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59)-문(文)으로 적을 이기는 문벌(文伐)의 계책
여상(생몰 미상)  『육도』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육도>는 전국시대의 말기인 3~4세기경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역대 병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병서 가운데 하나다. 주나라의 건국공신인 태공망 여상(呂尙)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강태공'이 바로 이 사람이다. 하지만 강태공이 직접 지었다기보다 무명인이 기존의 병서를 참조해 <육도>를 편제한 뒤 태공망 여상의 이름을 빌어 세상에 유포한 것으로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도(韜)'는 원래 활집이나 칼전대를 말한다. 여기서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도'는 바로 병법의 비결을 의미한다. 이 책은 <문도(文韜)>, <무도(武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표도(豹韜)>, <견도(犬韜)> 등 6권 60편으로 구성되었다. 주문왕 및 그의 아들 주무왕과 여상 사이에 하문과 응답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육도>는 다른 병서가 군사 전략에 치중하고 있는데 반해, 치세와 정치 차원의 전쟁인 정전(政戰)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전법과 전술을 넘어 군주의 치국의 방략을 제시하고 있다. <문도>편이 가장 먼저 나온 것도 이 같은 강조를 확인하게 한다. 

<문도>에서 주문왕이 민심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묻자, 여상은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만민의 천하입니다. 천하의 이득을 천하 만민과 함께 나누려는 군주는 천하를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이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여상은 군신의 도리를 지키고, 국가의 흥망의 이치를 기억하며, 농공상(農工商)을 진흥시킬 것을 군주에게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상은 군주가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정사를 펼칠 때 백성이 편안하다는 '무위지치(無爲之治)'의 통치철학을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현자를 발탁하고 간사하며 해로운 신하를 멀리하는 기준으로 육적(六賊)과 칠해(七害)를 제시했다. 또한 신상필벌을 명확히 하고 병권을 확실하게 행사할 것을 강조했다. 나아가 무력이 아닌 문(文)으로 적을 치는 12가지 문벌(文伐)의 계책을 제시했다.

몇 가지만 들어보자. 적국의 신하와 군주 사이를 이간한다, 적국에 간신을 양성해 군주를 미혹시킨다, 적국의 대신을 뇌물로 매수해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조종한다, 적국의 군주를 미화시켜 교만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써서 스스로 패망하게 만든다 등의 계책이다.

한마디로 문벌의 핵심은 이간 및 교란책이다. 이는 <손자병법>의 부전승(不戰勝)의 취지와 통한다. 군주에게 군대의 통솔 및 병법의 구사에 앞서 전쟁을 바라보는 기본 철학을 익힐 것을 권고한 셈이다. 12가지 계책 중 우리가 대적하고 있는 북한에게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몇몇 대목이 상기된다. 북한이 우리 사회의 주요 세력을 부추겨 끊임없이 남남갈등을 야기하는 공작을 벌이는 것도 그런 예다.   

<육도>가 기존에 전해지던 병서의 내용을 취합 정리한 듯 많은 내용이 여러 병서의 내용과 중첩되는 부분도 많다. 일벌백계와 솔선수범, 비밀엄수를 강조하고, 임기응변을 실천하며 기습 작전 등 적을 혼란시키는 다양한 기병술(欺兵術)을 제시하는 내용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육율오음(六律五音)의 이치를 응용하여 적의 정황을 파악하는 원리를 제시하는 부분이나, 전쟁의 상황에 따라 사용할 다양한 무기의 종류와 수량, 사용방법 등에 대해 기술한 내용 등은 다른 병서에 보이지 않는 독창적 부분이다.

육율오음의 이치를 활용하는 방법은 적군의 강약과 성쇠 등의 정황을 파악해 각각에 맞는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각(角)의 소리가 들려오면 각은 목(木)이므로 상극의 원리에 따라 목을 이길 수 있는 금(金), 즉 금의 신인 백호(白虎)의 방위와 시일에 맞추어 적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차와 기병의 활용법, 병사들의 다양한 속성과 역량에 따른 특수부대의 편성 운영 방법도 독특하다. 기병전에서 승리하는 10가지 길인 십승(十勝)과 패하는 9가지 길인 구패(九敗)를 제시하고 10종류의 특수부대 편성안을 소개한 것이 그 구체적인 예다. 

<육도>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에 앞서 국가 경영의 철학과 군주의 도리와 신하를 다루는 용인술을 먼저 제시한다. 이로써 여상은 군사 부문과 정치적 문제를 같은 차원에서 균형 있게 접근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이는 곧 정군합일(政軍合一) 사상이다. 따라서 군의 통수권자이자 행정부의 수장인 현대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은 물론 기업 경영의 리더들이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 『육도(六韜)』, 신동준 역주, 역사의 아침(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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