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54) 남편 살해와 모친 살해, 무엇이 더 중한 패륜?
아이스킬로스(BC 525?~BC 456) 『오레스테이아』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죽음과 장례식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당연히 승리자인 그리스 군과 패배자인 트로이아 영웅들의 뒷얘기가 궁금해진다. 2004년 개봉된 영화 <트로이>도 호메로스의 작품을 기본 줄거리로 삼아 트로이 전쟁을 그렸다. 하지만 원작 『일리아스』와 상당 부분 다르게 각색되었다.  

영화에서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이던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이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 것은 대표적인 오류 중의 하나다. 그저 영화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각색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실제 신화 속 아가멤논은 그리스 본토로 무사히 귀환한 후, 자신의 왕궁에서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Klytaimnestra)에게 살해된다. 아가멤논은 트로이아를 멸망시킨 영웅으로서는 치욕스런 죽음을 맞았다. 

아가멤논의 비극적 최후와 대를 이은 복수극을 다룬 작품이 바로 아이스킬로스(Aeschylus)의 『오레스테이아(Oresteia)』이다. 즉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이야기'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제1부 아가멤논(Agamemnon), 제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Choephoroi), 제3부 자비로운 여신들(Eumenides) 3부작으로 이 작품을 구성하고, 아가멤논 왕가의 얽히고설킨 살인과 복수의 비극적 사슬을 그리고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비극작가다. 그는 제자인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와 더불어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평가된다. 이 세 사람에 16세기 영국의 극작자 셰익스피어를 합쳐 세계 4대 비극작자로 일컫는다. 아이스킬로스는 디오니소스제 비극 경연 대회에서 열두 차례나 연속 우승을 할 정도로 독보적인 명성을 날렸다. 그가 기원전 458년인 67세에 생애 마지막이자 열세 번째 우승을 거머쥐게 한 최고의 걸작이 바로 『오레스테이아(Oresteia)』이다.

이 작품에서 전개되는 연이은 비극의 뿌리를 알려면 먼저 아가멤논의 아버지인 아트레우스(Atreus)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저주의 신화를 알아야 한다. 아트레우스 가문의 시조는 제우스(Zeus)의 아들로 알려진 탄탈로스(Tantalus)다. 그는 여러 신들의 총애를 받자 오만해져 불경한 생각으로 신들을 시험하려 했다. 자신의 아들 펠롭스(Pelops)를 죽여 그 살로 음식을 만들어 신들에게 대접했던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신들은 격노했다. 그래서 죽은 펠롭스를 살려낸 후 이 가문에 대대로 저주를 내린다. 이후 이 가문에는 탄탈로스부터 오레스테스까지 무려 5대에 걸쳐 살인과 간통, 근친상간 등 탐욕과 복수심에 의한 무지한 폭력과 패륜이 이어진다.

먼 선조는 제켜놓고 아가멤논이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된 직접적 동기를 먼저 살펴보자.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트로이아 정벌에 나설 때 순풍을 기원하며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를 희생양으로 바친 것에 분노하여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아가멤논이 전장에 나가있는 동안 아이기스토스(Aegisthus)와 간통을 하고, 아가멤논이 귀환하자 아이기스토스와 공모하여 그를 욕조에서 손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와 왕권을 차지한 후 흉계에 꾸며 어린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레트라(Elektra)를 쫓아낸다. 타국을 방랑하던 아들 오레스테스는 청년이 되어 누이 엘렉트라와 어렵게 상봉한다. 그들은 궁전에 돌아와 힘을 합쳐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칼로 찔러 죽여 복수하게 된다.

이 비극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분노와 복수심이 얼마나 끔찍한 패륜을 만들어 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이스킬로스는 저주의 집요한 굴레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갈등과 대립을 강렬하고 압도적인 내용으로 보여준다. 그 가운데 저자는 이 비극을 통해 당시 그리스 사회와 인간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과연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그리고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준엄하게 묻는 것이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한 후 복수의 여신들에 쫓겨 아테나 신전에서 재판을 받는다. 오레스테스는 아폴론(Apollon) 신탁의 명령에 의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수의 여신들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혈연관계가 아닌 남편 아가멤논을 죽인 것보다,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어머니인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 것이 더 중죄라며 단죄할 것을 주장한다. 아테네 원로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 투표에서 찬반 동수가 나오자 최종 심판관인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언한다.

남편 살해와 모친 살해, 어느 것이 더 무거운 죄일까? 살인의 동기를 놓고 보면 둘 다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원한과 증오, 극도의 배신과 분노가 뒤엉켜 있다. 현대적 관념으로 두 범죄를 비교형량 한다면 모친을 살해한 오레스테스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 두 범죄를 재단하기 위해서는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는 표면적 명분의 뿌리도 살펴야 하고, 그 뒤에 도사린 인간의 복잡한 탐욕과 분노까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아가멤논이 아내와 그 정부에게 살해당한 것은 어쩌면 과거 아가멤논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전 남편을 죽이고 그녀를 빼앗아 아내로 삼은 것의 응보인지도 모른다.  

아이스킬로스는 직접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청중들로 하여금 두 살해 사건에 내재된 다양한 의미를 스스로 추적하게 만들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범죄 동인은 간단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의 전 남편을 죽이고 아가멤논과 자신이 낳은 딸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를 전쟁의 희생양으로 삼은 아가멤논의 비정함에 대한 분노와 아가멤논이 귀환하면서 전리품으로 트로이아의 공주 카산드라를 첩으로 데려온 데 대한 질투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와의 간통이 들통 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왕의 부재 중에 자신과 아이기스토스가 대리하던 왕권의 절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이 겹겹으로 얽혀 남편 살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치달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보면, 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에 대한 애틋한 모정과 사무치는 분노는 그 밑바닥에 흐르는 인간 본성의 추악한 욕망을 감춘 위장된 명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폴론 신탁의 명령에 의해 모친을 살해했다는 오레스테스의 죄악의 동기 역시, 오로지 아버지 살해에 대한 분노의 응징으로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폴론은 그리스인에게 ‘합리적 이성’의 상징이다. 그가 왜 오레스테스에게 모친 살해를 교사했을까? 이는 아폴론이 가정과 국가의 수호자인 제우스의 아들로서 부권 수호를 최고의 선으로 여겼기 때문은 아닐까? 오레스테스는 부친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에 대해 배신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천륜을 거슬러 어머니를 죽이려는 자신의 비정한 모습에 몸서리치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어머니를 타락시키고 나라의 권력을 찬탈했던 아이기스토스에 대한 분노 또한 극에 달하지 않았을까?

오레스테스에게 이 둘을 처단함으로써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아르고스의 왕권을 되찾으려는 이기적 탐욕 또한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만약 아이기스토스만 처단하고 어머니를 살려두었을 때, 끊임없이 맴돌 아버지를 살해했던 그 참혹한 연상을 스스로 이겨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을까? 

동생 오레스테스와 공모하여 어머니를 살해하는 엘렉트라의 범죄 동기는 어떠했을까? 그녀  역시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오히려 어머니를 지독하게 증오하게 만들어 모친 살해라는 극단의 죄악을 낳고 말았던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가 주창한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의 삐뚤어진 모습 그대로이다.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어머니에게 쫓겨나 힘겨운 삶을 이어가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키웠으리라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이들이 저지른 천륜을 어기는 죄악을 우리는 쉽게 용서하기 어렵다.

물론 작품 속에서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만들어내는 부모 자식 간의 저주와 죄악의 양태는 모두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따라서 비현실적인 듯하지만  인간 사회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들이 뿜어내는 정당한 분노와 인간적 탐욕이 복잡하게 얽혀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도 죄악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들 그 자체가 비극이다.    

어떻든 아테나가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언한 것은 가정과 국가의 존립 근거를 더 중시했던 당시의 부권중심 통치 질서의 이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즉 기원전 2000년 즈음까지 존속하던 모계중심적 사회가 부계중심적 사회로 바뀌고 남성 중심적 사회 환경이 강화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생성된 새로운 정의관(正義觀)을 대변한 것은 아닐까?

여기에 덧붙여 아이스킬로스의 위대한 작가적 상상력이 창의적으로 발휘된다. 인간의 얽히고설킨 연이은 죄악으로 파국이 고조되다가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대목들이 그렇다. 아테나는 심판 이후 승복하지 않으려는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하여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마음을 바꾸게 한다. 또 오레스테스를 정화시키는 은총을 내리고 아테네에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게 하는 대목은 더 이상 복수의 고리를 끊고 화해로 마무리하는 것으로써 전형적인 비극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선사한다.  

아이스킬로스는 오레스테스 신화를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덧붙여 인간의 본성과 정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써 아테네 도시국가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통해 인간의 행복과 불행, 죄와 벌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신의 최종적 판단과 의지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런 가운데 당시의 부권중심적 정의관과 국가관을 은근하게 드러내려 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이 비극적 이야기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에게 부딪치게 될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원초적 감성과 행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08).
[박경귀]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