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탈북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기존의 개인탈북과 달리,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일 뿐 아니라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한 유명작가는 “탈북자들의 집단도주는 북한이 ‘인간지옥’임을 증명한다”고 꼬집었다. 무엇이 이들을 ‘지옥탈출’의 길로 이끌어낸 것일까.
자유통일문화원과 자유경제원은 집단탈북현상 전반을 되짚어보고, 올바른 대북정책의 방향성을 논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2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린 ‘대북제재는 단호해야 한다 : 집단탈북현상에 대한 평가와 전망’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탈북시인)는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열쇠는 중국에 있다”며 “한국정부가 중국을 움직이려면 대북인식의 상대를 북한으로만 보지 말고 주변국의 상호관계로 다각화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체제 유지의 핵심비결은 중국의 국경이익과 미국의 아시아동맹 이익 사이에 끼어있는 양극의 불순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장 대표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는 美中간 국익에 대한 설득과 합의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며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심리전과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북한은 시장심리로 다루어야 체제내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북제재 관련 소식이 내부로 확산될수록 정권의 통제 능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래 글은 장진성 대표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유엔 대북제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1. 북한 시장 개념에 대한 외부 시각부터 변해야
중국 정부의 유엔 대북제재 동참 후 일부 국내 언론들에서는 북한 시장에서 쌀 가격이 폭등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서 2월 초 1Kg 당 5천~5200원으로 유지되던 쌀 가격은 유엔안보리 제재 이후 오히려 4600~4800원(3월 28일 기준) 수준으로 인하됐다.
원인은 작년 농사가 잘 된데다 정권의 배급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개인들의 식량 저축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당 대회 축제 분위기를 위해 정권 차원에서 쏟아내는 물량공급 때문이었다. 또한 군량미 비축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크게 줄인 조치의 결과였다. 이와 관련 김정일은 2009년 당시 “현대 전쟁은 1950년대처럼 3년의 장기전이 아니라 단 몇 개월 만에 끝나는 속전속결”이라며 군량미 저축 기간을 1년으로 줄이도록 지시했다.
북한 쌀 가격의 인하 원인으로는 식습관 문화를 다양화시킨 시장의 영향도 컸다. 사회주의 배급제는 북한 주민들의 주식문화도 쌀밥으로 통일시켰는바, 식량배급이 입맛까지 전체주의화한 바 있다. 반면 계층 등급에 따라 1일, 3일, 주 공급으로 나누어지는 간부 공급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다양화됐다. 추가적인 부식물과 반찬 재료의 양질로 계층 등급을 차별화시킨 것이다.
북한에서 시장의 등장과 발전은 수요와 공급의 다양성을 부추겼고, 덕분에 일반 주민들의 주식문화도 쌀밥에서 빵, 떡, 국수 등으로 선택폭이 넓어지며 결국은 새로운 식습관이 쌀 가격 안정에도 기여했다.
|
|
|
▲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된 국익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의시키는가에 집중해야 하는바, 무엇보다 중국을 상대하는 설득과 제안을 우선순위로 선정해야 한다./자료사진=연합뉴스 |
2, 주민시장에서 기관시장으로의 변화 과정
중국도 대북제재에 동참하자 일부 학계와 종교, 언론들에선 고난의 행군 때처럼 대량아사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과거 연장선에서 북한을 이해하기 때문인바, 1990년대 중반의 대량아사는 식량난보다 주민들의 생존 공간인 시장이 없어 발생한 비극이다.
배급능력을 상실한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생존공간을 허용하면서 방임적 시장이 출연, 이후 자생적 시장이 고착되면서 점차 정권과의 대립적 시장으로 발전했다. 좀 더 정확한 설명으로는 정권의 시장 개입과 강요 과정에 권력 기능들이 시장에 흡수되는 대립적 공존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북한에는 국가경제가 없고, 기관경제만 존재한다.
사회주의 명분상 국가계획경제 붕괴 이후의 다른 경제정책 대안을 공론화하지 못하는데다 역사왜곡으로 일관된 수령 신격화의 비밀을 지키고자 폐쇄정치의 적(敵)인 개혁개방은 더욱 결사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념과 현실의 이러한 모순 속에서 북한 정권의 유일한 탈출구는 권력의 경제화다.
즉 대내 시장을 허용하는 대신 대외무역권한은 기관이 독점하는 방식이다. 당, 군, 국가안전부와 같은 특권기관들이 시장의 우선 이익을 나누어 갖고 그 상위무역 권한은 주로 특권층 자녀들이 독점한다. 기타 하부 기관들은 업무 관련 소규모 무역이나 하다못해 개인들에게 건물 임대 방식으로 기관을 유지한다.
시장의 도매는 기관경제, 소매는 개인경제로 구간을 엄격히 분류하여 정권의 시장가격 통제 기반을 확보한다. 그 통에 정권 밖에서만 방황하던 시장논리가 기관경제의 합법적 명분으로 정권과 정책들을 압박하는 직접적 화근으로 부각됐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위축되면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때처럼 주민아사가 아니라 그 이전에 체제아사로 발전한다.
그런 처지의 북한이 중국의 압박을 무시하고 4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경제보다 정치 이익부터 챙기는 지독한 관습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노출시킨 미온적 대북입장의 작은 구멍들이 빈곤한 북한에는 체제유지의 큰 혜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
|
▲ 북한체제 유지의 핵심비결은 30대 김정은의 정권운영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국경이익과 미국의 아시아동맹 이익 사이에 끼어있는 양극의 불순물이기 때문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
3. 유엔대북제재 효과 시점은 7차 당대회 이후부터
과거 북한에서 쌀 가격이 모든 물가의 선두가격으로 가장 민감했던 것은 초기 시장이 생존시장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북한 시장은 생존보다 생업의 시장으로 발전했다. 그 증거로 유엔대북제재 이후 최근 북한 내에서 크게 값이 폭등한 것은 쌀이 아니라 휘발유 값이다.
4월 2일 뉴포커스 내부 통신원은 3월 초 중국 돈 6위안(북한 돈 7800원)이던 휘발유 1리터 값이 4월 2일 기준으로 8위안(11400원)이나 올랐는바, 이는 중국의 대북제재로 가장 먼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상 현상이다. 휘발유 값이 현재 북한 시장 물가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정권이 지난 3, 4월 한미연합군사훈련 대응과 대남강경 분위기에 비축 기름을 마구 탕진한데다 당장 5월 당 대회 준비 독려로 휘발유 값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생업시장의 또 다른 증거로 유엔 대북제재 이전에는 중국 인민폐 1위안이 북한 돈 1350원이었는데 3월 28일에는 1위안이 1350원으로 상승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효과 이전에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 소문이 환율변동을 주도했다.
환율변동의 첫 피해자는 기관경제로써 유엔안보리는 정권제재 품목으로 민생과 거리가 먼 사치품, 석탄, 지하광물 등으로 한정했지만 그것은 정권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율변동의 첫 원인은 시장심리의 변화인바, 대량아사 때에는 누구나 똑같이 굶주렸던 집체정서라도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시장이 가져다 준 수혜의 차별과 무엇보다 물질만능 사고가 팽배해 있어 정권의 통제가 불가능하다.
우선 기관경제 특혜에 길들여진 간부들부터가 화폐교환과 생필품 사재기 등 향후 물가폭등에 앞장서 대비하고 있다. 기관경제 개인투자자들이 기관 신뢰를 포기하고 개인경제로 몰리면서 중국 화폐와의 격차를 더 부추기는 실정이다. 그 통에 지금껏 통제가격에서 거래되던 체제유지 기능의 모든 업무들이 점차적으로 마비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는 30년 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 “축제”를 빌미로 전시상태나 다름없는 공포정치로 묶어놓아 물가변동이 크지 않지만 당 대회가 끝나면 주민억제 심리가 시장의 조급함과 겹치면서 물가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
|
|
▲ 북한이 중국의 압박을 무시하고 4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경제보다 정치 이익부터 챙기는 지독한 관습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노출시킨 미온적 대북입장의 작은 구멍들이 빈곤한 북한에는 체제유지의 큰 혜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
4,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1) 유엔안보리대북제재 열쇠는 중국에 있어
한국정부가 중국을 움직이려면 대북개념과 인식의 상대를 북한으로만 보지 말고 주변국의 상호관계로 다각화 할 필요가 있다. 북한체제 유지의 핵심비결은 30대 김정은의 정권운영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국경이익과 미국의 아시아동맹 이익 사이에 끼어있는 양극의 불순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된 국익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의시키는가에 집중해야 하는바, 무엇보다 중국을 상대하는 설득과 제안을 우선순위로 선정해야 한다.
현재 중국의 대외정책은 크게 4가지로써 첫째는 남중국해 장악, 둘째는 대만통일, 셋째는 동북지역 발전(북한 포함), 넷째는 소수민족 관리다. 중국 정부가 대북제재 결심을 굳힌 것은 단순히 괘씸죄가 아니라 북핵이 동북지역 안정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남중국해 주변국의 군사화를 부추기는 미국의 지원병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북핵 폐기는 정권교체가 정답이라는 것을 중국 정부도 잘 알지만 대체세력이 없다는 점이 중국이 갖고 있는 외교적 중립의 고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대국의 체면상 “얼굴외교”를 중시하는 중국에 비공식 의제로 접근해야 한다.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정치외교의 동력이 정치컨설팅 회사인바, 특히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경험과 인맥, 지식과 실적이 축적된 협상의 인재들이 쌍방의 비공식 가교역할을 한다. 이는 마찰을 최소화하거나 이익을 극대화하기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시간을 단축하는 합리적 절차의 관례다.
반면 한국에는 아래의 신뢰와 권한의 위임보다 문구까지 세세히 강요하는 위의 권위가 너무 절대화 돼 있는 관료사회의 문제점이 있다.
북핵이란 그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역으로 국제사회의 김정은 정권교체 실행도 빨라지는 외부의 시한폭탄인바, 사실 그 절박감은 사실 미국보다 중국이 더 강하다.
이번에 중국이 보여준 대북제재 수위는 북핵 완성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바, 한국정부는 북핵 정권보다 한국의 자유통일 내지 새로운 북한의 과도적 개혁정권이 중국의 국경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지 설득할 필요성이 있다.
|
|
|
▲ 현재 북한에는 국가경제가 없고, 기관경제만 존재한다. 이념과 현실의 모순 속에서 북한 정권의 유일한 탈출구는 권력의 경제화다. 즉 대내 시장을 허용하는 대신 대외무역권한은 기관이 독점하는 방식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
(2)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는 심리전과 병행해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는 물질적 제재의 의존보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대중, 대북 심리전을 병행해야 한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심리전은 중국에는 대북제재 감시와 추궁의 역할, 북한에는 대북제재 효과 및 그 전망을 내부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국의 대북제재 상황을 감시 추궁하는 기능이 강화되면 중국의 대북온건정책의 입지가 더 좋아지고, 북중갈등과 대립의 효과가 있다. 특히 대북제재 관련 심리전이 북한 내부로 확산되면 시장심리가 더 조급해져 북한 정권의 물가관리 정책은 물론 기능마저 마비될 수 있다.
북한은 정권심리가 아니라 시장심리로 다루어야 체제내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바, 특히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북제재 관련 소식들이 내부로 확산될수록 정권의 통제 능력도 약화된다. 정부의 공식발표, 언론, 대북심리전 방송, 라디오 삐라 등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효과를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효과가 커질수록 외부의존도가 심한 북한 시장은 USB, CD, 라디오, 삐라, 한류 등의 외부수요가 더 커지기 때문에 그 기회를 이용해 정보가 대거 유입된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시인
[장진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