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 신간 '3년 후, 한국은 없다' 펴내
언제나 웃는 인상으로 '10년 후 한국' '10년 후 세계' '10년 법칙'과 같은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책을 써왔던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이 표정을 바꿨다. 

평소였다면 '3년 후 한국'이라는 신간을 냈을 법한 그가 한 문장을 더 붙여 '3년 후, 한국은 없다'를 출간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의 아이콘인 공병호 소장의 눈에도 대한민국의 현주소에는 비관의 요소 밖에 없다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어렵게 시간을 내 단독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의 현재에 대해 매우 직설적인 표현을 이어갔다.

   
▲ 미디어펜과 단독 인터뷰에 응한 공병호 박사는 "한국의 위기는 통념의 위기"라고 단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새해 벽두부터 ‘3년 후, 한국은 없다’는 비장한 제목의 책을 내셨습니다.
 
-역대 가장 어두운 톤으로 비장한 메시지를 담은 책입니다. 제목에는 약간의 생략이 있는데 '이대로 가면 없다'는 뜻을 담고 싶었어요.

-2004년 '10년 후 한국'을 쓰셨을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는 의미인지요.
 
-그렇습니다. 그 책을 썼을 때엔 진보 색채가 강한 참여정부 시절이었죠. 그래도 바깥(국제) 사정이 상당히 좋았고 우리도 어느 정도 힘이 있었을 때입니다. 비관적인 메시지를 말하더라도 낙관적인 분위기를 바탕에 깔고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어떤 부분이 가장 문제인가요? 이번 책에는 성장률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요.
 
-2012년을 전후로 해서 한국 경기가 꺾이면서 계속적으로 성장률이 3퍼센트 밑으로 떨어지는 문제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2% 대에서 머무를 성장률을 100~200조 원을 투입해서 부양시킨 결과 3% 초반 성장률이 근근이 유지되고 있는 거죠. 아주 심각해요. 이건 그저 단순현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고 집단적 선택, 그러니까 정치적 의사결정을 잘 내려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정치는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말로 중요한 것인데 지금 한국인들은 퇴행적인 선택을 너무 많이 하고 있어요.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시스템 전체가 주저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쓴 거죠.

-굳이 3년 후, 그러니까 2019년을 특정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2017년 한국은 19대 대선을 하고, 2018년이 되면 평창올림픽을 하게 됩니다. 저는 평창올림픽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어요. 화려한 스타디움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그리스는 올림픽 이후 엄청난 경제위기를 맞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역시 2018년 평창의 그 멋진 활강장에서 올림픽을 마친 뒤 2019년에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간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한국은 없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쓴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건국 70년 된 나라에 1000조 빚이 쌓였는데, 그 중 20%가 넘는 200조원이 최근 3년 사이에 만들어졌어요. 엄청난 가속도입니다. 이런 패턴이면 다음 세대까지, 아니 10년까지도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시장경제 원칙에 더 가까이 있다는 우파정부가 근 10년째 집권을 하고 있는데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걸 보면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단임 대통령제에서는 인기영합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죠. 정권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는 포퓰리즘이라는 화장(化粧)을 해서 고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예전에 넘어섰습니다. 화장이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그저 겉보기에 멀쩡하게 보이는 것에 집착을 하죠. 

사람들은 회계를 분식(粉飾)하면 큰일이 나는 걸로 생각하지만, 그나마 분식회계는 특정기업 하나에만 영향을 주죠. 그러나 어떤 국가가 '분식개혁'을 하면 그 폐해는 국가 전체로 번집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10년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분식회계로 점철된 기간’이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파이신 줄 알았는데 우파 정부에 매우 비판적이시군요.
 
-애정이 있으니까 비판도 하는 거겠죠. (웃음) 이명박 대통령께서 2008년 취임식 때 '이념의 시대는 갔다'는 얘기를 하셨죠. 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이념의 토대 위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토대의 시대를 '갔다'고 했다는 건 철학이 튼실하지 않았다는 의미죠. 그랬으니 아무리 바쁘게 일을 해도 개혁이 제대로 될 리도 없고요. 분주하게 사진만 찍다 끝난 겁니다.

   
▲ 공병호 박사 신간 '3년 후, 한국은 없다' 표지
-'3년 후, 한국은 없다'를 읽다 보면 한국인들의 '민족적 특성'을 언급하시고 있는데요. 민족주의가 낡은 유산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한국인의 특성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양대학교 김용운 명예교수는 '원형'이라는 표현을 쓰시죠. 한 개인을 보면 그 사람만의 특수한 기질이 있잖아요? 물려받은 것도 있고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것도 있습니다. 근데 민족도 똑같아요.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나 역사적 요인에 따라서 그 민족이 가진 고유한 장단점 같은 게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경우 쉽게 고양되고 흥이 많죠. 눈썰미와 순발력, 속도감이 매우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 장점이 단점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한국인들은 굉장히 당파적이고 추상적‧관념적입니다. 역사를 보면 그런 패턴이 계속 반복돼 왔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실(fact)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또 하나는 농경민족적인 특성입니다.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미리 전략적이고 계획적으로 준비를 해 나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요. 다만 '하늘'에서 내려주는 빗방울을 기다리는 이른바 천수답(天水畓)식 사고방식이 강하죠. 

국가경영도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개인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 사례를 들자면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킨 분들을 보면 참 정치하시는 분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원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다면 아까 말씀하신 단임 대통령제와 한국인의 '원형'은 서로 잘 안 맞는 것은 아닐까요?
 
-어느 나라나 민주정에서는 민중주의와 중우정치가 어느 정도 유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인의 경우 상당히 감성적인 사람들이라 민주정의 폐해가 더 부각되는 면은 분명 있죠. 지금도 거리에 "박근혜 대통령님 지원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지 않습니까? 아니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들 하나하나를 지원하며, 게다가 지원할 돈은 어디서 나오느냐는 거예요. 

국가경영에 대해서까지도 한국인들은 너무 감성적이라는 겁니다. 앞으로도 한국 민주정치는 민중주의 색채를 강하게 띨 겁니다. 포퓰리즘은 계속 유행을 할 것이고, 브레이크를 잡기도 힘들 겁니다. 제가 점장이는 아니니까 100%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가다가 거리에서 정말로 울부짖는 소리가 나올 수 있고, 그 소리를 내는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포착과 진단, 처방이 전부 '공동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한국의 위기는 공동체의 위기인 걸까요?
 
-아이를 키우는 주부, 노인 수당을 받는 노인, 정규직, 비정규직 등등 한국에는 다양한 유형의 국민들이 존재합니다. 그들 각각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라는 것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최고의 정책방향이라는 것도 존재를 하죠. 

하지만 국가예산은 제한돼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이란 건 없습니다. 쉽게 말해 국민들 개개인이 자신의 삶만을 기준으로 내린 판단은 '부분 최적화'일 뿐, 거시적이고 국가적인 '전체 최적화'와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시스템 전체가 다이내믹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분 최적화와 전체 최적화를 냉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청년들 사이에선 '헬조선'에 '수저계급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최근의 한국은 그야말로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기세 좋게 활동해야 할 청년들이 '통념'이라는 벽에 갇혀서 활동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게 큰 원인을 차지하죠. 공공부문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보니 세금은 세금대로 중과세에, 사교육비와 교육비까지 더하면 젊은 사람들이 결혼 못 하고 아이 못 낳겠다고 하소연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현재 국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아무래도 자꾸 전후좌우를 재고 생각이 많아요. 그렇다보니 청년들의 진출이 자꾸 늦어지고 새로운 게 안 나오는 상황이죠.

-박사님께서 자유기업원(현 자유경제원) 초대 원장에 취임하셨을 때 나이가 서른일곱이셨지만, 요즘 기준에서 서른일곱은 그냥 '애'입니다.
 
-제조업의 시대에는 연공서열에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었고 의미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우버나 구글, 페이스북을 기성세대가 만들었나요? 전부 젊은이들이 만들었죠. 

한국에도 저런 걸 개발할 수 있는 젊은 두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죠. 중국처럼 10억 넘는 인구가 사는 것도 아니고, 5천만 인구 정도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드는 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틀을 깨야 된다는 거죠. 다 앉아서 받아만 쓰니 되겠느냐는 얘기예요. 

한국의 위기는 돈의 위기도, 인프라의 위기도, 제도의 위기도 아닙니다. 한국의 위기는 생각의 위기예요. 한국의 위기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는 데서 오는 통념의 위기입니다. 지금이라도 생생하고 젊은 생각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세상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만 딱딱한 생각의 껍질 속에서 침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2016년은 그런 성찰과 각성의 시간이 돼야 해요.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