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9개 재벌그룹 총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6일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을 구성하는 재벌 회장들이 ‘전경련 해체’에 동조하는 기현상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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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과 선서한 뒤 대표로 선서문을 전달하기 위해 위원장석으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날 청문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정권 차원의 모금 의혹을 전방위로 제기됐는데, 재단 설립에 관여한 전경련에 대한 해체 요구가 쏟아지면서 전경련 국감을 방불케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뚜렷하게 밝힌 데 이어 최태원 SK그룹, 구본무 LG그룹,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도 전경련 탈퇴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전경련 최대 회원사인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앞으로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일부 재벌 기업이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해체 요구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에 관여됐다는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체를 검토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각 회원에게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면서 "어떤 의견이 있나 들어보고 각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어떻게 전경련이 나아가야 하는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의 재촉성 질문에 일부 그룹 회장들이 마지못해 긍정적 답변을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경련 회장단을 구성하는 재벌 회장들이 ‘전경련 해체’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는 것은 현재 전경련이 처한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다.
국회 청문회에서 일부 그룹 총수들이 공개적으로 탈퇴 의사를 밝힌 뒤 전경련은 쇄신 방향에 관한 소속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전경련은 다음 날 이승철 상근부회장 주재로 임원 회의를 열고 이 같은 상황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당장에 어떤 방안을 내놓는 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라면서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는 데 힘쓸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전경련은 청문회 의견과 회원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조직 쇄신안을 준비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 안팎에서는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방안,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 연구단체로 거듭나는 방안,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통합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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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 자료사진 |
지난 1961년 5·16쿠데타 직후 한국경제인협회로 출범한 전경련은 55년간 기업 애로사항을 호소하거나 정책을 개발·제안하는 경제단체로서의 역할을 맡아왔다. 이런 본연의 활동은 물론 대기업들로 구성된 단체답게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전경련은 한국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정경유착의 통로, 부패한 권력을 위한 모금자의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전경련은 과거에도 일해재단 자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비자금 모금,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 등에 연루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사과와 윤리선언 등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또다시 '최순실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게 됐다.
향후 전경련이 어떤 쇄신안을 내놓는지에 따라 조직의 존속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현재로선 전경련의 해체보다는 변신을 통해 새로운 단체로 거듭나도록 하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회원사들의 의견수렴에서부터 쇄신안 마련까지 매 단계 난관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공식적인 의견수렴을 위한 회장단 회의를 열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최하려다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와 참석률 저조 탓에 무산돼 버린 정례 회장단 회의는 다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기업들은 인사 등 경영이 전면 중단된 데다, 향후 진행되는 특검 수사에 대비하기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여기에 전경련 개혁 방안 논의가 차기 회장 선임 시기와 맞물려 있는 점도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허 회장은 내년 2월 임기가 끝난다. 그는 2011년 취임 이후 이미 두 차례나 연임한 만큼, 임기가 끝나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본인 뜻이 확고하다. 아울러 재임 중에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 의혹 사태가 터지면서 추가 연임은 어려워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후임 회장 인선 작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공식 일정은 내년 1월 정례 회장단 회의와 2월 중순 정기총회가 뿐으로, 2월 총회는 전경련 회장 이·취임을 위한 것으로 그 전까지 쇄신안 논의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10대 그룹의 총수들이 하나같이 회장직을 고사하면서 후임자 찾기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중견 그룹에서 총수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청문회에서 나온 총수들의 탈퇴 발언은 전경련의 단순 해체보다는 발전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면서 "회원들의 의견을 신속히 수렴해 그 의견들을 반영, 혁신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경련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전경련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인적 쇄신을 하는 등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조직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팽배하게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