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46)-변증과 논박의 훈련을 위한 메뉴얼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변증론』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무언가 확실한 주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담화나 글이 '논리적이다'라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물론 '논리적이다'라는 말은 옳고 그름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일단 '논리적'이란 어떤 방향에서든 제기된 내용이 모순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의 논지는 듣는 이나 보는 이에게 보다 잘 설득되고 수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떤 주제에 대한 논의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데 필요한 방법과 규칙에 대한 연구가 곧 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후 후대의 주석가들에 의해 편집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물들, '오르가논(Organon)'은 논리학의 태동을 알리는 위대한 저작이다. <범주들(Categoriae)>, <명제론(Peri hermeneias)>, <분석론 전서(Analytica priora)>, <분석론 후서(Analytica posteriora)>, <변증론(Topica)>, <소피스트적 논박(Sophisticielenchi)>이 바로 그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론>의 서두에서 이 책의 저술 목적을 "우리에게 제기되는 온갖 문제에 대해 통념(엔독사, endoxa)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방법과, 우리 자신이 하나의 논의를 유지하려는 경우에 모순되는 그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변증술(dialektike)은 질문자와 답변자의 담화를 통해 사물과 현상의 실체와 진리를 파악해 나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방법의 기원은 소크라테스가 행한 문답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학문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변증론>에서 질문자와 답변자가 오류를 범하지 않고 추론하고 명확한 논의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규칙들을 치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2300여 년 전에 특정한 주제에 대해 이토록 엄밀하고 정치(精緻)한 변증술의 기법들을 궁구했다는 데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제 분야를 창안한 '학문의 아버지'답게 진리와 앎으로 이끌기 위한 보편적 방법론으로써 논리학을 창안했다.  

중세까지 이어진 학문의 세 영역, 즉 윤리학(정치학 포함), 자연학, 논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같은 시기 동양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제자백가들은 천자와 제후에게 통치술을 조언하고, 백성들에게 충효의 윤리를 실천하도록 요구한 정치학과 윤리학을 전개하는데 그쳤다. 이에 반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현대에까지 이어진 제 학문 분야의 근원적 토대를 만개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탁월한 기여를 한 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생물학, 자연학, 논리학에서도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 그가 창안한 논리학은 그 독창성과 치밀함에 있어 독보적이다. 그가 정립한 변증술의 규칙과 수사학적 기법들은 15세기 중세의 논리학에까지 그 영향이 미쳤을 정도다. 고대 그리스에서 창안된 수사학과 논리학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역으로 민주주의는 수사학과 논리학의 진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중국에서 논리학이 탄생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평등한 수사와 변증을 전개할 수 없었던 전제군주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변증의 출발은 주제에 대한 올바른 추론과 정의에 있다. 추론을 제대로 하려면 명제를 확보하고, 말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종차(種差)를 발견하고, 유사한 것들을 검토해야 한다. 변증술적 명제는 모든 사람에게서 혹은 대다수의 사람에게서 혹은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통념(엔독사)에서 나온 질문의 형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엔독사에서 출발하여 이를 유(類)와 종(種), 종차(種差)와 유사성 등을 검토하면서 모순적인 것들, 대립되는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찰했다. 이 부분이 제1권에서 기술한 핵심내용이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2권부터 제7권까지에 논증의 공통 규칙들, 즉 토포스(Topos)를 상세하게 설계해 놓았다. 이 책의 제목이 그리스어로 '토피카(Topika)'라 이름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역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 책에는 무려 337개에 달하는 토포스가 논의되고 있다. 거대한 변증론 기법의 매뉴얼인 셈이다. 여기에 제시된 세심하고 방대한 규칙들은 현대의 논리학 전공자들이 읽어내기에도 인내심이 꽤나 필요해 보인다.  

변증은 말에 대한 말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우선 질문하는 자의 명제가 어떻게 정의되는가, 보편명제인가 특칭명제인가 따져봐야 하고, 주어나 술어에 어떤 것이 부수되는가도 살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변증의 여러 토포스가 나온다. 명제를 올바르게 확립하려면 의미가 모호하거나 다의적인 것을 논의에 적합한 의미로 구별 지어야 한다. 또 유(類)와 종(種)의 관계도 바르게 정렬되어야 한다. 이러한 토포스들은 상대방을 논박하는데 사용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논의가 바르게 성립되도록 자기 검증을 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검토하는 토포스들은 매우 세밀하게 분류되고 섬세하게 검토되고 있다. 예를 들어, 둘 혹은 그 이상의 술어들의 비교 평가에 필요한 토포스는 이렇다. 전문가와 현명한 사람들에게 선택될 만한 것이 좋은 것이다, 유(類)가 부수적인 것보다 더 바람직하다, 또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 부수적인 것보다 더 선택될 만하다. 가령 "친구들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 "적들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보다 한결 더 선택될 만하다는 것이다. 또 단적으로 또 자연적으로 좋은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고, 목적이 수단보다 더 바람직하다.  

유(類)와 종(種)의 술어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느냐를 면밀히 살피는 것도 논증에 유용하다. 만약 상대의 논의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유(類)와 종(種)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토포스에 어긋나는 점을 포착하면 그 모순의 지적으로 논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참조되는 토포스들은 이렇다. '상위의 유들은 본질에서 그 종들에 대해 술어가 된다', '종차는 유 안에 놓을 수 없다', '유는 종 안에 놓여서는 안 된다', '유의 정의는 종과 종에 관여하는 것들에 적합해야만 한다', '종차는 유로서 주어지지 않는다' 등등. 문제는 논박하고자 하는 이가 상대의 논의에서 위와 같은 토포스에 부합되는지 아니면 위반되는지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술적 논의에 적합한 고유속성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증의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유속성이 적절하게 주어졌는지를 검사하는 방법들을 토포스로 제언하고 있다. 상대의 주장을 뒤엎으려면 하나의 주장이 갖는 고유속성이 명료하게 주어졌는지 살펴야 한다. 또 어떤 말이 다의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많은 고유속성을 구별하지 않은 채 동일한 것에 부여되고 있지는 않은지 검증해야 한다. 이런 검증의 착안점들은 역으로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 유의해야 할 점이기도 하다. 

또 논의되는 것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변증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6권에서 논제의 불명확성을 피하는 방법과 정의가 명확하지 못하게 되는 사례들을 검사하는 방법을 치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상대방이 비유에 따라 말하거나 동명이의적인 어구를 사용한다면 그 정의를 분명하게 판별해야 한다. 또 가래의 정의를 '음식물에서 최초로 생긴 소화되지 않은 습한 것'이거나, 크세노크라테스가 '실천적 지혜'를 '존재하는 것들을 정의하고 또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것들을 장황하게 부가적으로 서술하는 것도 고유속성을 제대로 서술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요즘 각종 방송매체에서 벌어지는 찬반토론을 보면, 논제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또는 서로 다른 정의와 관점을 갖고 상대를 공격하는 어이없는 경우를 숱하게 관찰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엄밀한 토포스에 비추어보면, 현대인들의 토론과 논박이 전혀 변증적이지 못하고, 심지어 얼마나 무규칙적이며 난삽하고 졸렬하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는 논의하는 주제와 어구들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유(類)와 종(種)의 포괄과 종속의 관계마저 불명확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하는 변증의 토포스는 매우 명증하고 치밀한 논리의 확립 여부를 검증하는 데 더 없이 매서운 도구다. 변증술적 방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탐구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질문을 구성할 때에는 필연적인 전제들, 예컨대 보편적인 것이 승인되기 위한 것이거나, 논의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한 것, 또 논의의 무게를 증대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결론을 숨기기 위해 사용되는 전제들은 논쟁을 위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술적 논의의 훈련과 연습을 위한 지침을 이렇게 제시한다. 중간에 도출한 결론을 뒤엎고 인정했던 여러 논점 가운데 하나를 거부하는 등 논의를 전환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또 찬성, 반대를 드러내는 논의에 대한 훈련도 필요하다. 나아가 하나의 논의를 여럿의 논의로 만들어 상대가 가능한 알지 못하도록 숨기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또 논의가 보편적 형식을 띠는지 살펴야 하고, 귀납과 추론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술은 철학적 훈련을 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다른 사람의 논변이 적절한 것인지 탐색하고, 자신의 논의를 모순됨이 없도록 하는 것은 더 없이 훌륭한 지적 훈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책에서 제시한 매뉴얼에 따라 다른 사람과의 토론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엔독사를 검증하고 올바른 추론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토론과 담화를 변증론의 토포스에 따라 분별하고, 해석해내는 일은 매우 난해한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학교 교육에서도 대화술이나 논리적 글쓰기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논리학적 학습과 훈련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변증술이 독립적 학문의 위상을 갖기 어렵다 하더라도 제 학문으로 나아가는 학적 지식의 구축에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변증술의 방법들이 학(學)의 제일원리를 명료하게 하는 데 유용하다고 한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변증론』,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 도서출판 길(2014, 3쇄), 476쪽.
[박경귀]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