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와 사민주의 함께?…새는 양 날개로 날지만 경제는 아냐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1. '자유화’의 기치가 가진 매력

케이토 연구소 보아즈 부소장이 쓴 책,『자유주의로의 초대』에는 사람들이 자유를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 정책 차원으로 들어가면 자유주의의 버스를 내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이들은 아직 자유주의를 체화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그냥 '작은 정부’라고 하면 찬성하다가도 그 작은 정부가 함축하고 있는 복지지출의 축소를 이야기하면 그 복지지출 축소로 고통을 받을 사람들이 걱정되어 흔쾌히 찬성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나 '작은 정부’의 내용을 왜 필요한지 하나씩 자세히 제대로 이야기해 주고, 이를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면 이 때 얻을 수확은 정말 크고 본질적이다. 그런 일은 일종의 종교적 개종을 얻어낸 데 해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렇게 하면 아예 귀를 열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 문제도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정치가나 관료들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자신들이 할 일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자세히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케인지언적인 적자 재정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처음에는 귀를 기울이던 '정치가’가 그 논리가 함축하는 것이 적자 재정정책을 개선하라는 것이 아니고 아예 철폐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뒤로 물러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 대신 산업화, 민주화와 병렬시켜 자유화를 기치로 내세우는 것은 전략적 측면에서 두 가지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자유화’의 기치는 지금 우리경제에 필요한 정책을 찾는 사람들, 정치가와 관료들에게도 '할 일’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자유화’의 기치가, 특히 산업화, 민주화와 함께 병렬될 때, 하나의 정책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고 정치가나 관료들에게 해야 할 구체적 어젠다를 주기 때문이다.

   
▲ '새는 양 날개로 난다’면서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마치 경제가 번영할 것처럼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시장경제의 자유를 택한 대한민국. 전체주의 아래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택한 북한. 남북한 번영의 차이를 보면 이는 확연히 드러난다./사진=연합뉴스

2. 과잉민주화가 문제라면 다음 갈 길은? '자유화’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은 산업화 이후 과잉민주화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최근 칼럼으로는 현진권,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은 '자유화’다.” 조선일보, 2016.1.4.) 산업화 시절에는 정치가 경제에 간섭하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일종의 '정치의 경제화’가 이루어져 빠른 산업 발전을 이룰 수 있었는데, 민주화가 된 지금은 오히려 '경제의 정치화’로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심해져서 효율적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화’ 기치가 가진 중요한 매력은 이런 공통된 인식 아래 우리가 가야할 다음 길에 대한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산업화 대 민주화’라는 대비적 프레임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유화’라는 대안을 생각하기보다는 과거가 좋았다는 식의 언급을 하고 거기에서 그친다. 그렇게 되면 은연중 과거의 발전국가 모델로 회귀하면 우리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 실제로 '자유화’라는 대안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면서 미래산업 '육성’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누가 어떤 방법으로 미래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에 대해 구체적 수준에서 계획해 낼 수 있다는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을 정말 정부가 민간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면,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자유화란 흥성할 미래 산업을 정부가 육성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기업가들의 발을 묶고 있던 것들을 풀어주는 것이다. 기업가들이 창의적으로 그런 생각을 경쟁적으로 실천해나감으로써 경쟁을 통해 미래 산업이 자생적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유화도 상당히 매력적인 구호다. 이와 관련 랜달 홀콤(R. Holcombe)은 이제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과거처럼 모방을 통해 성장할 수도 없으므로 산업화와 민주화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업가정신이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자유화의 기치는 홀콤이 이야기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 과거 산업화 시기에는 '정치의 경제화’가 이루어져 빠른 산업 발전을 이룰 수 있었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은 오히려 '경제의 정치화’로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심해져서 효율적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3. 투사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획득했더라도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에 대한 침해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당연히 자유를 얻는 과정도 공짜일 수 없다. 자유화도 공짜일 수 없다. 저절로 될 수 없다. 투사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투사는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자유경제원에 너무 많은 주문을 하는 것 같지만, 구체적 비전을 가지고 투사를 길러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그런 투사들이 길러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유론을 쓴 J. S. Mill의 친구 William Ellis가 J. S. Mill의 아버지 James Mill에 대해 언급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임스 밀은 나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그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우리 경제가 발전하려면 정확한 정책들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대중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그래야 비로소 정책이 실천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 정확한 전달이 되려면 결국 평소에 대중에게 왜 이런 정책들이 필요한지 설득하는 투사들이 필요하다. 그런 투사가 길러지려면 논리와 열정을 갖추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는 양 날개로 난다’면서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마치 경제가 번영할 것처럼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반면 북한은 인민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였다. 그 결과가 남북한 번영의 차이인데 소위 양 날개론은 이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칼럼에도 양날개론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논리와 함께 '자유주의 운동에 헌신’할 열정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화’ 투사, 더 나아가 '자유주의’ 투사들이 길러질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정치가나 관료들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자신들이 할 일이 거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자세히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사진=미디어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