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자본주의에 대한 오류…무한경쟁의 시대 부자도 까딱하면 망해
지난 4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는 '베탕쿠르와 이재용, 그리고 세습자본주의’라는 제하의 칼럼이 하나 올라왔다. 우리 경제가 점점 불공정해지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재벌을 위시한 상위 계층의 세습과 편법 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좌파적 주장들이 모두 그러하듯 이 글 역시 사태의 본질을 오도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 반박해보고자 한다.

1. "로레알의 상속녀 베탕쿠르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특별한 실력을 갖추지도 않았지만 단지 부모에게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프랑스의 최고 부호 지위를 누렸다."

정말 그랬으면 로레알은 진즉에 망했어야 정상이다.

2. "상속을 통한 대물림은 부모로부터 신분이나 재산, 그리고 관계망 등을 전해 받아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면 외모는 어떤가? 성격은? 운동 신경은? 지능은? 다 물려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외모세, 성격세, 신경세, 지능세를 물리진 않지 않나? 재산의 상속에 유독 배 아파하는 이유는 다른 것들과 달리 재산은 '빼앗을 수 있는' 유형의 물질이기 때문이다.

근데 빼앗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빼앗는 게 과연 공평한가? 상속 재산의 본질이 부모가 열심히 노력해 번 소득에서 세금 떼고 남은 부분임을 고려해 보면, 오히려 이에 대한 세금은 완전한 불로소득인 외모와 성격에 대한 세금보다 부당하다.

< 칼럼 개요 >
● 매체 : 허핑턴포스트 (The Huffington Post)
● 칼럼명 : 베탕크루와 이재용, 그리고 세습자본주의
● 글쓴이: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 등록일자 : 2016년 11월 3일 14시 37분

   
▲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등 OECD 8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과세를 대체했다. 독일과 영국에는 가업상속공제에 대한 제한이 없다. 로레알 상속녀 베탕쿠르에 대한 일각의 비난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외면하는 현실인식에 따른 것이다./사진=로레알 로고


3. "세습자본주의란 상속부자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소득과 특권을 향유하는 사회를 말한다. 본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 잘 만난 운에 의해 지배적 지위를 향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신분제 사회가 부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번에서 이미 밝혔지만, 부자도 까딱하면 망한다. 특히 기업 경영인의 경우, 시장의 선택을 받아야만 자신의 부를 유지할 수 있다. 세계화와 더불어 도래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시장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 

4. "게다가 각종 정책과 제도가 갈수록 불공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업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대기업 집단 지정 제도)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가 있어, 특정 산업에는 아예 대기업이 진출조차 못한다.

상위 0.1%의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수의 64%를 내고, 상위 1%의 소득자가 전체 소득세수의 45% 가량을 낸다. 건강보험료까지 누진제다. 하위 47%의 기업과 48%의 소득자는 단 한 푼의 세금도 안 낸다. 

이런데도 제도가 불공평하다고? 물론 불공평하다. 부자에게.

5. "부와 빈곤의 대물림을 부채질하고 있다."

자꾸 빈곤의 대물림이 심화된다는 데 그 빈곤이란 게 대체 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소득 격차'지 '빈곤'이 아니다. 빈곤이 대물림 되고 있다면, 10년 전 빈곤층의 생활수준이 지금보다 높았다는 얘기인데 그게 과연 맞는 말인가?

경제가 성장하다보면, 새로운 혁신의 기회를 찾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그 기회를 찾는 상위 계층의 성장 기여도는 높아지고, 따라서 소득 격차도 커진다. 그러나 그 결과 빈곤층의 생활수준도 분명 이전보다 나아진다. 2G폰 쓰던 사람이 알뜰폰을 쓰게 됐다면, 생활수준은 높아진 것이다. 아이폰을 못 쓴다고 빈곤해진 게 아니다.

6. "사교육에 의존하는 입시경쟁과 서열화 된 대학체제, OECD 최고 수준의 사립학교 비율과 대학등록금 등으로 인하여 명문대학 입시에 가정형편이 갈수록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누가 사교육을 시키라고 강요한 게 아니다. 작금의 사교육 경쟁은 부모들이 스스로 만든 '자멸적 입시판'이다. 게다가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강남 1타 강사의 강의를 시골 강촌에서도 언제나 들을 수 있다. 아예 사교육 못 받는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지역 균등이니 기회 균등이니 하는 소수집단 우대전형(affirmative action)도 있다. 

서열화 된 대학체제? 전 세계에 대학이 서열화 되지 않은 나라가 어디에 있나? 좌파들이 부르짖는 프랑스식 대학 평준화의 이면에는 엘리트들만을 위한 별도의 교육기관인 '그랑제꼴'이 존재한다.

등록금은 또 어떤가? 지금은 과거와 달리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 제도가 존재한다. 각 대학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제도가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다. 

요컨대 지금은 우리 역사 상 가장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시대다. 청년들이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가정형편의 실질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공부 못하는 걸 사회 탓해선 안 된다.

   
▲ 한국에서 창업 성공 신화를 달성했다고 하는 기업들은 대기업 협력업체들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협력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30대 그룹 상장사 평균보다 높을 정도다./사진=미디어펜

7. "상속증여세가 느슨하고, 자본과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전반적으로 미약하다."

대기업 경영자란 이유만으로 65%라는 징벌적 상속세를 물리는 나라가 전 세계 어디에 있나?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도 대주주한테만 걷지 소액주주들한텐 안 걷지 않나? 

8. "한국에 자수성가한 부자가 별로 없고 상속부자 비율이 높은 까닭은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다. 재벌의 그늘 아래서 창업 성공 신화는 나오기 어려운 반면"

자수성가할만한 사람이 없는 걸 왜 재벌 탓을 하나? 옆집 아저씨가 건강해서 우리 아버지가 아픈 건가?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창업 성공 신화를 달성했다고 하는 기업들은 대기업 협력업체들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협력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30대 그룹 상장사 평균보다 높을 정도다.

창업 성공 신화가 안 나오는 이유는 상당수의 창업이 저부가 소비재 산업과 도소매/음식/숙박업 등에 죄다 몰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랫동안 이어진 관치금융과 규제로 인해 미국처럼 벤처캐피탈(위험자본)이 발달하지 못한 탓도 크다. 그러나 그게 재벌 때문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재벌들은 벤처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9. "재벌가는 다양한 편법을 동원하여 부의 상속을 실현한다."

65%의 상속세를 물려 기업 지배력을 다 잃게 만들어 놓고, 편법이 없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그리고 자꾸 편법, 편법 하지마라. 일반인들이 세법 이용해서 세금 줄이는 건 '절세'라는 이름하에, 세무서에서 친히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같은 일을 재벌이 하면 '편법'이라고 하나? 사모사채 발행을 통한 편법상속 문제가 불거지자, 기어이 법까지 바꿔 세금 내게 한 게 우리나라다.

10. "통상 대다수 상속인은 각종 공제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겨우 2%정도만 상속세를 납부한다."

98%의 상속이 10억도 안 되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상속이 2~5억 사이에 모여 있다. 중산층 부모가 가진 집 한 채가 이들 상속 재산의 본질이다.

11. "가업상속공제는 무려 500억 원까지 가능"

독일과 영국에는 아예 이런 제한이 없다. 독일이 자랑하는 강소기업 '히든챔피언'들이 모두 이러한 가업상속공제를 통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경영되어 온 회사들이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공제 한도 제한으로 적잖은 중견기업인들이 회사 지분을 내다팔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진정 경제 발전을 위한 지식 축적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등 OECD 8개국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과세를 대체했다. 예를 들어 부모가 50만 원에 취득한 재산이 자녀가 물려받는 시점에 100만 원이 됐다면, 그 차액인 50만 원의 자본이득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상속받은 기업지분을 팔기 전까진 상속세 과세를 유보한다. 과세표준도 매각 금액 전체가 아닌 자본이득(=자녀가 매각한 금액-부모가 취득한 금액)에 한정된다. /박진우 리버럴이코노미스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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