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51)-못된 인간들 묘사를 통한 선한 인간형 추구
테오프라스토스(BC 373~287) 『캐릭터』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인간 성격은 다층적이다. 하나의 특징적인 행태로 인간의 깊숙한 내면을 읽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주 드러내는 언행은 그의 성품의 중요한 특질을 가늠하게 하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인간의 품성과 성격은 타고난 유전적 기질뿐만 아니라, 성장과정의 사회적 환경에서 취득되는 습성에도 영향을 받을 듯싶다.

어떤 이는 허풍과 허세가 두드러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온화한 성격과 공손한 매너를 보이고, 또 무례하고 거친 고압적 태도가 몸에 배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집단에 속한 이들은 직업적 특성으로 유형화 될 수 있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서 연유되었든 인간의 서로 다른 행태는 인간 개개인의 본질적 개성으로 귀속된다.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질적 성질의 유형은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에게도 이런 인간의 본질적 성격이 관심거리였던 모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 기원전 373~287)는 기원전 4세기에 당대 인간들의 품성과 성격을 면밀히 관찰하고, 이를 서른 가지 형태로 나누었다. 

여기에 묘사된 다양한 인간 군상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자. 세상 어디에나 '겁쟁이'는 많다. 나팔수가 공격을 알리는 신호를 하면, 그는 천막 안에 앉아서 소리를 지른다. "저런 염병할 자식! 나팔을 불어 불쌍한 동료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있어." 그러고 나선 다른 사람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자신에게 묻히며 전투에서 돌아오는 군대를 맞이한다. "동료 한명을 구했다"라고 큰소리치며. 이런 유형의 겁쟁이는 피 튀기는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오늘날에도 각종 위난에 처했을 때 볼 수 있는 유형이 아닐까.

방금 긴 여행을 끝내고 온 사람에게 함께 산책을 하자고 조르는 '눈치 없는 사람'도 있고, 이웃에게 가서 곡식을 빌리고서는 그 이웃에게 자기 집으로 배달해 달라고 요구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배심원 만장일치를 이끌어 재판에서 이겼을 때 그의 변호인에게 자신의 변론서에 핵심이 많이 빠졌다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실로 '감사할 모르는 사람'이다.

애완견이 죽으면 개를 위해 무덤을 쓰고 비석을 세우는 '허영심 많은 사람'도 있고, 배심원이 되었을 때 평결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고, 극장에 갔을 때는 관객이 극에 집중하는 것을 막는 '성가신 사람'도 있다.

가면을 쓰지 않고 진지한 태도로 음탕한 춤을 우스운 합창에 맞춰 추기를 마다하지 않고, 재판에서 명세로써 자신을 변명하지만, 나중에 가슴에 한 다발의 종이를, 손에 한 철의 문서를 가지고 나타나는 '무뢰한'도 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실제로는 대단하지 않으면서 대단한 척 하는 '허풍선이',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습성이 있는 '험담꾼', 이익을 게걸스럽게 사랑하는 '탐욕스러운 사람'의 행태도 까발린다. 

여기에 소개되는 인간 캐릭터는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인들의 삶의 실제 풍경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당시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행태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언뜻 이해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시대마다 다른 문화와 풍속 속에서 이해되는 내용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공직에 선출되었을 때 수락을 거절하면서 자신은 도저히 여유가 없다고 맹세하는 사람은 '거만한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경우라면 그를 '거만한 사람'으로 비난하기 어려울 듯싶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의 사회문화를 알면 상황은 다르다. 당시 대부분의 공직을 추첨에 의해 선발했고, 스트라테고이(strategoi)라고 불렸던 10명의 장군은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되었다. 이들의 경우 건강 문제나 경력 부족 등 명확한 이유로 맹세했을 때에 한해 공직을 거절하는 것이 허락되는 게 관습이었다. 그러니 여유가 없어서 공직을 수락할 없다고 하는 건 당연히 자신을 뽑아준 민회와 아테네 시민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은 당연히 ‘거만한 사람’으로 비난받아 마땅했던 것이다.

이렇듯 테오프라스토스가 제시하는 인간 유형에는 당시 문화에서 용인되지 않거나 부적정한 행위로 여겨질 수 있는 행태를 보이는 특별한 인간 캐릭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대와 공간을 떠나 언제나 동일하게 이해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에 따른 인간 캐릭터가 제시되고 있다.

이 책에 제시된 30개의 인간 캐릭터는 당시 그리스 사회의 다양한 풍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어찌되었든 여기서 노출되는 인간 유형은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거나 혀를 차게 하는 부정적 인간형이다. 물론 각 인간 유형은 각각의 특징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과장되게 표출한 예로써 모델을 삼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런 인간형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감동을 주는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전형적 인간형이다. 이런 인간형은 인간의 보편적 감성에 보다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테오프라스토스가 이렇게 현실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인간 군상을 유형화한 이유도 바로 당대인들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간 유형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고자 한 때문인 것 같다. 테오프라스토스가 희구한 인간형, 그리스인들에게 권장하고 싶었던 인간형을 그는 반어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이자 제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리케이온(Lykeion) 학당의 총장을 35년간 역임한 후계자이다. <식물학>, <식물학의 여러 원인>을 저술하여 식물학의 시조로 알려진 테오프라스토스가 인간 성격을 내밀하게 스케치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원래 작가들이 인간 성격 유형에 깊은 관심을 갖게 마련 아닌가.

그러고 보면, 그리스 말기 유명한 희극 작가였던 메난드로스가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였다는 점은 범상치 않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예리한 인간 성격 묘사에서 얻은 착상을 메난드로스가 희극 작품에서 전형적 인간형으로 구현했을 것이다. 로마의 희극 작가 테렌티우스 역시 자신의 희극 작품에서 테오프라스토스가 유형화한 인간형을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이 작품의 영향은 근세까지 이어진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장 드 라브뤼예르(Jean de La Bruyere, 1645~1696)가 테오프라스토스의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여기서 얻은 착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이모저모』를 저작하여 다양한 인간 군상의 성격을 추가했으니 말이다.

테오프라스토스가 구별해 낸 인간 성격 유형은 모두 못된 인간 유형이다. 그는 선한 인간 유형이 아니라, 오히려 결점이 많고 나약한 인간이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두드러지게 보이는 악한 캐릭터를 소개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어리석고 도덕적 결함이 많은 인간들을 묘사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이와 대조되는 선한 인간형의 소중함과 미덕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리타분하고 진지한 도덕적 인간형을 통한 훈화보다 인간의 도덕적 어리석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이를 비웃고 경멸하고 경계하는 가운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도덕적 인간형을 지향하도록 인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30개의 인간 성격 유형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때때로 우리 역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여기 제시된 어떤 인간 유형의 행태를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인간의 성격을 몇 가지 상투적 유형으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실상의 전모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 내면은 매우 복합적 성격이 어우러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묘사된 서른 가지 캐릭터를 한바탕 웃음 속에서 살펴보면서 독자 자신들의 행태를 비추어볼 수 있는 또 다른 거울은 될 수 있을 듯싶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캐릭터』, 테오프라스토스 지음, 이은종 옮김, 주영사(2014), 116쪽.
 
[박경귀]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