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낚시 여행]- 갑오징어 낚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오징어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오징어를 생각한다. 울릉도 오징어로 유명한 이 오징어는 요즘은 서해안에서도 많이 잡히는데, 주로 채낚기 방식으로 잡는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오징어의 정식 명칭은 '살오징어'다.

살오징어보다 훨씬 몸값이 비싼 오징어가 우리가 흔히 '갑오징어'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이 갑오징어는 조선시대까지는 '오징어'라 불렀다. 이 '갑오징어'는 '참오징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다리가 짧다고 해서 한치라 부르는 오징어는 '창오징어(제주)', '화살오징어'가 정식 명칭이다. 이외에 '무늬오징어'라 부르는 '흰오징어'가 있다. 요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으로 생각하면, 낚시로 잡는 오징어에는 '살오징어(낚시꾼들은 화살촉 오징어라 부른다)' '무늬오징어', '한치', 그리고 '갑오징어'가 있다.

갑오징어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어종이었던 모양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갑오징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등에 긴 뼈가 있는데 타원형이다. 살은 매우 무르고 연하다. 알이 있다. 속에 주머니가 있어 먹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징어를 침범하는 것이 있으면 곧 그 먹물을 내뿜어서 침범한 것을 현혹하게 한다. 그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등은 검붉고 반문이 있다. 맛은 감미로워 회나 포 감으로 좋다. 그 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 살이 나게 한다. 뼈는 또한 말의 상처와 당나귀의 등창을 다스리는데, 뼈가 아니면 이것들을 고치지 못한다."

갑오징어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서유구의 『전어지』에 보면 갑오징어 잡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그것은 생미끼낚시가 아닌 루어낚시여서 대단히 이채롭다.

"어부들은 동(銅)으로 오징어 모양을 만들고 그 수염(다리)은 모두 갈고리로 하면 진짜 오징어가 이것을 보고 스스로 와서 갈고리에 걸린다. 오징어는 사람을 보면 먹을 사방 여러 자까지 토하여 그 몸을 흐리게 하는데, 사람은 도리어 이로써 오징어를 잡는다."

구리로 몸통을 만들고 다리에 갈고리를 단 루어로 갑오징어를 잡았다는 말이다. 요즘 에기를 달아 잡는 방법과 동일하다.

   
▲ 에기에 현혹되어 잡힌 갑오징어

서론이 길었다. 갑오징어는 가을철 주꾸미를 잡을 때 손님고기로 가끔 올라온다. 주꾸미보다 덩치도 크고, 그 맛도 좋아서 꾼들은 갑오징어가 올라오면 환호성을 지르기 마련이다. 대개 주꾸미는 조금 전후에 낚시하기 좋고 갑오징어는 사리 무렵에 조황이 좋다. 서식지도 조금 다른데 주꾸미는 모래나 뻘 바닥을 선호하고 갑오징어는 돌이나 바위가 있는 지형이 조금 험한 곳에서 잘 잡힌다. 하지만 이런 경계가 확연히 구분 되는 것은 아니어서 주꾸미가 잡히는 곳에서도 갑오징어가 잘 올라오기도 한다.

최근 뉴스에서 어부와 낚시배 선주간의 갈등이 보도되었다. 어부는 주꾸미를 잡을 때 낭장망이라는 정치망으로 잡는 방법과 봄철 줄이 연결된 소라껍데기를 이용해서 잡는 방법(소랑패기)을 주로 사용한다. 특히 봄철에는 소랑패기를 이용해 잡는 주꾸미가 싱싱하고 알이 꽉 차 있어서 맛이 좋다. 서남해 포구에서 주꾸미 축제가 열리는 때도 바로 이 때다.

   
▲ 햇살의 알갱이가 만져지는 선유도 부근의 가을바다.

낚시꾼은 물론 가을철에 낚시로 주꾸미를 잡는다. 어부들은 낚시꾼들이 어린 주꾸미를 많이 잡아서 막상 봄철에 주꾸미 어획량이 줄어든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니 가을철 주꾸미 낚시를 일부라도 제한하자는 거다. 반대로 낚시배 선주들은 어부들이 산란기에 주꾸미를 잡아서 주꾸미 자원이 감소한다고 항변한다. 산란기에 포획을 금지해야 자원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이 둘의 주장이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어 어느 쪽도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 쪽에 있다고 낚싯배 선장은 주장한다. 속칭 '고데고리'로 불리는 어로 방식인데, 저인망으로 펄 바닥을 모조리 훑어버리는 불법어로가 성행한다는 것이다. 소형 외끌이 배가 저인망으로 특히 비응항 앞 방조제 부근과 연도 부근을 싹쓸이해서 올해 주꾸미가 예년에 비해 훨씬 덜 잡힌다는 것이다. 같은 바다에서 같은 어종을 두고 서로 경쟁하고 있는 형국이다.

   
▲ 포인트 이동 중인 낚싯배

주말이면 낚시를 가곤 했지만, 갑오징어 철이 되었음에도 주말마다 동창회니 결혼식이니 해서 주말을 소비하곤 했으므로 평일인 수요일 마음먹고 갑오징어 겸 주꾸미 낚시를 떠났다.

군산 비응항에서 배는 떠난다. 출항할 때 선장은 주꾸미가 많이 나오던 연도 부근에서 요즘 주꾸미가 통 나오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고데고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장은 새로운 포인트를 찾아 나선다. 고군산군도 포인트다. 특히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연도 같은 오픈된 해역은 파도가 심하다. 조과가 좀 떨어지더라도 꾼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섬들로 둘러쌓인 무녀도 북쪽에서 낚시는 시작된다.

   
▲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가 생겼다.

주꾸미가 드문드문 올라온다. 폭발적인 조과를 기대했건만 바람이 많이 불어 기대치를 줄여야 한다. 차라리 이럴 때는 갑오징어를 노리는 게 낫다. 봉돌이 바닥에 가라앉으면 주꾸미는 살며시 에기나 애자에 올라탄다. 그 약간의 무게감을 감지하고 채면 대개 주꾸미가 달려 올라 온다. 갑오징어의 경우 촉수로 에기를 감싸는데 그 미묘한 차이를 파악할 수 있어야 갑오징어를 마릿수로 잡을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주꾸미와 갑오징어의 입질을 구분한다는 건 상당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집중력이 필요하다. 같은 상황에서 주꾸미만 잡는 꾼이 있고 갑오징어만 골라잡는 꾼이 있다는 것은 갑오징어를 잡는 특별한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흔히 주꾸미 낚시를 쉬운 낚시라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잡아낼 수 있는 낚시라는 거다. 하지만 주꾸미나 갑오징어 낚시에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우럭낚시의 경우 조금의 요령만 터득하면 그날 조과는 운에 달려 있다. 초보자가 대물을 낚기도 하고, 조과도 베테랑을 능가할 때도 있다. 물론 어초우럭낚시의 경우 실력 차이가 드러나긴 하지만, 운도 상당히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꾸미낚시에서 초보자와 베테랑의 조과 차이는 크다. 초보자들은 몇 년을 해도 베테랑의 조과를 넘어서기 힘들다.

비유자자면 우럭낚시는 축구 경기와, 주꾸미낚시는 농구 경기와 비슷하다. 내내 몰리면서 침대축구를 해도 한 골만 집어넣으면 승리하는 것이 축구다. 축구는 이변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4쿼터 내내 부지런히 공을 집어넣어야 하는 농구는 이변이 별로 없고 실력 차가 확실히 드러난다. 주꾸미낚시도 농구 경기와 같이 실력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운으로 한두 마리 잡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꾸준히 낚는 것이 갑오징어나 주꾸미 낚시다.

점심 식사를 할 때 까지만 해도 조항은 별로 좋지 않았다. 낚싯대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하여 주꾸미보다는 갑오징어를 최대한 노려 열대 섯 마리를 잡았다. 갑오징어는 봉돌을 내리고 고패질을 하지 않으면서 낚싯대의 탄력을 최대한 이용해, 에기를 춤추듯이 바닥 부근에서 놀린다. 이때 갑오징어의 촉수가 에기를 감싸는 느낌이 들면 크게 챔질하여 일정한 속도로 릴링하면 된다.

갑오징어가 잡혔다고 흥분해 뱃전으로 바로 끌어올리면 분노한 갑오징어의 먹물세례를 받기 일쑤다. 때문에 갑오징어가 올라오면 몇 번 바다에서 놀리면서 먹물을 분출하게 한 다음 올리는 게 먹물을 피하는 요령이다. 또 하나의 먹물을 피하는 요령은 갑오징어를 조용히 올려 하얀 갑오징어의 배를 바다 쪽으로 보게 한 다음, 갑오징어의 배를 꽉 잡고 에기를 분리하여 살림망 속에 넣은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이 다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먹물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한 두 번은 있게 마련인 것이다.

   
▲ 갑오징어회. 육질이 쫀득쫀득 하고, 씹으면 오도독 거리기도 한다.

조과가 그다지 시원치 않자 선장은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를 지나 비안도 쪽으로 배를 이동시킨다. 분명 비장의 포인트로 가는 것일 공산이 크다. 배는 비안도 긴 방파제 앞에 멈춘다. 방파제에 바짝 붙인다. 방파제 부근이라면 공사할 때 투입된 토석으로 인해 갑오징어의 은신처들이 생겨났을 것임이 분명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에기를 내리자 바로 갑오징어의 입질이 느껴진다. 힘차게 챔질하고 감아올린다. 씨알도 아주 좋다. 배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린다. 하지만 아쉬운 탄식도 함께 한다. 갑오징어를 올려놓고 마지막 랜딩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챔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저기서 채비가 바닥에 걸려 채비를 다시 세팅하느라 분주하다.

배 전체에 생기가 돌고 꾼들은 들떠서 낚시에 열중한다. 이럴 때는 다운샷 채비를 응용하는 것이 방법이다. 에기나 애자를 위에 달고 아래에 봉동을 달면 채비 걸림을 피하고 갑오징어만 잡을 수 있다. 여수나 제주에서 다운샷으로 갑오징어나 무늬오징어를 잡을 때 하는 방법을 응용해서 채비를 살짝 띄워 탄력을 주고 있으면 낚싯대 끝에 갑오징어 촉수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 때 강하게 챔질하면 된다.

이때부터 약 한 시간 완전히 낚시삼매에 빠진다. 무아지경이라 했던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갑오징어를 연신 잡아낸다. 주꾸미만 잡아 본 꾼들은 밑걸림으로 인해 갑오징어 낚시에 잘 대응을 못한다. 바닥낚시 습성을 버리지 못해 채비만 연신 날려먹는 것이다. 남들이 잡지 못할 때 혼자 연신 잡아 올리면 통쾌감은 배가된다. 별거도 아닌 것인데, 괜히 우쭐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씨알좋은 갑오징어로 한 30여 마리를 낚았을까? 계산해보면 2분마다 한 마리씩 잡은 것이다.
 
   
▲ 들기 힘들다. 2분에 한 마리씩 잡은 갑오징어.

그렇게 갑오징어 파시가 끝났다. 이제 갑오징어 먹는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갑오징어는 회로, 통찜으로, 국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싱싱한 갑오징어의 맛을 기대하며 순산에서 한달음에 서울로 차를 몬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두 번 더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 갑오징어 통찜. 그냥 찌면 된다.

   
▲ 갑오징어 통찜. 내장 윗부분 위장만 발라내고 모두 먹을 수 있다.

   
▲ 갑오징어 국. 회를 치고 남은 부분으로 오징어국처럼 끓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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