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근 귀순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탈북한 배경에 자녀교육 문제가 중요한 요인이었던 점이 알려지면서 자녀 교육과 미래를 위한 ‘이민형 탈북’의 증가세가 주목받고 있다.

김정은정권 들어 엘리트 탈북이 대폭 발생했고, 앞서 귀순한 이들이 북한간부 출신인데도 남한에 안정적으로 잘 정착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연쇄적인 탈북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에 있는 외교관들 사이에서 가능한 일로 실제로 현재 남한에 정착한 엘리트 탈북자들 가운데 평양에 있을 때 같은 국가기관의 상사와 부하 관계이던 사람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5년간 남한으로 귀순한 엘리트 탈북자들이 10명 가까이 되고, 이들 중에는 외교관도 있지만 해외에서 무역일꾼, 공작요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이다. 이들의 탈북 배경에는 바로 자녀의 미래가 있었다. 해외에서 북한과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면서 ‘자유민주’를 체험하고,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심전심으로 해외에서 체류하는 북한 간부들의 고민은 서로 통할 수밖에 없고, 이들 중 누군가 탈북하게 되면 뒷소문에 촉각을 세우게 된다. 그러다가 남한에서 잘 지낸다더라는 소문을 듣게되면서 탈북을 결심한 사람이 한해 2명꼴로 발생했다.          

현재 북한 최고위급 외교관 출신으로 알려진 태영호 공사 일가족은 올 여름 평양 복귀를 앞두고 종적을 감췄으며, 이후 런던에서 남한으로 직행해 귀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구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태 공사의 자녀들은 SNS를 즐겨 쓰고 농구를 좋아하는데다 최고성적을 받는 수재였다고 영국 가디언지는 소개하고 있다. 

장남(26세)은 영국 해머스미스병원에서 ‘평양을 세계적 도시로 만들기 위해 장애인 주차공간 확충’이라는 내용으로 공중보건경제학 학위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덴마크에서 태어난 차남(19세)은 스웨덴, 영국 등에서 성장기를 거쳤고, 영국의 명문대학인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 최근 귀순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탈북한 배경에 자녀교육 문제가 중요한 요인이었던 점이 알려지면서 자녀 교육과 미래를 위한 ‘이민형 탈북’의 증가세가 주목받고 있다./연합뉴스

이렇게 서구 문화에 젖어 있는 자녀들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과연 적응하고 살 수 있을지 태 공사가 고민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도 태 공사의 태 공사의 탈북 배경에 대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대한민국에 대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태 공사처럼 자녀 문제로 탈북하는 사례가 이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년여전 역시 일가족과 함께 귀순한 북한외교관 출신도 자녀 때문에 탈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학생인 자녀들이 남한을 동경해 부모를 설득했고, 이런 자녀들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체제에 순응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탈북을 감행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일반 북한주민들의 탈북이 이어지던 김정일 시절에도 자녀의 장래를 위해 북한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녀교육을 시키고 싶어 탈북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탈북을 돕는 현지 북한인권활동가들은 “외부에서 전해들은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서 또, 남한에서 자녀 교육을 하고 싶어서 탈북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심지어 캐나다나 일본, 스웨덴에서 자녀를 유학시킬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탈북자도 있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한때 탈북자들 가운데 남한을 거쳐서 캐나다 등 서방세계로 위장난민해 문제가 됐다. 대체로 난민 지원금을 노린 불법행위지만 자녀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었다.

런던에서 머물던 태 공사의 차남이 온라인게임에서 사용한 아이디는 ‘North korea is Best Korea’였다고 한다. 이는 서구에서 북한의 허무맹랑한 선전을 조롱할 때 자주 쓰는 반어적인 표현문구이다. 페이스북에 있는 ‘North korea is Best Korea’라는 북한체제 풍자 계정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북한인이지만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북한에 대해 갖게 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해외에 파견된 북한주민들이 북한에 대해 좋은 얘기를 들을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중국, 러시아에서도 북한을 폄하하는 말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다. 이럴 경우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고, 부모세대보다 젊은 자녀세대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엘리트 탈북 러시를 바라보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사태가 확대되지 않기 위해 많은 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해외에 외교관들을 파견할 때 자녀들과 함께 내보내지 않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예견돼 기사화되고 있다. 하지만 가족을 생이별시키는 방법은 북한 간부사회의 불만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번 태 공사의 귀순으로 불거진 김정은정권의 엘리트 탈북러시 현상이 시사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탈북을 막기 위해 김정은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폐쇄시키고 처벌하는 것 외에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는 없다. 

엘리트 출신 몇사람의 탈북으로 북한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다. 다만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다양한 요인을 찾아가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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