대해 분노를 여전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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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편해전 장면. |
엉터리 교전수칙 만든 좌파대통령 국정조사해야
이런 분노와 눈물에 대한 명쾌한 답이 주어지지 않고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국민들에게 요구할 수 없고,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감히 말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궁금증을 놔둔 채‘연평해전’이 감동적이었다는 식의 피상적인 멘트만 남발하다보니 안타깝게도 600만 관객에서 멈췄다.
그게 1000만 관객이란 고지로 치고 올라가려면, ‘분노의 조직화’가 필요했었다. 분노의 조직화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적(利敵)혐의마저 없지 않은 엉터리 교전수칙을 군에 강요했던 전직 대통령 김대중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정치사회적 응징을 감행했어야 옳았다. 응징의 하나가 국정조사다.
국회가 중심이 된 국정조사에서 몰살을 강요하는 교전수칙을 만든 계기와 과정이 시원하게 파헤쳐졌어야 했다. 동시에 북한 해군의 선제공격을 명시했던 감청(監聽)결과를 고의로 무시했던 군 명령체계의 문제, 북한 함정이 아군의 역공으로 침몰직전이었던 상황에서 발포중지 명령을 내린 과정 등도 두루 밝혀야 옳았다.
또 있다. 주적(主敵) 개념을 임의로 삭제하고, 휴전선의 대북방송을 중단(2004년)했던 또 다른 좌파 정부의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국정조사로 확대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안타깝게도 <연평해전> 직후 만들어진 사회분위기에서 우리는 그걸 해내지 못했다.
재확인하지만 연평해전 국정조사를 당장 하자는 발언이 집권여당에서부터 나오는 게 이 약골의 나라, 문약(文弱)의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로 복귀하는 지름길이다. 그쯤 되어야 “국방을 미군에 외주(外注) 준 한국사회의 웰빙문화의 타락현상”이 조금은 가셔 질 수 있다.
전쟁공포증 혹은 가짜 평화주의라는 고질병에 대한 치유도 시작될 것이다. 그것까지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그게 모두 무기력해진 한국사회 볼썽사나운 실력이 노출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북한의 휴전선 지뢰도발에서 다시 한 번 뭉개다가 정부와 한국사회가 함께 실기(失機)를 하지 않을까 다시 걱정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