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국회 인사청문회 이념 대격전 예고…통과·낙마따라 문재인 정부 국정동력 달라져
   
▲ 조우석 주필
새 정부 특유의 전광석화 인사 중 유독 개운치 않았던 게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지명 문제였다. 그가 과연 헌법질서 수호의 적임자가 맞을까? 국민정서에 딱 맞는 인물은 아닌데 왜 정부는 김이수 카드를 저렇게 밀어붙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전 기자회견을 통해 이 인사를 직접 발표했는데, 그만큼 자신과 새 정부의 의지를 실었다.

이어 왜 그를 지명했는지 이유를 25일 다시 공개했다. 그게 국회에 제출한 임명동의안이다. 이에 따르면 김이수를 새 헌재 소장으로 임명하려는 이유는 그가 2014년 통진당 해산 건에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에서도 소수의견을 낸 대목이다.

굳이 이 둘을 꼽은 것 자체가 임명권자의 국정철학을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이에 덧붙인 대통령의 해석도 예사롭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국가권력 남용을 경계하고 국민 기본권을 존중하는" 자세라는 평가다. 바꿔 말하면 전 정부의 통진당 해산은 국가권력 남용에 불과하니 명백한 잘못이란 얘기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도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정책의지를 강력하게 암시한 셈이다.

문 대통령과 김이수는 이념적으로 하나?

단 이런 임명동의안이 국민정서와 따로 놀 것을 우려했는지 임명동의안은 김이수가 국가보안법을 존치해야 한다고 했던 옛 판결 대목을 환기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그가 지나치게 좌편향된 인물만은 아니니까 너무 큰 걱정은 말라는 메시시를 뒤섞은 임명동의안의 요지다.

자 여기까지다. 달리 말하면 문 대통령과 김이수의 국정철학은 하나이며, 때문에 좀 무리해서라도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여러 가지를 감안해 볼 때 김이수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장은 만만치 않은 이념의 격전장을 예고하고 있고, 국가정체성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때문에 김이수의 인사청문회 통과는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며, 노무현 정부 시절 낙마했던 헌재 소장 후보자 전효숙의 처지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2006년 전효숙의 낙마는 당시 시끄러웠던 노무현 코드인사의 좌절을 알렸다면, 이번 예상되는 파장은 그 이상이다.

   
▲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왜? 전효숙의 경우 이념 자체가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 당시 야당은 절차를 문제 삼아 그를 끌어내렸다. 노무현이 새 소장의 6년 임기 보장을 위해 재판관을 사직시킨 뒤 지명하는 꼼수를 뒀다. 야당은 이걸 파고들었다. "헌재 소장은 재판관 중 임명한다" 헌법 조항을 근거 삼아 재판관 사직으로 이미 민간인 신분이 된 전효숙은 무자격자라고 공격했는데, 그게 먹혔다.

또 전효숙이 낙마한 2006년은 노무현 정부 중후반인데 비해 김이수는 임기 초다. 그의 인사청문회 통과-낙마에 따라 문재인 정부가 국정동력의 채비를 갖추느냐, 헝클어지느냐가 가늠될 듯하다. 당장 자유한국당이 23일 김이수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부터 심상치 않은 전운을 예고한다.

새 헌재 소장이 대한민국 파괴- 헌법 파괴를 겨냥했던 통진당을 합헌이라고 판결했던 사람이 될 순 없다는 논리인데, 이제 강 대 강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백 번 양보해 그가 헌재 재판관 9명 중 한 명일 수는 있다 해도 헌재의 수장(首長)에 오를 순 없다는 논리다.

우파 시민단체도 벼르고 있다. 비서실장 임종석, 민정수석 조국의 포석부터 무리가 분명하지만, 그건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다. 운동권 NL(전대협의 임종석)과 PD(사노맹의 조국) 출신을 양쪽에 거느린 모양새가 걸리지만, 일단 양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이수는 국민정서에 다분히 어긋나다며 그들은 아스팔트 장외투쟁을 벼른다.

김이수 낙마 땐 대통령도 상처

그렇다면 김이수는 어떤 위인일까? 판단의 근거는 통진당 해산 때 그가 낸 소수의견이다. 이게 분량이 엄청 나서 A4용지로 120장 분량인데, 헌재 결정문(보통 단행본 분량임)의 절반에 육박한다. 분량도 만만치 않지만, 다시 읽어 보니 정치-법률적 확신이 대단하다. 그 점이 당시 위헌결정을 내린 소장 박한철, 재판관 이정미-강일원 등과 영판 다르다.

박한철-이정미-강일원 등이 범(汎)자유주의 신봉자로 분류된다. 반면 통진당을 두고 "우리의 존립과 생존 기반을 파괴하는 대역(大逆)행위"를 했다며 판결문 전체 흐름보다 강경한 견해('보충의견' 형태로 판결문에 삽입됨)를 낸 안창호-조용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력 지지하는 확신형에 속한다. 김이수는 이 둘에 비해 훨씬 왼쪽으로 분류된다.

한국사회 정당의 이념지형 구분상으로는 더불어민주당과 통진당 사이 쯤에 걸쳐있다는 게 필자인 내 판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청구인(통진당)의 목소리를 우리 정치적 공론의 장에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참된 정신"이라고 그는 판결문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새삼 밝히지만, 김이수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느냐 마느냐, 그게 관건이다. 새 정부 들어 여야 갈등, 이념 분쟁의 첫 계기라서 피차 물러설 수 없다. 또 김이수의 낙마 때 후보자 김이수는 물론 임명권자 대통령까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유는 자명하다. 김이수가 대통령과 이념적 동질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인데, 어쩌면 문재인 정부 성공적 출범의 사실상 흐름을 좌우하는 시금석으로 전망된다. 한편 김이수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6월 임시국회에서 열리게 되며, 구체적인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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