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비극 '탄핵'…정치 개혁 출발점 '개헌'에 답 있다
2025-04-07 17:17:11 | 문상진 기자 | mediapen@mediapen.com
우원식 국회의장 대선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시의적절
이재명 대표 "내란 덮는 개헌" 주장은 잘못 '내란 막는 개헌'
이재명 대표 "내란 덮는 개헌" 주장은 잘못 '내란 막는 개헌'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마저 탄핵당했다. 이로써 3명의 대통령이 퇴임 후 구속됐고 1명은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2명은 탄핵으로 파면됐다.
되풀이 되는 권력의 수난사는 개인적 치부로 돌리기에는 상식의 선을 넘었다. 제도적 문제를 고민할 때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최고 권력이 탄핵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채 역사적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개인적 문제였다면 그때마다 치르는 사회적 비용이 이토록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갈라진 여론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갈등 비용이 너무나 크다. 모두가 애국을 부르짖으며 길거리로 나서는 이 황당한 사태가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할까? 개개인의 신념은 존중돼야 하겠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팬덤'으로 형성된 그들만의 리그가 우리 사회에 병폐처럼 뿌리내렸다.
바뀌어야 한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의 권한과 승자만의 권력 독식이 불러온 슬픈 자화상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제 기존의 제왕적 제도와 이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섰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낡은 제도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할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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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선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 대표는 "내란을 개헌으로 덮는다"고 했지만 사실상 개헌으로 내란을 막겠다는 것이 개헌의 당위성이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때마침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일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어느 때보다 개헌의 시급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크다"며 6월 초로 예상되는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시의적절하다. 미룰 수 없는 정치적 과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자 정치권의 자성이다.
우 의장은 개헌에 대한 국민의 우호적 여론을 의식하며 '개헌은 시대적 요구'라며 "승자 독식 위험을 제거하고 국민 통합으로 가기 위해 권력을 분산하고 협치를 실효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라고 개헌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아울러 국민투표법을 개정하고 국회 헌법개정특위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시의적절하다. 우 의장은 "대통령 임기 초에는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될까 주저하게 되고, 임기 후반에는 레임덕으로 추진 동력이 사라진다"며 "새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물꼬를 터야 한다. 권력을 분산해 국민주권·국민통합을 이뤄내라는 시대적 요구가 가장 명료해진 지금이 적기"라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리더의 공백으로 인한 국민 혼란과 국격 훼손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처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된 정치체제인 '87년 체제'는 이후 3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뀐 게 없다. 당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양당제 정치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대통령의 권한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었다. 반면 입법부는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현직 대통령이 두 차례나 연속 파면됐다. 그 과정 속에는 전방위적 국가위기가 초래되고 내전이나 다름없는 국론 분열상이 나타났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과 당 대표, 1%로도 안되는 차이로 당선됐지만 100%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선거구제 등 '87년 체제'의 모순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제 60일 이내에 21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광장을 물들인 갈등과 볼모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화합과 지속가능한 생산의 정치를 모색해야 할 시간이다. 몸에 맞지 않는 현행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정치적 비극은 필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 독식의 헌법 체계는 역사의 교훈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계점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제도 탓이 아닌 사람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건 결국 제도 속에 있다. 그걸 명확히 확인시켜 준 것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문제는 이미 모든 국민들도 목도하고 있다. 제왕적 권한을 손에 쥔 대통령은 일방적이다. 다수당인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며 발목을 잡는다. 중간지대는 없다. 협치는 실종되고 극한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이다. ‘총성 없는 정치 전쟁’이다. 볼모를 자처한 '팬덤'은 자기들만의 믿음에 갇히고 죄 없는 국민만 피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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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어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마저 탄핵당했다. 이로써 3명의 대통령이 퇴임 후 구속됐고 1명은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2명은 탄핵으로 파면됐다. '87년 체제' 헌법에 대한 개정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
'87체제'가 점점 빛을 잃어 가면서 협치 정치는 실종되고 극단의 대결만이 잉태됐다. 오직 당리당략과 단판 승부인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책이 아닌 정략으로 승부한다. 윤석열 정부와 거대 야당의 자화상이자 민낯이다. 정치가 아닌 권력 싸움에 모든 것이 부셔졌다.
노동·교육·연금·규제·교육·의료·공공 개혁 등 핵심 국정 과제는 대결 정치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국익 대신 표와 자기 편들기가 정치를 주도했다. 정쟁의 악순환 속에 포퓰리즘과 선심 정책이 난무했다. 경제적 도약과 사회적 갈등 봉합은 되레 후퇴했다. 미래 지표는 어두워지고 젊은 세대는 편이 갈려 분노한다.
개헌의 필요성을 부르짖으면서도 대통령이 되면 누구나 외면했다. 권좌에 올라 권력을 나누는 건 권력의 누수이자 권위에 대한 포기다. 쉽지 않다. 따라서 지금이 적기다. 권좌의 위력이 불러온 위험한 경고를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 위험한 유혹을 권좌에 오르기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
모두가 개헌의 필요성을 경험치로 말하고 있다. 국민의 의도와 제도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개헌의 통론(미래)에는 찬성이지만 각론(현재)에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7일 밝혔다. 이 대표의 태도는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자이기에 갖가지 해석을 부를 수 있는 셈법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대선·개헌국민투표 동시 실시' 제안에 이 대표는 "내란을 개헌으로 덮겠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잘못됐다. 우 의장이 밝힌 개헌의 취지는 '내란을 개헌으로 덮는 게 아니라 개헌으로 내란을 막겠다'는 것이다. 개헌 당위성의 방점이 여기에 있다.
이 대표만이 역설적으로 해석한다. 국회가 탄핵소추한 윤석열 대통령을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파면했다. 이제 분열된 국민과 정치를 통합하고 화합의 길을 나가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윤 전 대통령도 이재명 대표도 숱한 재판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악령이 떠오른다. 극단으로 치달은 이 위기를 법이 아닌 감정과 살아남은 자의 권력으로 또다시 처단하려 한다. 남은 건 법의 시간이다. 정치의 공간과 법의 시간을 망각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공자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 했다. 잘못했으면 빨리 고쳐야 한다. 절호의 기회를 놓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고 나면 사필귀정의 시간이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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