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39)-고대 그리스의 산문을 통한 시대 감상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0?) 『수다에 관하여』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20?)는 우리에게 <영웅전>으로 널리 알려진 <비교 열전(Bioi paralleloi)>의 저자다. 그는 로마 지배 아래 있던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마지막 그리스 철학자’로 불릴 만큼 고대 그리스의 풍요로운 정신세계와 지적 산물을 로마에 전수해 준 인물이다.  

그의 저작은 <비교 열전>이외에도 <윤리론집>이 전해진다. 78편의 에세이와 대화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국내에는 아직까지 완역본이 나오지 않았다. <수다에 관하여>는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에 실린 에세이 6편을 골라 실은 수필집이다. 헬라어 원전 번역의 대가인 천병희 선생이 헬라어 원전 텍스트를 토대로 번역했다. 

'수다에 관하여'라는 산문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지나친 수다가 얼마나 유해한지 여러 고사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스파르타인들이 현인 뤼쿠르고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어릴 적부터 말을 간결하게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 대목에서 말이 넘쳐나던 아테네인들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지적하는 수다의 해악은 많다. 그는 부부 간이나 친구 간에 수다쟁이로 인해 기밀이 누설되어 나라와 가정의 위기와 파멸을 초래한 다수의 예를 소개한다. 특히 수다가 습관이 되면 고칠 수 없는 악덕이 된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수다와 반대되는 것을 따져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침묵에 대한 찬사를 귀담아듣고, 침묵의 엄숙하고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성격을 마음속에 떠올려야 한다. 또한 간결하게 말하는 사람, 적은 말에 많은 의미를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말 많은 떠버리보다 더 경탄 받고, 더 사랑받고, 더 현명한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수다에 대한 이렇게 진지하게 경고하며 침묵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많고 토론과 수다에 열중하는 경향이 많았던 그리스인들이 수다로 인해 일을 그르친 경우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덧붙인 "말한 것을 가끔 후회한 적은 있어도 침묵한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은 현대인들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말에 대해 경계를 했던 예는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조(1752~1800)가 남긴 시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 중 '추서춘기'(鄒書春記)에 나오는 글이 떠오른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
미가이언이언자 기죄소(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가이언이불언자 기죄대(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

동양에서도 과묵함은 중시되었지만 정조는 '말해야 할 때에' 침묵하는 것은 죄악시했다. 이는 통치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시점에 신하들의 충언을 받고자 한 욕망의 표현일 듯싶다. 하지만 반대로 신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때야말로 설화(舌禍)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 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침묵에 더 끌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튼 전제군주 아래에서 언론의 자유가 거의 없었던 동양과 고대 민주정의 전통 아래 언론 자유를 구가했던 고대 그리스의 사회문화적 환경의 차이는 크다. 플루타르코스가 수다를 특별히 경계한 것은 아마 만개했던 언론 자유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 같다. 사실 평등을 지향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사실상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어떤 억압적 상황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편을 읽어보자. 플루타르코스는 분노의 해악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성마른 성정과 부정적 감정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자제하지 못할 경우, 분별력을 잃어 잔인하고 거친 행동을 거침없이 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유함과 용서와 정념의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분노의 원인을 외부의 요인에서 찾지 말고, 자기 성찰을 통해 타인에 대해 아량과 용서를 베풀 때, 후회와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린다면, 남을 향한 비난을 자기 성찰과 결합시킨다면, 우리 자신에게도 수많은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남들에게 자주 의분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 걸세."

플루타르코스의 글은 다감하고 섬세하다. '아내에게 주는 위로의 글'에서 그의 감성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딸을 잃고 슬픔에 빠진 아내의 깊은 모정에 공감하면서도, 아이가 고통 없는 세상으로 갔다는 것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며, 슬픔을 안으로 삼키며 절제할 것을 요청한다. 그는 딸을 잃은 슬픔을 지나치게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자제시키고 있다. 

"우리는 고인을 그리워하고 존중하고 회상함으로써 얼마든지 애정을 표현할 수 있소. 그러나 애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구에서 울고불고 가슴을 치는 것은 무절제한 쾌락 못지않게 수치스러운 짓이며, 그게 용납되는 까닭은 분명 그런 수치에는 기쁨이 아니라 쓰라린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오."

'결혼에 관한 조언'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가내에 두고 정숙과 복종을 덕목으로 강조하는 등 고대인들의 인식의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고대기의 시대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여성관과 결혼관을 엿볼 수 있다.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시대에 부부 간에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할 것을 권고한다든지, 남성 역시 명예와 순결을 소중히 여길 것을 강조한 점, 그리고 서로 존경과 사랑을 나누는 부부 공동체를 만들 것을 역설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아내는 남편의 감정을 느껴보고, 남편은 아내의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바람직하오. 그래야만 마치 여러 가닥이 서로 꼬임으로써 밧줄이 더 튼튼해지듯이, 부부 공동체는 공동의 노력과 선의의 상호교환을 바탕으로 더 잘 보존되는 것이오."

플루타르코스의 문체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그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는 각별한 재주를 지녔다. 그래서 오늘날의 독자들도 그의 에세이를 현대 수필을 읽듯 편하게 따라갈 수 있다. 물론 행간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2000여년 이전의 고대 그리스 세계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가 낳은 숱한 비극 및 희극 작가, 서사시인, 철학자들의 작품에서 의미 있는 구절들을 즐겨 인용한다. 따라서 수많은 인용 글과 그리스인들의 인명 예시는 그리스 역사와 문화에 낯선 이들에겐 번거롭고 깊은 이해를 어렵게 하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 문학과 철학, 역사에 소양이 있는 사람들에겐 플루타르코스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옛 작품들의 중요 구절들을 상기할 수 있어 흥미로울 듯싶다. 특히 플루타르코스가 주제의 흐름과 요지에 맞게 그때그때 인용한 적절한 고사와 구절,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그의 감칠맛 나는 글 솜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의 박학다식을 재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덤. 

아무튼 이런 서술 방식을 통해 그가 그리스인들의 성취를 얼마나 풍부하게 습득하고 있고 한편으로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의 산문에 담긴 풍성한 그리스 고사나 인용구들을 읽으며 고전의 고답미를 한껏 느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수다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0),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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