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 대 하이에크" 정치적 이유로 지속되는 적자재정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의 대변인’, 영국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지(誌)가 칭송한 인물은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다. 하이에크의 사상은 저성장과 고실업의 문제에 봉착했던 선진국들을 구원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30년 이후는 빈곤과 실업 위기의 원인으로 시장경제를 문제삼으며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의 사회주의 이념이 대두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하이에크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회복하는 것만이 인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 주장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수많은 규제, 정부지출 확대로 인해 저성장, 경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하이에크 사상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23일 하이에크 서거 24주기를 맞이해 그의 사상을 되짚으며 한국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이석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여러 나라에서 케인지언적 처방은 여전히 주문되고 있고 추진되고 있다”며 “이는 경제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각종 이해단체들이 적자재정정책이나 이자율 인하 정책을 통해 경기침체의 시기에 시장경제에서는 얻을 수 없는 혜택을 얻고자 하고 있다”며 “정치가들이 이런 정치적 수요에 반응해서 이를 자신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래 글은 김이석 소장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아직 끝나지 않은 하이에크  대  케인즈 듀얼

3월 23일은 1974년 “화폐와 경기변동에 관한 선구적 업적과 경제․사회․제도적 현상들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서거 24주년이다. 60년대 말만 해도 1974년에 하이에크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때는 “케인스 혁명”으로 불린 거시경제학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하이에크야말로 그런 유행에 가장 뒤졌을 뿐 아니라 그런 유행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론가였기 때문이다. 

30년대만 하더라도 케인스에 밀려 영국에서 미국으로 떠나야 했고 시카고대학이긴 했지만 경제학과가 아닌 분야의 교수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영국을 떠날 때 그는 독일에서 영국으로 그에게서 배우기 위해 왔던 “라흐만(Lachmann)과 그를 제외하고는 하이에키언은 없었다”고 라흐만은 회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모두 장수한 바 있는데 하이에크는 그의 장수 덕분에 명예도 회복하고 만년에 더 정력적으로 집필활동을 할 수 있었다.  

사실 하이에크는 런던정경대학(LSE)의 로빈스 경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자들에 대적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초빙한 구원투수였다. 물론 케임브리지 대학의 대표선수는 케인스였고 하이에크는 그의 지적 적수였다. 흥미롭게도 당시의 「더 타임즈」지가 불황을 막기 위한 정책을 공모했는데 비효율적인 정부의 지출이 불황 극복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케임브리지 학자들과 LSE 학자들이 지금 들을 법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케인스는 시장에는 기업가적 예상이 특정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실패하는 경기침체가 내재해 있으므로 정부가 적자 재정정책을 동원해서라도 민간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유효수요를 창출해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본위제도에 대해서도 “야만적인 유산”이라면서 통화발행을 “금의 족쇄”로부터 풀어내고자 했다. 비록 통화를 증발시켜도 소위 “유동성 함정”으로 인해 유효수요를 증대시키는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적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자재정정책을 펴라고 주장했다. 

   
▲ 거듭되는 실패에도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케인지언적 처방은 여전히 주문되고 있고 추진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경제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일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에 반해 하이에크는 기업가들의 동시다발적 실패가 발생하게 된 것은 시장경제에 내재된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가 아니라 정부가 통화팽창을 통해 인위적으로 시장이자율을 낮췄기 때문에 촉발된 과정에 의한 결과로 보았다. 사람들은 지금 1,000만원을 3년 후 1,000만원보다 선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3년 후 1,000만원에다 이자까지 주지 않는 한 현재의 1,000만원을 포기하고 3년 후 1,000만원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자율은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하게 하는 일종의 가격인 셈이다. 

만약 정부가 화폐인쇄기를 돌려 시장의 화폐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춘다고 해보자. 그러면 저축은 종전에 비해 줄어든다. 그런데 이 인위적 저 이자율은 장기간의 사업과 대규모 투자를 수익성이 좋아 보이게 한다. 마치 건축을 위해 저장해둔 벽돌의 개수는 실제로는 줄었는데 벽돌 가격이 낮아져 사람들은 벽돌의 공급이 늘어난 것으로 착각하고 앞으로도 그 가격에 계속 벽돌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오인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잘못 유발된 투자들은 투자가 집중된 산업을 중심으로 호황을 일으킨다. 그러나 실제 동원될 수 있는 저축이 투자에 비해 모자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자율이 올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 순간 동시다발적 기업가적 실패가 드러나면서 불황 혹은 경기침체가 시작된다.

이와 같은 오스트리아학파 경기순환이론으로 하이에크는 한 때 1930년대의 영국 경제학계의 스타였다. 힉스, 러너 등의 추종자들이 있었고 LSE를 대표해서 케인스와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1936년 케인스가 『일반이론』을 발간하고 나서는 그의 제자 가운데 대다수는 케인스 쪽으로 돌아섰다. 그에게 배우기 위해 독일에서 영국으로 왔던 라흐만(Lachmann)은 “나중에는 하이에크와 자신만이 하이에키언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하이에크가 이론적으로 케인스에게 패퇴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검증되거나 논쟁을 통해 밀려난 것이 아니라 그냥 케인스 거시경제학이 일종의 유행이 되면서 영국 최고의 젊은 경제학도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가 어떻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 케인스 거시경제학이 기세를 떨치던 40여 년간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이론은 그 전통이 뉴욕 대학과 시카고 대학에서 이어지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로부터는 외면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에 와서 하이에크가 노벨상을 받는 등 부흥기를 맞는다. 이 시기는 스태그플레이션, 즉 물가가 상승하면서 동시에 경기침체가 발생하는 현상이 발생했던 시기인데 케인스 경제학은 이를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었을 뿐더러 정책적 처방도 내릴 수 없었다. 물가가 오르면서 동시에 실업이 늘어나고 있으니, 물가상승을 보고는 유효수요 억제 정책을 쓰라고 해야겠는데, 실업을 보면 유효수요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정책을 처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한꺼번에 밟으라고 해야 할 처지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학파는 어떻게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고 있나? 

오스트리아학파는 물가상승을 화폐스톡의 증가로 설명한다. 재화들을 수요하려는 화폐의 수량이 많아지면 재화들의 가격들이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고 본다. 그 기본적 이론 구조에 있어서 오스트리아학파도 고전적 화폐수량설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그 설명에 있어 거시변수들간의 대응으로 보기보다는 주관적 효용에 의한 개인들의 선호와 그 결과로서의 화폐수량과 재화들의 선택으로 이해하는 점이 다르며, 더 나아가 통화학파와는 달리 은행의 예금잔고도 화폐수량에 포함된다는 부분을 이해했다는 점이 다르다. 

경기침체기에 케인지언정책으로 통화를 풀면서 동시에 적자재정정책을 실시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통화증발에 의해 물가상승(특히 소비재를 중심으로) 압력이 발생한다. 케인스가 임금의 하방경직성으로 인해 통화증발을 통한 실질임금의 인하를 경기침체기에 쓸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했지만 노조도 “실질임금”의 보상을 요구하게 되면서 임금과 물가가 순차적으로 올라가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에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것은 잘못된 투자를 청산하지 않은 채 이런 좀비기업들이 자원을 더 많이 쓰면서 생존하도록 각종 재정, 통화정책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정치적 수요에 반응해서 자신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케인지언적 처방, 지속적인 적자 재정방안을 이용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여기에 더해 가끔씩 민간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명목으로 임금이나 재화의 가격을 유지하거나 인상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인상이든, 재화의 가격의 인상이든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수요가 부족할 때 취해야 할 가격의 변화 방향과는 정반대가 된다. 팔리지 않을 때 가격은 내려가야 더 많이 팔릴 수 있다. 노동시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실업자가 많을 때는 임금이 떨어져야 기업들이 고용하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격변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에 실업문제는 악화되기 쉽다. 

하이에크는 미제스와 함께 오스트리아학파의 부흥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그는 로빈스의 초정으로 영국 LSE(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케인스와 화폐와 경기변동 문제에 관해 지적 대결을 벌였고 그 공로로 후일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미제스가 틀을 만들고 하이에크가 발전시킨 오스트리언 경기변동이론(ABCT, Austrian Business Cycle Theory)은 오늘날 재조명되고 후학들에 의해 더욱 발전되고 있다. 특히 기존의 거시경제학적 분석틀에 익숙한 독자들은 Garrison의 Time and Money 그리고 이를 소개하는 김이석(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통화정책적 시사점, 첨부)을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기로 한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여러 나라에서 케인지언적 처방은 여전히 주문되고 있고 추진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경제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일 수 있다. 각종 이해단체들이 적자재정정책이나 이자율 인하 정책을 통해 경기침체의 시기에 시장경제에서는 얻을 수 없는 혜택을 얻고자 하고 있고, 정치가들이 이런 정치적 수요에 반응해서 이를 자신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케인지언 정책이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이에크가 벌인 지적 투쟁은 그의 서거 24주기에도 아직 끝나지 않고 후계자들의 손에 여전히 남아있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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