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레전드, 음원차트 올킬…문화예술 독점의 르네상스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바람이다. 그럼에도 인고의 노력 끝에 최고가 된 기업, 상품에 ‘독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독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말이다. 독점은 정말로 나쁜 것일까라는 문제의식으로 자유경제원은 14일 ‘모든 예술인은 독점을 원한다’ 예술인이 본 시장경제 시리즈 연속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자유경제원 토론회는 지난 7일 열렸던 자리에 이은 2차 토론회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와 윤서인 만화가가 발제자로 나섰고,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과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이 패널로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윤서인 만화가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독점의 폐해를 말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라며 “시청률 차트 톱에 자리한 드라마,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던 곡, 천만 관객 영화를 전설의 레전드로 기억한다”고 지적했다. 윤 만화가는 “문화 예술의 핵심은 경쟁과 독점”이라며 “1등을 오래 차지하는 독점 상품이 나오면, 해당 문화예술 분야도 덩달아 파이가 커지는 사례가 흔하다”라고 강조했다.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가요계의 독점 콘텐츠가 일으킨 파급력이 새로운 아이돌 그룹이 데뷔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는 설명이다. 아래 글은 윤서인 만화가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윤서인 만화가
우리는 독점을 ‘전설’ 이라고 불렀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독점의 폐해를 말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영화에서, 음악에서, 만화에서, 드라마에서 사실 독점이 폐해가 어디 있나. 시청률 차트를 독점했던 드라마를, 빌보드 차트를 독점했던 음악을, 천만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우리는 독점의 폐해로 기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전설의 레전드’ 로 기억하지 않는가. 

빌보드 차트를 16주 동안이나 부동의 1위로 독점했던 보이즈 투 맨과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 “One Sweet Day”를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명곡으로 기억한다. 14주 + 6주 두 곡으로 연달아 20주간 1위자리를 지켰던 보이즈 투 맨 역시 전설의 보컬 그룹임에 이견이 없고, 지금은 사망한 휘트니 휴스턴이 전설의 가수인 이유도 바로 'I Will Always Love You' 로 14주간 독점했던 위대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전 국민의 귀가시간을 앞당기며 안방극장을 독점했던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를 우리는 시대의 아이콘이자 드라마의 전설로 회자한다.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들은 그 계보를 번번이 되새기며 수도 없이 반복 언급된다. 최근 유투브 차트를 독점했던 싸이의 노래는 놀라운 대한민국의 자랑이라고 누구나 말한다.

모든 문화예술 상품은 독점을 목표로 만들어진다. A급 가수의 신곡은 적어도 나오자마자 금방 내려가더라도 한번쯤은 음원 차트를 올킬, 즉 독점을 해줘야 면이 산다. "에~ 독점은 나쁜 거니까 우리 이번 곡은 적당히 차트 3위 정도만 하도록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음~ 관객을 독점하면 나쁜 거니까 이번 영화는 적당히 한 3백만만 들어오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문화예술 제작자는 없다. 노래 한 곡, 영화 한 편, 만화 한 편도 모두다 최선을 다해 한명의 팬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눈물 겨운 노력으로 만들어 진다. 이렇게 수백 수천의 상품들이 경쟁을 하고 그 중에 어쩌다 나오는 '독점' 상품은 문화 예술의 꽃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점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국민 가수, 국민가요, 국민 영화, 국민 드라마가 되며 두고두고 추앙받게 되는 것이다.

   
▲ 연말연시 드라마 시장을 독점한 응팔에게서 우리는 재미난 점을 발견한다. 그동안 흔한 드라마의 화법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벌도 막장도 나오지 않는 본격 추억팔이 + 소시민의 삶으로 독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사진=드라마 응답하라 1988 스틸컷


문화 예술의 핵심은 경쟁과 독점이다. 음악은 빌보드 차트를, 드라마는 시청률 차트를, 영화는 관객수 차트를, 만화는 조회수 차트를 계속 집계하고 공유하고 언급한다. 어찌 보면 문화 예술만큼 줄세우기 경쟁이 치열한 분야도 드물다. 그러다 여기서 1등을 그것도 오래 차지하는 ‘독점’ 상품이 나오면, 그 순간 해당 문화예술 분야도 덩달아 파이가 커지는 사례도 흔하다.

김건모의 앨범이 200만장을 견인하면 노이즈도, 클론도, 덩달아 음반이 많이 팔린다. 강풀의 웹툰이 대박이 나면 덩달아 다른 웹툰들도 조회수가 늘고 또 다른 연재 기회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대장 콘텐츠 효과라고 한다. 콘텐츠 포털들은 자신들을 상징 할만한 스타 한명을 키우기 위해 혈안이 된다.

필자도 과거 웹툰 포털을 운영하면서 독점 콘텐츠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귀귀의 ‘열혈 초등학교’ 라는 웹툰이 대박이 나자 야후! 카툰세상을 찾는 독자 자체도 많아졌고, 열혈 초등학교를 보러 온 독자들이 다른 웹툰을 클릭하면서 다른 군소 웹툰들 조회수도 덩달아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 1등 콘텐츠의 조회수가 나머지 웹툰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아지고 곳곳에서 언급되며 신드롬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고 결국엔 큰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만일 전체 웹툰 운영 예산이 공평하게 나누어졌다면 1등에게 반 이상을 주고 나머지 콘텐츠들에게는 정말 조금씩만 나누어줘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1등에게 어느 정도 더 지급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조회수 대로 비례해서 몰아주지는 않았다. 원고료가 아무리 차등 지급된다 하더라도 조회수와 정확하게 비례하지는 않는다. 1등이 낸 퍼포먼스로 다른 신인작가들에게 새로운 연재 기회를 주기도 하였다. 독점 콘텐츠가 일으킨 파급력으로 새로운 기회를 또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연예 기획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방신기, 소녀시대가 벌어들인 돈으로 F(x)도 만들고 레드벨벳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팀이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1등 콘텐츠다.

   
▲ 독점 콘텐츠가 일으킨 파급력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연예 기획사도 마찬가지다. 동방신기, 소녀시대가 벌어들인 돈으로 F(x)도 만들고 레드벨벳도 만드는 것이다. 1등 콘텐츠는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날 기회를 만든다./사진=소녀시대 2015년 앨범 '라이언 하트' 표지(SM엔터테인먼트)


최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열풍이 2016년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16일 마지막 방송에서 19.6%(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가구)의 기록을 세웠다. 1995년 1월 케이블채널 개국 이후 역대 최고인 2010년 엠넷 ‘슈퍼스타K 2’의 18.1%를 넘어선 수치다. 또 이날 ‘응팔’의 마지막 회 순간 시청률은 21.6%로, 지상파 방송사를 포함해 동시간대 1위였다. 실시간 모바일 방송(티빙·CJ E&M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91.8%까지 치솟았다. 평소 티빙의 인기 프로그램인 ‘치즈 인 더 트랩’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 등이 30%대 수치라는 점에서 ‘응팔’의 폭발력을 짐작케 한다.

“시청률 1%만 넘어도 성공”이라고 평가받아 온 케이블채널 드라마로서 전인미답의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20%를 넘긴 지상파 방송 작품은 21.5%의 SBS ‘용팔이’에 불과하다. 만약 지상파 드라마였다면 30% 선도 가볍게 넘었을 ‘사랑이 뭐길래’ 급 국민 드라마에 등극하며 지상파 프리미엄까지 붕괴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매출과 수익도 당연히 뒤따랐다. CJ E&M 측에 따르면 다시보기 서비스와 광고 등을 포함한 매출 규모는 221억원에 이른다. 회당 평균 3억원의 제작비를 빼면 160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집계되지 않은 OST와 드라마 관련 상품 등 부가수익까지 합치면 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각각의 배우에게 부여된 부가가치까지 생각하면 이 드라마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할 것이다. 신나는 포상여행과 수익 거둬들이기 시즌이 시작되었다.

연말연시 드라마 시장을 독점한 응팔에게서 우리는 재미난 점을 발견한다. 첫째는 그동안 흔한 드라마의 화법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벌도 막장도 나오지 않는 본격 추억팔이 + 소시민의 삶으로 독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쌍문동 거리가 지나치게 깨끗한 것부터 시작해서 일본 만화의 컨셉을 따른 점이나 매 회 게임 카트리지나 주제가 등등 고증 오류가 속출한 점 등등의 아쉬운 점도 보였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엔 이정도 드라마도 없었던 점이었다. 막장 드라마에 지친 대중들은 기꺼이 추억으로 받아들였고 큰 호응으로 보답했다.

비싼 배우가 등장하지 않은 점도 대단했다. 앱 광고 몇 편을 찍은 혜리를 비롯해 A- 에서 B급 배우들로만 이런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큰 의도라기보다는 케이블 드라마이기도 하고 전작이 큰 성과가 없었던 탓도 있었기에 제작비가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반강제로(?) 배우의 파워에 기대지 않고 콘텐츠의 질로 승부한 점, 드라마가 끝나면서 배우들이 A+급으로 속속 올라서는 점이 결과적으로 혁신이 되었다. 드라마가 배우를 키우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도 보여주었고 이런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며 배우 시장에도 새로운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점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국민 가수, 국민가요, 국민 영화, 국민 드라마가 되며 두고두고 추앙받게 되는 것이다. 2015년의 국민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 응팔이었다. /사진=드라마 응답하라 1988 포스터


독점이 없이 군소 드라마만 범람하는 현실에서는 비슷비슷한 화법과 흔한 콘셉트의 드라마들이 자기복제를 하며 판치게 된다. 맨 그 얼굴이 그 얼굴, 하는 사람만 하고, 똑같은 작가, 똑같은 세트장,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드라마 시장에 응팔 같은 드라마가 나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고 대세이자 독점의 반열에 오르며 모든 것을 바꿔놓는 현상이 해당 문화예술 업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케이블이라는 한계도, 슈퍼 주연도 없고, 지상파 대작에 비해 엄청난 제작비도 없는 핸디캡도 알고 보면 다 핑계에 불과했다. 좋은 콘텐츠와 입소문으로 매회 차곡차곡 시청률을 올려 나중엔 20%선까지 찍어낸 응팔이 많은 것을 증명했다. 이제 <치인트>와 같은 또 다른 케이블 드라마들에게 기회를 주며 응팔은 퇴장했고 케이블을 넘어선 드라마의 전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독점은 반드시 나와줘야 하는 대장이다. 대장이 없으면 비슷비슷한 것들 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전체 산업도 쪼그라든다. 조용필이 조용필에게 상을 주는 장면을 와 독점이  너무하네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화 중흥기 르네상스에는 독점 콘텐츠가 있었다. 독점 콘텐츠들을 보면 다 이유가 있다. 거대 자본과 수퍼 캐스팅으로도 속절없이 망한 작품도 얼마든지 있고, 적은 자본과 B급 배우로 잘되는 작품도 얼마든지 있다. 문화 예술계에 독점의 폐해를 논하는 모습은 그냥 우습다. 지금도 모든 창작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독점이 되는 꿈을 꾸며 열심히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윤서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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