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권력은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뉘어 서로 견제하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삼권 분립이라고 하여 권력의 남용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도록 한다. 이중 사법부에 소속된 재판관의 판결은 어떠한 권력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그 독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하여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다만, 재판 자체가 잘못된 경우 이를 구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다 더 보장하기 위해 우리나라 재판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자유경제원은 15일 리버티홀에서 우리나라 재판제도에 대한 현황과 한계, 개선방향에 대해 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열린 자유주의사법포럼 토론회 ‘우리나라 재판제도의 오늘과 내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면’에서 발제자로 나선 황성욱1) 변호사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사법부의 독립이 이루어진 지금, 우리는 사법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며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쌓아왔던 노력이 오히려 법원으로 대표되는 사법부에 대한 견제수단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사법소극주의가 본질이고 원칙인 사법부의 일부 구성원들이 사법적극주의가 마치 원칙인 양 판결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며 “법정에서 개인의 가치 및 철학에 따라 도덕적 훈계를 하는 판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기묘한(?) 현상도 종종 벌어졌다”라고 밝혔다.
이어 황 변호사는 “헌법상 광의의 사법부라고 통칭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정당성이 대통령과 국회보다 훨씬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국민에 대한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며 “사법부 견제수단이 전무하다면, 권력분립 원칙이 지배하는 우리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본격적으로 재판의 통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변호사는 “대통령 행정권력도 행정소송 및 헌법소원 등 이중적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며 “헌법재판소는 헌법 해석을 그르쳤거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법원 판결이나 결정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황성욱 변호사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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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욱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변호사 |
재판에 대한 통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근대 사법시스템이 도입한 이래, 우리 사법시스템은 전 세계에 내놓아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압축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우리에게 역사적 경험은 없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법체계는 그동안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압축성장하였으며 수많은 재판을 통해 판례도 이제 많이 쌓였다.
사실 이제까지 법조인들과 법학계의 관심은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에 있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격동 속에서 흘러왔기에 정치 진영과 외부 여론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독립된 사법부의 역할이 역사의 사명이었고 국민의 바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사법부의 독립이 이루어진 지금, 우리는 사법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쌓아왔던 노력이 오히려 법원으로 대표되는 사법부에 대한 견제수단을 약화시켰고 사법소극주의가 본질이고 원칙인 사법부의 일부 구성원들이 사법적극주의가 마치 원칙인 양 판결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에 맞추어 법관의 양심이 헌법과 법률적 양심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양심을 내세우는 판결도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개인의 가치 및 철학에 따라 도덕적 훈계를 하는 판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기묘한(?) 현상도 종종 벌어진다.
그동안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만이 중요시되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는 정당한 여론과 합리적 판단에 따른 정치라고 볼 수도 있음에도 그것을 외압이라 칭하여 도외시한 것은 아닌 것인지 아니 어떨 때는 너무나 여론에 충실한 것은 아닌 것인지, 그리고 자신만이 가지는 주관적 양심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하여는 빗장을 푼 것이 아닌 것인지 하는 의심이 이 발제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법부에 대한 견제수단이 아래와 같이 전무하다면, 권력분립의 원칙이 지배하는 우리헌법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본격적으로 재판의 통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본 발제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즉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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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리적으로 볼 때, 헌법의 해석을 그르쳤거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은 마땅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사실판단에 대해선 간섭하지 말고, 법원의 그릇된 헌법해석이나 헌법인식을 바로잡아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
2.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와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헌법상 지위
민주적 정당성이란, 통치 권력의 성립과 그에 의한 통치권의 행사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온 ‘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한 것이 민주주의’의 전제라고 볼 때,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성립되고 집행되어야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대의제를 취하고 있는 현대국가 헌법상 국민의 현실적·경험적 의사에 전적으로 일치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의 가장 직접적인 방식은 선거제도이다.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냐 여부는 한국적 현실에서 매우 회의적이긴 하나3) 어찌되었든 선거일이 되면 우리는 투표(정확히는 기표)를 하고 일정기간 동안 국민의 권력을 위임하고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기관은 그래서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한편, 우리는 헌법상 여러 헌법기관을 두어 권력분립 원칙을 구현하고 있는데, 몽테스키외의 고전적 3권 분립인 국회와 정부, 법원은 물론이고 정부 안에서도 대통령과 행정각부, 감사원 등이 내부에서 독자적인 권한분배를 받고 있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그리고 법원 외에 헌법재판소라는 별도의 사법부를 두고 있다. 이는 형식적 권력분립 뿐 만 아니라 기능적 권력분립4)도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각 기관이 나누어져있음에도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는 똑같지 않다. 이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과 국회 구성원인 국회의원을 국민의 보통,직접, 평등, 비밀, 자유의 원칙에 따른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것에 비해 다른 헌법상 국가기관들은 대통령과 국회의 관여5)로 임명되기 때문에 그 민주적 정당성이 간접적이고 결국 민주적 정당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뽑은 사람이 우리 뜻과는 무관하게(?) 임명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를 법원의 구성에 비추어 본다면,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헌법 제104조).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미묘한 차이는 있으나 국민으로부터 직접적 민주적 정당성을 취득한 대통령과 국회의 관여로 임명되기에 그 정당성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일반 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므로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보면 더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와 비교하면,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그 중 3인은 대통령이 직접, 3인은 국회에서 선출, 나머지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헌법 제111조). 이를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보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3인과 국회에서 선출되는 3인도 간접적이지만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가 관여하는 대법관에 비해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고,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3인은 대통령과 국회를 거쳐 다시 대법원장을 거쳐 임명되므로 민주적 정당성은 더 약해진다.6)
위와 같이 헌법상 광의의 사법부라고 통칭되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정당성이 대통령과 국회보다 훨씬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국민에 대한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대통령의 행정행위는 결국은 각 부처의 하부기관을 통해 일반적으로 집행이 되고, 국회도 법률이라는 결국은 행정부의 집행행위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반적7)으로 이루어지지만, 재판은 개별적 구체적으로 당사자의 권리의무를 변동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1심과 2심 재판을 담당하는 일반 법관의 경우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대법관보다 더 약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 관여하는 기관이므로 이에 대한 국민의 체감적 만족이나 불만은 다른 기관에 비해 월등히 크다고 할 것이다. 대법관을 법정에서 만나보지도 못하는 일반국민들은 소위 튀는 판결, 국민적 합의에 어긋나는 판결 등을 볼 때마다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만을 거친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게 놔두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지만, 이를 이론적으로 풀어본다면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와 권력분립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3심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재판시스템은 왜 3심인가에 대해서 법을 적용하는 기관의 속성상 신중함을 요구하는 의미가 물론 크겠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기관이기에 3번의 재판을 거침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부족함을 보완한다는 측면도 있다. 이를 수직적 권력분립, 기관내부의 권력분립, 기능적 권력분립 등 어떠한 말로 포장하든 간에 우리 국민은 반세기동안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권리분쟁을 해결해 왔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결국은 기관 내부의 조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에 비해 사법부를 구성하는 판사의 임기는 매우 장기적이라는 점, 민주적 정당성을 그나마 많이 부여받은 대법원은 법률심이므로 사실 확정을 다툴 수 있는 방법은 2심까지가 한계며 실무상 대법원 판결에 의해 권리구제가 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는 점 등이다.
사법부라는 기관의 속성상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권력을 행사할 수 없고, 원고가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개입할 수 없다는 권력의 발동 측면에서 소극적인 한계는 있으나, 다른 기관과 달리 권력 발동 시 그 권력에 대한 통제는 사실상 위에서 말한 기관내부의 통제(3심제)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은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행사에 대한 통제 방식과 차이가 있다.8)
따라서 재판9), 즉 법원의 권력행사에 대한 외부적인 통제가 필요함은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이나 권력분립의 측면에서 당연히 요구된다.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사법부에 대한 통제가 사법부의 독립, 좁게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그것은 국민의 기본권보장 측면과 법치주의 측면에서도 당연한 전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 헌법은 89년 헌법개정을 통해 헌법재판소를 두어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공권력과 국회의 입법에 대해 수많은 판결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왔다. 재판이라는 것이 법률적 지식과 전문성을 요하기에 재판 그 자체에 대해 외부 기관이 통제를 한다면 민주적 정당성과 권력분립이라는 측면에서 그 기관은 헌법재판소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민주적 정당성이 약한 헌법재판소가 최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 국회의 입법권과 대통령의 행정권마저 통제할 수 있는데 법원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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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행정권력도 막바로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이 통제를 가하며 헌법소원을 통해서 헌법재판소가 통제를 하는 등 이중적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
3. 현행 헌법상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관계
가. 법원의 관장사항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제107조 ②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
법원조직법 제2조(법원의 권한) ① 법원은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법률상의 쟁송(爭訟)을 심판하고, 이 법과 다른 법률에 따라 법원에 속하는 권한을 가진다.
나. 헌법재판소의 관장사항
헌법 제111조 ① 헌법재판소는 다음 사항을 관장한다.
1.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 탄핵의 심판
3. 정당의 해산 심판
4.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헌법재판소법 제68조(청구 사유) ①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
다. 소결
위와 같이 헌법상 법률상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권한이 배분되어 있으나, 헌법 제107조에서 말하는 행정부의 명령, 규칙은 동시에 헌법재판소법 제68조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기관이 그것에 대한 통제권을 갖느냐가 문제되었으나, 지금은 행정부의 명령, 규칙이 법원의 재판에서 문제가 되면 대법원이, 재판의 전제성은 별론으로 하고 명령, 규칙이 직접적으로 국민에게 작용하면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된 듯하나, 실무상 선택의 문제로 보인다.
다만, 아래에서 보듯이 헌법재판소의 기능이 재판통제에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매우 아쉬운 입법이다.
4. 현행법에 따른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가능여부(현재 상태)
가. 헌법 및 법률의 규정
헌법 제111조 ① 헌법재판소는 다음 사항을 관장한다
5.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헌법재판소법 제68조(청구 사유) ①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 청구할 수 있다.
나. 헌법재판소법 제68조의 한정위헌 판결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원칙적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하여 그 효력을 전부 또는 일부 상실하거나 위헌으로 확인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도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위 법률조항은 그러한 한도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의 구속을 받고 헌법에의 기속은 헌법재판을 통하여 사법절차적으로 관철되므로, 헌법재판소가 헌법에서 부여받은 위헌심사권을 행사한 결과인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은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하여 그 효력을 상실한 법률을 적용하여 한 법원의 재판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헌법 제107조 및 제111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헌법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법원 스스로가 ‘입법작용에 대한 규범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헌법은 어떠한 경우이든 헌법재판소의 기속력있는 위헌결정에 반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가 다시 최종적으로 심사함으로써 자신의 손상된 헌법재판권을 회복하고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관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명령·규칙에 근거한 집행행위가 존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헌법위반여부를 구체적인 재판절차에서 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령·규칙에 대하여는 주관적 권리구제절차로서 헌법소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명령·규칙이 위헌으로 결정되어 그 효력을 상실한 경우에도 법률의 경우와 그 법리가 다를 바 없다.”
“헌법소원이 단지 주관적인 권리구제절차일 뿐이 아니라 객관적 헌법질서의 수호와 유지에 기여한다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헌법재판소는 본안판단에 있어서 모든 헌법규범을 심사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청구인이 주장한 기본권의 침해여부에 관한 심사에 한정하지 아니하고 모든 헌법적 관점에서 심판대상의 위헌성을 심사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이 비록 청구인이 주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지만, 헌법 제107조 및 제111조에 규정된 헌법재판소의 권한규범에 부분적으로 위반되는 위헌적인 규정이므로, 이 사건 헌법소원은 위에서 밝힌 이유에 따라 한정적으로 인용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에는 단순위헌결정은 물론, 한정합헌, 한정위헌결정과 헌법불합치결정도 포함되고 이들은 모두 당연히 기속력을 가진다.”
다. 소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헌법재판소법 제68조는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처음 헌법재판소 설치당시에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으로 다툴 수 없다고 모두들 생각했으나, 대법원이 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판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쉽게 말하면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음에도 법원이 그 법률을 적용하여 재판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사자는 헌법재판소법 제68조에 따라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한 위 헌법재판소법 제68조가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고, 헌법재판소는 위와 같이 헌법재판소 제68조 제1항을 한정위헌이라고 선언한다.10)
요컨대, 현행법 하에서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의 형식으로 재판에 대해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 길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결정한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여 재판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만 가능할 뿐, 일반적인 재판에 대한 헌법 소원은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유념해야할 것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헌법 개정과 같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재판을 헌법소원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은 헌법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법이며, 이것은 국회가 개정 또는 해당 문구를 삭제함으로 인해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 또다른 방법으로 만일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판이 계속 있다면(예를 들어 계속해서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 반하는 재판을 한다면)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를 단순 위헌결정을 하여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의 방법을 넓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입법정책의 문제이고 의지의 문제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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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이 지위를 잃었음에도 전주지방법원이 그 소속 비례지방의원의 지위를 유지시켰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대법원 행정처와 그 보조를 맞추었다는 의심이 드는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것이다./사진=연합뉴스 |
5. 외국의 입법례
가. 영미법 계통 법제(비집중형, 사법심사형)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영미법계통의 국가에서는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담당한다. 따라서 예외가 있긴 하지만, 영미법 계통의 국가들은 헌법재판기능, 특히 위헌법률심판을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기관이 그것을 담당하고 있다.
나. 대륙법계통의 법제(집중형, 독립기관형)
대륙법계통의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법원 외에 헌법재판소라는 독립한 헌법기관을 두어 헌법관련 및 선거, 권한쟁의심판 등을 담당하게 한다.
이 중에서도 우리 법제에 많은 영향을 끼친 나라 중에 대표적으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의 헌법소원의 압도적 다수가 재판에 대한 소원인 것도 특징이다.12) 헌법재판과 관련하여 우리가 모델로 삼은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최고 사법기관이 3개의 기관으로 나눠져 있고,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장 절실한 원행정처분에 대한 통제를 헌법재판소가 할 수 있다13)는 점에서 전면적으로 재판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우리 법제와는 다르다 할 것이다.
다. 소결
헌법재판소란 기관이 주로 대륙법 계통에서 도입한 것은 영미법계와 달리 법원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각 국가의 사법역사에 따라 그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14) 영미법 계통의 국가, 특히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Marbury vs. Madison 사건에서 위헌법률심판을 스스로 하는 등의 헌법수호에 대한 역사가 있을 뿐 아니라15) 미국 역사 속의 연방제라는 권력분립적 제도와 사법부가 다른 기관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보장받는 독특한 정치 지형을 가지고 있기에 주(州) 법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연방 법원으로 이어지는 각종 사법절차는 자연스럽게 별도의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이 필요치 않게 된 측면도 있다.
6.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할 필요성의 실제 예
최근에 있었던 판례 2가지를 들어보자.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이 지위를 잃었음에도 전주지방법원이 그 소속 비례지방의원의 지위를 유지시켰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대법원 행정처와 그 보조를 맞추었다는 의심이 드는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의심이 결국 맞아서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된다면 과연 우리 헌법상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판결일까? 헌법재판소는 분명히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심판결정을 했음에도 법기술적 측면을 강조16)하여 그것을 형해화시키는 판결이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이 되었다면 이것은 분명 통제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은 방어적 민주주의를 채택한 우리 헌법의 이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해서 원심이 자유시장경제에 역행한다하여 그것을 위법이라 했음에도 대법관 전원이 이를 뒤집는 판결이 있었다. 이것은 대법원이 경제민주화라는 포플리즘 정치구호에 휩싸였거나 경제 질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으로 우리 헌법과 국민의 근본결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에 역행하는 판결이라고 볼 개연성이 충분하다.
한편, 위와 같이 헌법의 기본질서에 어긋나는 판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도 필요하지만 사실상 판례로서 굳어진 해석론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즉 입법자인 국회가 만들어 놓은 문자에 담겨있지 않은 의미를 해석론으로써 일관되게 판결하는 해석론이 헌법의 가치를 무력화한다면 마땅히 통제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가 국가보안법의 해석론이다. 대법원은 계속하여 실질적 위험성론 즉, 아무리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추종의사를 피력해도17) 그것이 우리 사회에 실질적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해석론을 펼치고 있는데, 이러한 해석론은 판사의 주관이 광범히 하게 개입될 수 있을뿐더러 입법자의 의도를 형해화시키는 해석이다. 이와 같은 법률해석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와 한반도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헌법의 해석에 맞는 지는 한번 쯤 헌법재판소의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권한이 어디까지이며 법원의 권한은 어디까지냐라는 이른바 ‘경계확정’의 문제는 독일에서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문제이다.18) 이것은 학자와 쌓여가는 판례의 몫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부정한다거나 헌법재판소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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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마트 영업규제에 대해서 원심이 자유시장경제에 역행한다하여 그것을 위법이라 했음에도 대법관 전원이 이를 뒤집는 판결이 있었다. 이것은 대법원이 경제민주화라는 포플리즘 정치구호에 휩싸였거나 경제 질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사진=미디어펜 |
7. 나오며
법리적으로 볼 때, 헌법의 해석을 그르쳤거나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은 마땅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원의 그릇된 헌법해석이나 헌법인식을 바로잡아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또 하나의 심급기관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었을 때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사실판단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19)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의 창설과 존재의의가 애초부터 재판에 대한 통제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위헌법률심판이 주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은 그 자체가 논리모순이자 허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률은 국회자체가 합의체 의결기관이기 때문에 제정과정에서 위헌성이 많이 제거되며,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부여하는 등 이중적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
대통령의 행정권력도 막바로 행정소송을 통해 법원이 통제를 가하며 헌법소원을 통해서 헌법재판소가 통제를 하는 등 이중적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 오직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만 외부적 통제가 없다. 요컨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자는 것은 기본권보장을 위한 헌법소원의 대상이 공권력인 이상 그것엔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황성욱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변호사
1) 변호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대변인
2) 행정부, 국회, 국민, 언론, 법원 내부의 통제, 원행정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등 기타 직,간접에 의한 법원의 통제(그로인한 궁극적인 재판의 통제) 방식과 그 통제방식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 지, 법원의 튀는 판결로 인해 오히려 사회통합성과 법적안정성이 침해되는 지 등에 대해서는 토론자분들의 토론문에 맡겨본다.
3) 선거제도와 관련한 국민의 의사 반영 방식에 관한 논의는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토론이 될 것이다.
4) 근대 이후로 등장한 권력 분립의 이론이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이유로 그 이론상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현대사회는 복잡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정책결정 및 집행에 있어 고전적인 권력분립보다는 때로는 권력융합 등이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통적 권력 분립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력 분립이론의 전면적 폐지가 아니라 권력 분립이론을 현대적 상황에 맞도록 변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권력분립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며 이는 권력만을 단순히 나누어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권력을 분립을 통하여 전통적 권력 분립론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뢰벤슈타인이라는 학자는 전통적 권력 분립이론이 국가기능의 분할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국가기능을 정책결정, 정책집행, 정책통제의 세 기능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동태적 권력 분립론을 주장하고 있다.
5) 예를 들어 대통령의 임명, 국회의 동의
6) 이에 대하여 차후 헌법개정시 직전 총선의 여야의 비율에 따라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7) 개별적이고 구체적이 아니라는 의미
8) 대통령의 권력행사는 법률적으로 바로 행정소송에 의한 법원의 통제, 헌법재판소의 통제, 국회의 탄핵소추 등으로, 국회의 입법권 행사는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등으로 ‘행사된 권력’ 자체에 대한 통제가 있다. 물론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권한을 국회가 가지고 있지만 이는 유명무실하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9) 이를 통제하는 것과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간접적으로 권력기관인 법원을 통제하는 것은 구별되고 본 발제의 포커스는 법원의 권력행위 즉 재판에 대한 통제라는 것은 서두에서 밝힌 바 있다.
10) 한정위헌의 기속력과 대법원과의 관계는 위헌판결의 효력여부에 관련된 방대한 부분이므로 전동욱 변호사가 여력이 된다면 이 부분을 보충해주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11) 이 점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견해는 기본권보호의 측면에서는 보다 이상적이지만, 이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통하여 이루어질 문제라기 보다 입법자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12) 연간 약6천건의 소송 중 약95%가 헌법소원이고 이들 중에서는 압도적인 다수가 재판소원에 해당한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 홈페이지의 연간통계 참조, 서울대학교 법학 제55권 제1호 ‘독일에서의 재판소원 및 헌법재판소와 일반법원과의 관계’
13) 1심 행정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적 권리 침해 여부를 다투는 불복소송을 관장한다(2012년 헌법개정 이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총서 2014-07 오스트리아 사법제도 연구 – 최고재판소, 행정재판소 및 헌법재판소의 상호 관계에 대한 헌법 규정 분석을 중심으로 - 25쪽
14)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독립기관형 국가는 독일·오스트리아 등 90개국이고, 사법심사형 국가는 미국·일본 등 77개국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독립기관형 국가가 50여개국이었으나 이후 동유럽과 아프리카, 중미 지역 국가들이 헌법재판소를 새롭게 설치해 사법심사형보다 더 많아졌다.( http://the300.mt.co.kr/newsView.html?no=2015021016197625060 )
15) 물론 이에 대한 역사적, 법적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서의 판결이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는 평가를 부인하지 않는다.
16) 헌법재판소 판결의 효력에 관한 기속력 즉 다른 기관을 기속하는 헌법재판소 판결은 주문에만 미친다는 이론에 따라 헌법재판소 판결 주문에 비례지방의원은 없었다는 이유.
17) 이적단체행사에 계속 참석하여 박수를 친 것이나, 자신의 블로그에 수십차례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올려도 법원의 해석론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의 행사에 불과하다.
18) 이 부분은 매우 복잡하고 디테일한 부분이라 간략히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19) 허영, 한국헌법론 1995, 823쪽
[황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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