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43)-사물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논리적 식별 도구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범주들』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우리는 사람과 사물, 사회 현상을 각각 어떻게 인식하는가. 각각이 갖고 있는 특질을 특정한 개념으로 둘러씌워 일정한 판단을 내린다. 이렇게 일정한 의미와 인식의 테두리로 묶어낼 수 있으면 사물의 구분이 보다 용이해진다. 이럴 때 만들어진 구획이 범주(範疇)다. 원래 범주는 『서경(書經)』에 나오는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준말이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에게 가르친 나라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항목을 일컫는 말로 다양한 사물을 정리, 분류한 기본 '틀'이나 '테두리'를 의미한다.

범주는 사물을 구분하고 인식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화가 철학적 사유의 1차적 도구가 된다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을 창시하면서 제일 먼저 <범주들(Categoriae)>를 저술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저술을 시작으로 <명제에 관하여(De interpretatione)>, <전 분석론(Analytica priora)>, <후 분석론(Analytica posteriora)>, <변증술(Topica)>, <소피스트적 논박(Sophisticielenchi)>을 저술했다. 후대인들은 이 저작들을 묶어 '오르가논'이라 일컬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실체를 서술하는 요소 10개를 제시하고 이를 범주화하고 있다. 이는 물음의 형태를 띠는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의 6개의 범주와, 능동, 수동, 소유, 놓임새의 4개의 범주다.

이 범주들은 사물을 분류하는 근본 개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범주들이 만들어내는 개념들이 어떻게 구분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설명하고 있다. 10개의 요소 홀로는 명제 형태로 말해지지 않지만, 서로 결합되면 명제를 만들어내고 참이거나 거짓이 된다. 이를테면 "사람", "말", "희다", "달린다"는 명제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희다", "말이 달린다"는 하나의 명제가 된다.

범주는 특정한 주어에 대한 술어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무엇이다'라고 말해지는 것들이 술어다. 어떠한 서술도 앞에서 열거한 10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에서 '사람'은 실체에 대한 술어다. 실체에는 반대되는 것이 없다. 즉 '사람'에 반대되는 개념은 없다는 의미다. 또 실체는 더하거나 덜하다는 개념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어떤 물체가 더 따뜻하다, 또는 덜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람은 '더'한 사람, 또는 '덜'한 사람이라는 정도의 차이를 말할 수 없다.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범주의 경우 더하거나 덜함에 대해 이야기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건강하다' 또는 '소크라테스는 병들었다'라는 서술에서 '건강하다'와 '병들었다'는 곧 '어떠함'에 대한 서술, 즉 질에 대한 서술이다. 따라서 이들 서술에 대해서는 '더와 덜', 즉 정도의 차이를 허용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삼각형이다'라고 말할 때, 다른 것보다 '더' 삼각형이라고 불리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 수(數)는 어떤 범주에 속할까? 시간과 수는 양(量)에 속한다. 수와 양은 모두 불연속적이지만, 시간은 연속된 것이다. 예를 들어 5가 10의 부분이라면, 하나의 5와 또 다른 5는 어떤 공통의 경계에서 서로 닿지 않고 끊어져 있다. 각각의 수는 끊어져 있는 양인 것이다. 반면에 시간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이 맞닿아 있다. 시간은 머물러 있지 않고 시간의 일부가 먼저 있고 다른 일부가 나중에 있기 때문에 순서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양의 범주에 속한 것들은 반대되는 것을 갖지 않는 특질도 있다.

사람이나 사물이 어떠하다고 말할 때, 그 말해지는 질의 종류는 '습성'인 경우나 '상태'인 경우와 '능력', 지속적인 '성질'과 일시적인 '경험(겪이)', 그리고 형태와 각 대상의 둘레 있는 모습으로 나뉜다. '그 사람은 권투 선수다'라고 말해질 때는 '능력'을, '저것은 원이다'라고 할 때에는 형태에 대해 말해지는 것이다.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빨개진 사람은 지속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습성이나 상태라기보다 일시적인 '겪이'라 불린다.

무엇이 크거나 작다고 말해지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것과 비교되어 자신이 어떠한지가 말해지는 것으로 이는 '관계'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관계의 범주는 자기 자신 스스로 규정되지 않고 다른 어떤 것에 얽혀 말해지는 것들이다. 관계의 범주에 드는 것들은 '더와 덜'을 허용한다. 이 경우 관계되는 것이 알맞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 이것에 얽혀 그 관계가 말해질 수 없다. 이를테면 '이 노예는 저 사람의 노예이다'라고 말해질 때, 특정인이 주인이 아니라면 노예는 더는 그 특정한 사람에 얽혀 노예라고 말해지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10개 술어들의 특징과 의미의 한계를 치밀하게 분류하고 각각의 범주를 정의하고 있다. 말해지는 술어들이 포괄하는 의미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즉 어떤 범주로 이해하느냐는 그것을 대상으로 논증하려는 사람 사이에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화자(話者)들이 서로 잘못된 범주를 사용할 경우 합리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언명(言明)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논증을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치밀하게 특정 주어에 붙여지는 술어들을 범주화하고 각각의 의미와 성질을 상술한 이유는 그 술어들이 논증과 분석의 도구가 되는 중요한 개념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범주는 곧 사물을 분류하는 근본 개념인 동시에 논리학과 형이상학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는 데 범주들은 인간 사유체계의 근간을 이룬다. 범주화 없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개별자로 이해해야 한다면, 인간에게는 엄청난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그런 방식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양과 질, 시간과 장소, 능동과 수동 등등을 어느 정도 스스로 범주화해나가는 능력을 익히게 된다. 그러나 학습을 통해 정확한 논리적 구분을 식별할 수 있을 때, 보다 체계적인 말과 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논리학적 수단이 되는 범주에 대한 이해는 단지 논리학과 철학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한 지식이 될 수 있다. 다소 어렵지만 인내심을 갖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역작들을 읽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어와 결합되지 않은 개개의 술어에 대해 범주화한 <범주들>에 곧바로 이어서 읽어야 할 책은 <명제에 관하여>이다. 여기서는 서술문, 주장문, 진술문과 같은 문장을 다룬다. 문장의 구성요소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어떤 성질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지를 다루고 있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범주들』,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진성 역주, 이제이북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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