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핵심은 다양성 확보…자유의식, 개인성 꽃피워
경제진화연구회는 지난 2월 25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2016 소비의 진화를 말하다’를 주제로 2월 토크파티를 열었다. 정치, 예술문화, 상품소비의 시장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분야별 전문가들의 고견을 듣고 참석자들이 함께 자유로운 질의응답을 펼치는 자리였다. 지난 4년간 경제진화연구회는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사회경제현상과 인식에 대한 진화적 탐구에 힘써왔다. 최근 SNS에서부터 시작한 뉴미디어 발전과 더불어 소비자들의 정보 취득, 소비 행태도 변화무쌍해진 가운데,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그 안에는 퇴보와 진화가 존재해 왔다는 문제의식으로 경제진화연구회는 각 분야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예술문화 부문 발제자로 나선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은 ‘대중문화 소비 진화는 자유로운 소비로의 진행 과정’을 주제로 삼아 발표했다. 이 편집장은 “문화란 개개인이 자신의 취향과 관점 등에 대한 확인과 향유 욕구를 보상받는 구조”라며 “다양한 개인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돼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이문원 편집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대중문화 소비의 진화는 ‘자유로운 소비’로의 진행 과정이다

대중문화산업에 있어 소비의 진화는 여러 차원에서 목격된다. 당연히 소비형태의 진화, 소비하는 미디어의 변화, 소비환경의 다양화 등이 거론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문화산업에 있어 소비의 ‘진화’를 얘기하고자 할 땐, 근본적으로 ‘이상적인 문화시장’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될 수밖에 없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이를 꼽자면, 자연스럽게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가 폭넓게 소비될 수 있는 시장’이란 개념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결국 문화란 개개인이 자신의 취향과 관점 등에 대한 확인과 향유 욕구를 보상받는 구조이며, 그렇게 다양한 개인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그렇게 다양한 콘텐츠가 제공돼 소비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중점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놓고 한국 대중문화시장의 흐름, 그리고 전 세계 대중문화시장의 흐름을 지켜보면, 분명 모든 종류의 기술적/환경적 변화들은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를 지닌 소비’를 위한 방향으로 진행돼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들 요구에 부응해 제도를 타파하고 소비의 진화를 이룬 한국영화시장

국내 각종 대중문화 장르들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산업화된 영화 장르를 중심으로 이 ‘자유로운 소비’ 개념을 생각해보자.

많이들 알다시피,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영화 콘텐츠의 소비는 극히 제한적이며 상당부분 억압적인 형태로 이뤄졌었다.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스크린쿼터 제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당시 상황에 비춰 하나씩 살펴보자.

일단 외화수입제한조치가 있었다. 애초 이 제도는 일제시대인 1933년 시행된 조치였는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1951년 다시 참의원에서 제기된 후, 1960년대 초반 실질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먼저, 1963년부터 1984년까진 한국영화를 제작하는 등록 제작사만 외화 수입업과 수출업을 할 수 있었다. 1970년 제3차 개정 영화법으로 잠시 외화 수입업의 독자등록이 가능했지만, 1972년 제4차 개정 영화법으로 다시 통합됐다.

한편 외화 수입 편수와 금액 쿼터제도 실시돼 실질적으로 정부에 의해 외화시장의 규모가 조절됐다. 1960년대엔 연간 평균 60편 내외의 외화가 수입되다가 1970년대 이후에는 20~40편의 영화가 수입됐다.

거기다 외화의 경우 프린트 벌수도 제한을 둬 같은 영화를 여러 극장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공윤 수입신청 시에 1회사 1편 심의 신청 제한을 둬 한 회사에서 한 번에 여러 외화를 수입/배급하는 일을 막았다.

대중이 소비하고자 하는 영화들을 공적개념에서 통제해버린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까. 자연스럽게 시장이 왜곡돼 폐해들이 일어나게 된다. 먼저 한국영화 스크린쿼터를 채우려다 보니 아무리 외화가 흥행에 성공해도 해당영화는 한 극장에서 장기상영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다보니 개봉관에서 아무리 매진행렬이 이어져도 개봉관 측은 영화 상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앵콜상영’이란 형태로 외곽의 재개봉관에서 이어받아 상영하는 패턴이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조금 늦게 영화를 찾았다 해서 지리적 여건이건 시설 상 조건이건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소비해야만 했다.

한국영화 제작사들에만 외화 수입권을 주는 정책도 폐단이 더 컸다. 잘 나가는 외화를 수입해오기 위해 한국영화를 제작해야만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다보니, 극도의 저예산으로 불과 일주일 내에 제작해 그야말로 ‘제출용’으로 극장에 걸어놓기만 할 목적으로 제작된 졸속영화 제작이 성행했다. 애초 한국영화를 보호하고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기획한 제도는 오히려 소비자들로 하여금 한국영화에 발길을 끊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왔다. 

   
▲ 인터넷의 등장은 혁명적이었다. 아예 영화의 유통권력 자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불법 웹하드로부터 시작된 유통혁명은, 시간이 지나자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인터넷 영화유통 사이트가 ‘창고형 유통’을 시작해 그 어떤 콘텐츠건 방대한 규모의 선택지를 부여받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했다./사진=넷플릭스 홈페이지


한편 저렇게 실질적으로 외화 ‘탄압’ 정책을 펼치다보니 공급량을 제한 통제 중심 영화시장에서 외화의 희귀성이 급등해 오히려 가치가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영화와 관객 수가 비슷했던 외국영화는, 오히려 상영편수가 급격히 줄어든 1970년대부터 인기 폭등세를 보여 외화 평균 관객수가 한국영화의 3배 이상 웃도는 현상을 낳았다.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진행되는 시장이 아닌, 제도가 소비자를 억압해 자신들이 이상시하는 형태의 시장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는, 이처럼 커다란 폐단만을 남기고 소비자들은 소비자들 나름대로 피해를 입어 결국 1969년 이후 영화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돼가는 현상을 낳았다. 특히 1980년대 들어 영화시장은 극단적으로 위축되고 있었는데, 이때는 외화 수입 시 편당 수입사 측에서 1억 원의 국산영화 진흥기금을 자진납부하는 제도까지 등장해있던 시점이다. 더더욱 자유로운 소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소비자들이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시장, 즉 ‘소비의 퇴화’ 단계였던 셈이다.
 
이 같은 극악한 환경은 1985년 제5차 영화법 개정을 통해 외화 수입업자와 제작업자를 분리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1차적으로 개선됐고, 1985년 10월 개최된 제1차 한미영화협상에서 1987년부터 외국 영화사의 국내 지사 설치를 허용하고, 외화 수입 편수 쿼터제 및 외화 수입 가격 상한제를 폐지하는 사항에 합의했다. 그 후속조치로 1986년 제6차 영화법 개정에서 미국 영화사의 국내 영업을 위한 조항이 개정됐다.

1988년엔 외화 수입 제도의 완화 또는 폐지를 요구하는 제2차 한미영화협상이 개최됐다. 이 결과, 외화 수입 심의용 영화 프린트 통관 추천 제도를 폐지하고, 외화 수입 프린트 벌수 제한을 폐지하며, 공연윤리위원회의 외화 심의절차를 간소화할 것 등이 합의됐다. 이로써 20년 이상 통제돼있던 외화에 대한 시장 개방이 제도적으로 완료됐다.

그렇게 해외영화사 직배사 등이 국내 영화수입업자들의 반발을 사며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 오히려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점차 올라갔고,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영화시장규모의 확대는 물론 한국영화에 대한 만족도도 점차 높아져 시장점유율 차원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보호 없이 외화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특히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 의무상영일수가 대폭 줄어드는 시점들을 계기로 오히려 경쟁력이 배가되는 현상까지 보였다.

그렇게 전 세계 영화들이 자유롭게 다량으로 시장에 진입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기존 한국영화들도 진일보해 자국문화에 대한 살가움과 애착을 지닌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비로소 한국영화시장은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를 지닌 소비’로 한층 진화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를 지닌 소비’를 향해 나아간 미디어의 진화

한편, 대중문화시장 진화의 또 다른 일면인 미디어의 변화 측면도 같은 맥락에서 똑같이 바라볼 수 있다. 단순히 문명의 발전으로 ‘보다 간편한 소비환경’을 구축하게 된 차원이라기보다, 이 역시도 궁극적으론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를 지닌 소비’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1950년대 미국 영화산업을 발칵 뒤집어놨던 TV의 보급부터가 그렇다. 처음 영화업계는 자신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밥그릇 싸움 대상으로만 여겼지만, 곧 영화는 TV가 보여주지 못할 스펙터클 블록버스터 개념으로 중심을 옮겨가 극장화면에 제대로 걸 맞는 영화들을 통해 소비자들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했고, TV는 보다 작은 규모의 진진한 인간드라마와 시트콤 등을 선보이며 극장을 통해서만 볼 수 있되 극장화면의 효과는 미미한 콘텐츠를 팔아 자신만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결과는 영화산업과 방송산업은 각자 윈윈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고, 각기 다른 방향성에서 고도화된 콘텐츠를 보게 된 소비자의 만족도는 극히 올라갔다. 당연히 그만큼 보다 방대한 선택지가 마련된 것은 자명했다.

1980년대를 강타한 VCR의 보급도 마찬가지다. 미국영화배우 커트 러셀은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비디오카세트라는 게 없었더라면 내 커리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미국영화배우 커트 러셀은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비디오카세트라는 게 없었더라면 내 커리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은 컬트액션 SF의 고전, 영화 뉴욕탈출에서 주인공 ‘스네이크’역으로 분한 커트 러셀. /사진=영화 ‘뉴욕탈출’ 스틸컷


커트 러셀의 초기 출연작들은 극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영화들이었다. 일단 독특한 취향의 영화들인 탓에 극장주들의 눈길을 끌지 못해 대규모 배급에 실패, 소비자들의 관람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이 비디오카세트로 출시되자 제한된 상영관들 안에 극장주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골라 넣는 ‘설계된 배급’이 아닌, 넓은 진열대 안에 여타 영화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입장으로 한층 올라설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과격하게 설계된 배급구조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들을 찾아 자신들만의 취향과 새로운 트렌드를 향유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커트 러셀의 커리어도 새롭게 재편되고, 소비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를 지닌 소비’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이후 VCR 시장의 위력을 감지한 영화제작사들이 오직 비디오대여점 진입을 목표로 한 VCR 전용 영화들을 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했다.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방대한 선택지가 펼쳐졌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보다도 훨씬 더 혁명적이었다. 아예 영화의 유통권력 자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불법 웹하드로부터 시작된 유통혁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인터넷 영화유통 사이트가 같은 ‘창고형 유통’을 시작해 그 어떤 콘텐츠건 방대한 규모의 선택지를 부여받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마련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기존 영화유통 과정에서 삭제되다시피 했던 단편영화 등이 인터넷을 통해 소비창구를 얻어내고, 저예산 영화와 아마추어 영화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동참해 독특한 취향을 보상받길 원하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된 환경은 더더욱 혁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1990년대에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미국 시골에 사는 어느 작고 뚱뚱한 소녀가 자신의 손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는 진정한 예술이 될 것이다.”

문학과 미술, 음악처럼 해당 장르의 소비자가 곧 창작자 역할을 하기도 쉽고, 그래서 더 풍부한 감흥을 즐길 수 있는, 그리고 그래서 더 풍부한 시장으로 옮아갈 수 있는 환경이 영화 장르에서도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멘트였다. 그러나 영화는 여타 장르들에 비해 너무나도 전문적인 기술과 장비를 요구하는 장르였기에 그런 자연스러운 예술적 피드백 과정이 불가능하다는 한탄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자마자 전 세계는 간편하게 휴대폰 하나로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는 환경에 매료됐고,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역시 스마트폰 환경 내에서 다양한 차원의 새로운 소비패턴을 낳아 ‘방대한 선택지’를 마련하는데 또 다른 일조를 하게 됐다.

결국 기술발전을 통한 미디어의 진화는 대중문화 장르들이 지닌 근본적인 ‘소비의 진화’ 핵심, 즉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를 지닌 소비’와 정확히 궤를 같이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진화된 문화소비’란 결국 ‘개인성의 충족’

물론 이 같은 대중문화 소비의 진화 양상은 여타 장르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음악도 문학도 심지어 미술과 같은 분야까지도 그렇다. 모두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방대한 선택지의 소비’를 향한 방향으로 갖가지 불필요한 제도들을 타파하고 관습을 부숴나갔으며, 미디어 발전 방향 역시 그와 궤를 같이 했다.

국내에 라이센스 계약이 안 된 음반은 들을 수 없었던 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 문학 역시 인터넷용 콘텐츠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소비를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유도하고 있다. 기존에 소비에 제한을 줬던 장벽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재차 언급하지만, 문화의 핵심은 역시 다양성의 확보에 있다. 프랑스작가 조르주 페렉은 1960년대 영화관람의 행태를 묘사하며 “종교적 경배의 양태와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제작사와 배급사가 제시한 몇 안 되는 선택지 내에서 관람을 해야 했던 소비자들은 그들의 제한된 선택 안에서 모두들 우르르 같은 취향을 유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층 진화된 소비로 올라선 지금의 상황은 그와 크게 다르다. 이제 문화는 온전히 개개인의 취향과 관점을 충족시켜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향유로 각기 갈라져 개인성의 요구와 강화에 일조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기준, 같은 잣대에서, 같은 삶을 살도록 유도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각기 다른 삶을 살며 각기 다른 개인성을 누리도록 의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 바로 문화의 목표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이문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