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시장지배…'공정' 표방 국가의 시장개입 불러들이는 포퓰리즘
수많은 사회문제와 논쟁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용어의 사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의도적인 부정적 프레임 씌우기, 용어의 정치화, 혹은 잘못된 것을 좋은 것으로 포장하는 용어들은 대중 선동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악용되어 온지 오래다. 이에 자유경제원에서는 『용어전쟁』을 출판하고 ‘정명운동’을 제안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세금, 복지 분야에 이르기 까지 언어를 이용한 포퓰리즘 정치의 횡행을 막기 위해서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는 바른 용어의 사용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자유경제원은 17일 리버티홀에서 도서 『용어전쟁』 출판기념 세미나를 열고 정명운동에 대한 취지를 밝혔다.

이날 열린 ‘『용어전쟁』 정명(正名)으로부터 정도(正道)가 시작된다’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거친 용어는 오도된 정책을 낳는다”며 “경제민주화 1호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 납품단가 부당인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키로 한 ‘하도급법 개정안’이 그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부 국회가 기업의 사적자치 영역인 협상과 거래, 계약에 ‘정당과 부당’의 잣대를 대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를 중립적으로 표현하면 계열사 간 ‘내부거래’. 기업이 생산을 ‘사업부제’로 할 것인가 ‘계열사 조직’으로 할 것인가는 기업의 판단 몫”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시장지배적 지위도 과장된 것이라며 “시장지배는 가공의 개념이며 정치권력처럼 임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승자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처럼 정제되지 않은 거친 용어와 시장의 본질 및 그 운영원리에 반하는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부지불식간에 시장경제의 기반을 허문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이러한 ‘어둠의 용어’는 국가의 시장개입을 불러들인다”며 “경제민주화도 국가의 시장개입을 위한 명분”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을 표방하지만 실제는 인기영합이라는 설명이다. 아래 글은 조동근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기업분야 정명(正名)
: 바른 용어 사용이 시급하다

1. 시장경제기반 흔드는 어둠의 용어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칭했다. 언어는 존재가 머무는 곳이며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라는 뜻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간의 사유를 지배하고 복속시킨다. 인간이 언어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부린다. 
 
‘일감몰아주기’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만큼 현상을 왜곡하는 거친 말도 없다. 언어의 마술 앞에 재벌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악의 화신’으로 구조화된다. 거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개인은 ‘인지부조화’에 빠지며, 실패라는 ‘결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지’를 바꾼다. 내가 일감을 따내지 못한 것은 누군가에게 일감을 몰아주었기 때문이고, 납품단가가 낮은 것은 부품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부당하게 가격을 후려쳤기 때문이라고 여기게 된다. 여기에 ‘경제민주화’라는 요술방망이가 절묘하게 중첩된다. 진위를 따질 겨를도 없이 “크고 강한 것은 부당하다”라는 인식이 공유된다.  

거친 용어는 오도된 정책을 낳는다. ‘경제민주화 1호 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 납품단가 부당인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키로 한 ‘하도급법 개정안’이 그 전형이다. 후려치기, 비틀기 등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논리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징벌적 배상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가해행위가 ‘의도적’이고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그러한 가해행위를 적발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하도급거래에서의 납품단가 인하는 의도적 가해행위도 아니고 숨기거나 은폐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사적자치 영역인 협상에 ‘정당과 부당’의 잣대를 대는 것 자체가 무리다.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일감몰아주기’를 중립적으로 표현하면 계열사 간 ‘내부거래’. 기업이 생산을 ‘사업부제’로 할 것인가 ‘계열사 조직’으로 할 것인가는 기업의 판단 몫이다. 현재 공정거래법은 특정 계열사에게 유·불리한 거래를 ‘불공정행위’로 간주해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고 특정요건을 충족하는 거래만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라는 언어의 분노를 온전히 풀지 못하면서 과잉규제로 치닫고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도 과장된 것이다. 시장지배는 가공의 개념. 정치권력처럼 임기가 존재하지 않으며 승자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장(場)일 뿐 그 자체가 ‘행위 주체’가 될 수 없이다. 시장을 의인화한 “시장의 탐욕과 시장실패 그리고 시장권력”은 성립될 수 없는 ‘언어의 허구’다.  

   
▲ '골목상권 vs 대형마트' 만큼 불필요한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말은 없다. 골목상권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 개념이다. 상권은 골목이 아닌 '소비자의 발걸음'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골목은 장소에 불과하다./자료사진=미디어펜


정제되지 않은 거친 용어 그리고 시장의 본질과 그 운영원리에 반하는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부지불식간에 시장경제의 기반을 허문다. 이러한 ‘어둠의 용어’는 국가의 시장개입을 불러들일 뿐이다. 경제민주화도 실은 국가의 시장개입을 위한 명분에 다름 아니다. ‘공정’을 표방하지만 실제는 인기영합이다. 이상적(理想的) 질서를 실현하기에 인간의 이성은 늘 제한돼 있고, ‘비시장적’ 정치적 타협이 도덕일 수는 없다. 

기업분야에서 개념이 잘못된 용어를 추출하고자 한다. 용어는 정확한 개념에 기초해 ‘가치중립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정적 및 계급 대립적 암시를 주는 용어 사용은 지양돼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안적 용어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글은 이 같은 목적에서 쓰여졌다. 

2. 개념이 잘못된 용어: 사용 자제
  
1) ‘납품단가 후려치기’, ‘갑의 횡포’, ‘납품단가 부당인하’ ‘죽어나가는 하청업체’

부품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원자재 가격이 오른 경우,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납품단가 원자재가격 연동제’로 일반화할 수 있다. 물가연동제(에스카레이션 조항)를 생각하면 합리적인 요구로 보이지만 양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부품가격을 대기업이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인식의 오류다. 부품의 가치는 부품이 들어가서 생산되는 최종 소비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치평가로부터 역산(逆算)된다. 소비자의 수요가격(demand price)이 출발점이다. 궁극적으로 부품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 부품가격을 올릴 수 있으려면 소비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최종 소비재에 대한 지불의사(willingness to pay)를 높여야만 가능하다. 소비자는 최종재 소비에 따른 효용이 증가하지 않는 한 지불의사를 높이지 않는다. 원자재 가격이 예기치 않게 상승했을 때, ‘조립업체가 인상된 만큼 부품가격을 올려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은 최종재에 대한 수요가 동시에 증가해 최종재 가격이 올라가지 않는 한 옳은 상황인식이 아니다.  

계약은 구속력을 갖는 ‘사적자치’다. 계약이 유효한 범위 내에서는 계약내용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부품단가를 올려달라는 것을 인정하면, 공적 규제가 사적자치를 대체하는 것이다. 계약기간 중에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계약내용을 변경해야 한다면 ‘거래의 안정성’이 크게 해쳐진다. 이 같은 논리가 맞다면, 최종재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 이를 근거로 납품단가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납품업체의 기업가정신을 고갈시킨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실행되면 납품업체는 어떠한 불확실성도 짊어지지 않게 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일종의 ‘납품단가지지(보장) 규제’의 기능을 수행한다. 기업가정신은 “원자재를 포함해 생산에 필요한 생산요소들을 구매해 재화를 생산한 다음 이를 소요된 비용보다 더 비싸게 누군가에게 팔 수 있음을 기민하게 판단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때” 발휘된다. 납품단가연동제는 궁극적으로 납품업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남용과도 무관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시장지배적 기업은 ‘악한 기업’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시장우월적 지위 남용’은 현재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시장지배적 기업은 보다 중립적인 개념인 ‘경쟁우위 기업’, 또는 ‘시장선도 기업’으로 불려야 한다./자료사진=연합뉴스


2) 정상이윤, 적정이윤을 넘는 ‘초과이윤’ 이윤공유제를 통해 사회에 환원해야 

이윤은 경쟁에 의해 결정되며, 사전(事前)에 정해진 이윤은 없다. 진입이 자유로우면 정상이윤만 남고 초과이윤은 사라진다. 이는 교과서적인 지식이다. 대기업이 납품업체에게 적정이윤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시장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납품업자가 정상이윤의 이상의 초과이윤을 얻고 있다면 당해 납품업자보다 싼 가격에 부품을 납품하겠다는 경쟁업자가 나타난다. 단가를 후려치는 것은 제조업자가 아닌 ‘또 다른’ 납품업자다. 겨우 먹고 살 만큼의 쥐꼬리만한 이윤만 남겨진다. 이것이 정상이윤(또는 적정이윤)이다. 경쟁은 지갑을 여는 소비자의 후생을 증진시킨다.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윤의 사회 환원, 오도된 개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사회를 이루는 다른 경제주체, 예컨대 노조와 정책당국의 사회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이윤의 사회 환원은 “사회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져갔으므로 이를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것을 시사하지만 기업은 ‘사회로부터 가져간 것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한다. 그 차이가 바로 이윤이다. ‘이윤의 사회 환원’ 보다 ‘기업의 사회 기부’가 정확한 표현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밀튼 프리드만’이 말한 대로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4) 재벌의 탐욕, 재벌의 권력화, 시장을 ‘의인화’하지 말아야 

시장은 특정 기업에게 특정재화를 사전에 할당하지 않으며 잘못된 기대와 계산에 기초한 의도를 예외 없이 처벌한다. 시장은 냉혹, ‘탐욕’이 끼어들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권력’은 ‘정치권력’과 다르다. 시장의 권력은 소비자와 투자자가 부여한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고 투자자가 자금을 대는 것은 그 기업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시장 권력은 ‘경쟁력’의 다른 이름이며, 정치권력과 달리 임기가 없다. 경합관계에 있는 경쟁자를 이기지 못하면 한시라도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노키아와 소니의 몰락은 기업의 경쟁력이 ‘상수(常數)’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상업세계에서 성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에 ‘시장권력은 공정’하다. 

일각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시장의 탐욕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국가는 개인의 이해(利害)를 조정할 만한 ‘계산능력’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만큼 전지(全知)한 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의 이성’으로 ‘시장질서’를 대체할 수 없다. 탐욕스러운 것은 시장이 아닌 ‘인간의 마음’이다. 

5) 영리병원,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국가보조를 해야 함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기관 설립 자격을 의사와 비영리 법인만으로 제한해 주식회사 형태(투자개방형)의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리병원은 한국·일본·네덜란드 등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금지되어 있다. 

한국의 비영리병원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가?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이를 국가가 메꿔주지 않는 한 모든 의료법인은 영리법인이다. 영리병원 용법을 고집한다면, “삼성영리전자, 현대영리자동차”로 표기해야 한다. 또한 투자개방형 병원은 의료민영화와 무관하다. 우리나라는 국가독점의 건강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를 빌미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 “의료의 공공성은 비영리일 때 보장된다”는 인식 자체가 잘 못된 것이다. 사람들은 현대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을 ‘재벌병원’로 낙인 찍지만 그러면서도 이들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자 한다. 

   
▲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대기업은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일으킨다. 따라서 좁은 국내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는 ‘경제력 집중’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자료사진=미디어펜

 
3. 잘못된 용어: 대안적 용어 제시 

1) 순환(피라미드)출자에 따른 가공자본 -> “간접소유자본, 간접자본” 제언
  
순환출자는 대기업 집단의 계열회사 간 출자구조가 ‘A사→B사→C사→A사’와 같이 원 모양으로 순환하는 구조다.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상호출자를 피하면서 계열사를 늘릴 수 있다. 그룹 내 A사가 B사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A사는 B사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어 B사가 C사에 출자할 경우 B사의 최대주주인 A사는 B사와 C사의 최대주주가 돼 B사와 C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다. 다시 C사가 지배주주인 A사에 출자하면 A사의 자본금이 그만큼 늘어나 A사는 확실한 지배주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은 논리를 연장하면, “A->B....Y->Z-A”도 가능하다. 이때 A가 B에 100원을 출자(투자)하고, 이런 식으로 Z가 A에 100원을 출자한다면, A는 출자금을 전액 회수하게 된다. A가 재벌의 계열사이면 대중은 분노한다. 규제론자들은 이 같은 논거에서 순환출자 금지를 주장한다. 순환출자는 해소되어야 할 ‘악(惡)’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다음의 사례도 본질은 순환출자다. ‘갑(甲)’이 은행에서 100원을 빌려 김밥집(A)를 개업했다. 김밥집이 잘 돼, A를 담보로 은행에서 80원을 빌려 또 다른 분점(B)을 낸다. 분점도 영업이 잘돼 B를 담보로 은행에서 60원을 빌려 제2의 분점(C)을 개업한다. 이때 분점 C를 담보로 40원을 빌려 본점(A)에 출자하고, 갑은 40원을 은행에 상환한다. 일반대중은 이 같은 행태에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대신 ‘갑’은 사업수완을 잘 발휘해 사업체를 키운 ‘수완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김밥집은 되고 계열사는 안 된다. 

위의 설례(說例)에서 ‘갑’이 분점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의 테스트’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시장 테스트를 통과한 기업이 작은 자본으로 여러 개의 기업을 지배하는 것이 잘 못된 것은 아니다. 순환출자는 자본이 부족했던 시대에 다양한 신산업에 진출할 수 있게 끔 한, 자본을 절약하는 ‘제도적 대체재’ 였다. 순환출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관찰되는 일반적인 기업조직(출자)의 한 형태다. 

규제론자들은 순환(피라미드)출자로 ‘가공가본’이 만들어져 지배주주가 ‘소수지분으로 경영전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지배주주의 직접 지분이 3%, 계열사 지분이 37%인 경우 총지분은 40%다. 계열사 지분이 ‘가공자본’이라는 것이다. 가공자본은 실체가 없는 ‘유령 자본’으로 단지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목적으로만 쓰이는 자본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기업 간 출자가 허용되는 한 가공자본은 언제나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이 문제시된다면 기업 간 출자 자체를 불허해야 한다. 계열사 지분은 일종의 ‘간접지분’이다. 따라서 가공자본 대신 ‘간접소유 자본’ 또는 ‘간접자본’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타당하다. 

신설기업이 아닌 한 기업의 출자는 누군가 설계한 것이 아니다.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경영판단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순환출자구조는 2013년 현대제철이 현대하이스코 냉연사업부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형성됐다.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 주주를 대상으로 합병신주 3123만 5309주를 발행했고, 이 과정에서 현대하이스코의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가 현대제철 지분 7.87%를 새롭게 취득함으로써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됐다. 이처럼 순환출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시행됐다. 따라서 순환출자를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 그림 1. 현재제철 순환출자구조 형성과정.


2) 일감몰아주기 -> ‘내부거래’ 제언
일감몰아주기 규제 ->‘부당내부거래 규제’ 제언

거래는 ‘자산특정성(k)’의 정도와 자신의 이익을 방어해 낼 수 있는 ‘안전장치(s)’ 구비 정도에 따라 그 유형이 나뉜다. ‘자산의 특정성’(asset specificity)은 특정 용도로만 사용되는 실물자산, 전문 인력, 특정 입지, 용도전환이 불가능한 무형자산 등을 의미한다. 특정성이 강한 자산을 거래하게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묶이게 되므로 ‘쌍방 독점관계’에 놓이게 된다. 쌍방독점 관계에 놓이게 되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safeguards)를 두어야 한다. 

‘자산특정성’(k)의 정도는 ‘0과 1’을 양극단으로 함. 완전한 범용(general purpose)의 자산이 거래되면 ‘k = 0’이, 완전 특정성을 가진 자산이 거래되면 ‘k =1’이, 중간 영역이면 ‘0 < k < 1’이 성립.1) ‘안전장치’(s)는 이해관계가 걸린 특정 거래의 중도파기를 구속할 수 있는 조치를 의미한다.2) ‘안전장치’(s)의 구비 정도 역시 ‘0과 1’을 양극단으로 한다. ‘s = 0’은 안전장치가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안전장치가 불비(不備)되면, 상대방의 일탈행위를 전혀 방어할 수 없어 그로 인한 손실을 자신이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안전장치가 완전하게 구비되어 있으면 ‘s = 1', 안전장치가 완전하지 않으면 ‘0 < s < 1’의 관계가 성립된다.

   
▲ 그림 2. 거래의 유형(k, s)에 따른 조직 형태. /자료출처: Williamson(2002)


<그림-2>는 자산특정성과 안전장치의 지표인 ‘k와 s’의 값에 따른 거래의 유형과 그에 따른 조직(거래) 선택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2>에서 점 A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이상적 거래를 나타낸 것이다. 쌍방 의존성이 없기 때문에 경쟁적인 시장기능을 통해 거래가 수행된다. 즉 시장거래를 통해 생산을 조직할 수 있다. ‘k > 0’ 이면 ‘관계 특정성’이 존재하는 바, 점 B는 안전장치가 없어(s = 0) 거래의 위해(危害)에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다. 현실적으로 B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점 C는 계약의 내용에 안전장치가 구축(s > 0)된 것을, 점 D는 거래당사자들이 ‘위계질서’ 즉 기업으로 완전히 통합된 것을 나타낸다. 점 C는 점 A의 ‘순수시장’과 점 D의 ‘기업’ 사이에 존재하는 ‘혼합형 질서(hybrid order)’로, 개별적인 경제단위 간에 ‘신뢰 가능한 장기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거래의 개별적인 경제단위가 ‘개인’이 아니고 ‘기업’인 경우, <그림-2>는 생산조직에 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개별기업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각 기업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활동한다. 상이한 기업 간의 관계는 ‘시장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집단은 ‘계열사 구조’로 되어 있어 기업 간에 긴밀한 관계가 유지된다. 계열사는 독립적인 법인격을 갖지만 일정한 재무적 연결 하에서 경제적으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계열사들 간의 거래는 <그림-3>의 ‘점 C’로 나타낼 수 있다. 계열사 조직은 시장조직과 위계조직의 중간조직이다. 이 같은 계열사 간 거래가 ‘내부거래’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가 ‘정상적인 시장가격’에 기초하고 있는 한, 내부거래를 ‘일감몰아주기’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부당내부거래는 공정거래법에서도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비상장기업을 이용한 편법 증여수단으로 계열사간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이는 다른 논리(상속세 회피의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순리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것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3) 골목상권 vs 대형마트 -> ‘근린상권 vs 대형 할인양판점(할인 마트)’ 제언

‘골목상권 vs 대형마트’ 만큼 불필요한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말은 없다. 골목상권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 개념이다. 상권은 골목이 아닌 ‘소비자의 발걸음’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골목은 장소에 불과하다. ‘먹자(피자)골목’은 음식점(피자집)이 많이 몰려있는 골목이다. ‘골목상권’ 대신 ‘근린상권’으로 써야 한다. 대형마트도 외형이 크다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형할인 양판점’ 또는 ‘대형할인 마트’로 칭해야 한다.  

구매는 이제 특정 공간을 전제할 필요가 없다. ‘해외직접구매, 모바일상품권 판매’ 등은 ‘골목상권 vs 대형마트’의 2분법적 접근이 얼마나 허구인 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신설기업이 아닌 한 기업의 출자는 누군가 설계한 것이 아니다.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경영판단 결과가 반영된 것이다. 순환출자를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자료사진=미디어펜


4) 공익시설, 공익산업 -> ‘사회간접자본시설, 망(네트워크)산업’ 제언 
공기업(public enterprise) -> ‘정부기업(government enterprise)’ 제언   

공익(public interest)은 사익과 대비되기 때문에, 공익이란 용어의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공익시설과 공익산업하면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시설 내지 산업으로 오인한다. 뿐만 아니라 이익을 내서는 안 되는 산업으로 인식된다. 공익시설, 공익산업은 ‘사회간접자본시설, 망(네트워크)산업’으로 불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기업(public enterprise)도 마찬가지다. ‘공’은 ‘사’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오인된다. 미국 GM의 경우,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정부 자금이 들어가고 나서면서 GM(government motors)으로 불린다. 정부소유 기업, 줄여서 ‘정부기업’으로 불리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 운영 관련해서 정부 규제가 적용되고 적자에 대해 세금이 지원된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5)  재벌 -> ‘기업집단, 계열조직’ 제언 
시장지배적 기업 -> ‘경쟁우위 기업, 시장선도 기업’ 제언
시장점유율 -> ‘기업의 시장성과율, 시장활용률, 소비자선택률’ 제언 

재벌은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군벌, 족벌, 학벌’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재벌을 남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재벌은 기업집단 또는 계열조직으로 불려야 한다. 

시장지배적 기업은 ‘악한 기업’으로 인식될 여지가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시장우월적 지위 남용’은 현재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시장지배적 기업은 보다 중립적인 개념인 ‘경쟁우위 기업’, 또는 ‘시장선도 기업’으로 불려야 한다. 과점시장에서의 주도-추종(leader-follower) 모형에서 주도기업(leader)은 가격을 선도할 뿐, 시장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또한 시장점유율은 독점으로 연결되어 부지불식간에 의미를 왜곡시킨다. 기업에 대한 소비자선택의 결과 시장을 점유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성과가 반영된 ‘기업의 시장성과율, 시장활용률, 소비자 선택율’로 표현되는 것이 보다 적확한 용어일 것이다. 

   
▲ 시장은 특정 기업에게 특정재화를 사전에 할당하지 않으며 잘못된 기대와 계산에 기초한 의도를 예외 없이 처벌한다. 시장은 냉혹, ‘탐욕’이 끼어들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권력’은 ‘정치권력’과 다르다. 시장의 권력은 소비자와 투자자가 부여한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사고 투자자가 자금을 대는 것은 그 기업을 신뢰하기 때문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6) 대기업 독식 -> ‘기업 생태계, 대기업·중소기업 가치사슬’ 제언 
 
‘대기업 독식’은 대기업이 모든 이득, 이권을 취하면서 시장을 완전 장악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법적 독점으로 진입장벽을 치지 않는 한, 완전 독점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장은 분할될 수 있기 때문에, 복수의 기업이 공존가능하다. 대기업 독식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반(反)기업 정서를 갖게 하는 잘못된 용어다. 
 한편 기업은 기업생태계 속에서 존재한다. 가치사슬(value chain)은 기업과 기업 간의 관계가 전제될 때 의미를 가진다. 하청과 원청의 중층구조 자체가 가치사슬이다. 최근 글로벌 대기업은 ‘자체생산(self make)’ 보다 ’시장구매(market buy)’를 통해 기업을 키운다. 따라서 조립업체로서의 대기업과 협력업체로서의 중소기업 간의 클러스터 경쟁력이 중요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대기업은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일으킨다. 따라서 좁은 국내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는 ‘경제력 집중’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최종재 수출을 위해 중간재와 부품을 조달하는 경우, 그 구입액이 협력업체의 매출로 잡힌다. 이렇게 해서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기업생태계를 잘 구축했는가에 의존한다. 글로벌 강소기업은 이러한 기업생태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1) 김치냉장고를 에를 들면, 김치냉장고용 모터 거래는 'k=1'에 해당한다. 

2) 자산 특정성이 높은 경우 계약중도 해지는 서로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따라서 ‘안전장치’는 통상 계약 중도해지의 원인을 제공한 쪽에 대한 벌금부과 형태를 띈다.
[조동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