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년 전 가진 독대에 관해 기재한 '안종범 수첩'이 이 부회장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스모킹건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안종범 수첩을 기재내용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정황증거로 채택했으나 진술 증거로서의 직접적인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간접증거로서의 '증명력'을 두고 특검과 삼성 측은 치열하게 다툴 전망이다.

특검은 수첩이 강력한 간접증거로 확인되면 공소사실 입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며, 삼성 측 변호인단은 독대에서의 대화내용을 직접 증명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아 부정청탁 및 대가성 뇌물 제공을 명확히 입증하기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여러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쓴 수첩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느냐다. 

재판에서 동일한 내용의 수첩 단어들을 두고 특검은 정확성과 신뢰도를 강조하여 증명력을 높이는데 주력하며, 삼성 측은 단어의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모호성을 들어 신빙성을 반박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공판에서도 특검과 변호인단이 메모를 보여주며 안 전 수석에게 그 뜻을 묻는 질문이 수차례 반복됐다.

가령 수첩에 기재된 단어 중 '엘리엇'이라고 적힌 경우가 그렇다.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엘리엇으로부터 공격받던 사태를 언급하며 이 부회장을 격려한 것인지 이 부회장이 먼저 대통령에게 이를 언급하며 청탁을 한 것인지 혹은 대통령이 궁금한 점을 물어본 것인지 향후 재판 과정에서 짚어봐야 할 정황이다.

안 전 수석은 증인신문 자리에서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이 전화로 불러준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대통령이 무슨 뜻으로 불러주는지 모르는 말이 많았고 나도 아직 그 뜻을 이해 못했다"며 "삼성승계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과 관련해 삼성을 도우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 안종범 수첩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스모킹건으로 떠올랐다./사진=연합뉴스


현재로선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을 정황증거로 채택한 것이 특검과 삼성 중 누구에게 더 유리해졌는지 예단하기 힘들고 간접증거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앞서 삼성 측은 증거수집절차에 문제가 있어 수첩을 증거로 채택해선 안된다고 주장했으나 이 부회장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합의27부는 이를 정황증거로 채택했고, 최순실 직권남용을 심리하는 22부 또한 정황증거로 인정한 상태다.

특검은 이번 증거 채택에 대해 "재판부가 핵심적인 간접증거를 인정한 것"이라며 "향후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하겠다"며 자신했고, 삼성 측은 "(특검의 주장에는) 실제 있었던 일 외에 추가로 다른 정황이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법조계는 안종범 수첩에 대한 정황증거 채택이 특검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했지만 공소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검은 지금껏 이어진 재판에서 당초의 계획과 달리 많은 수의 증인을 불러 신문했지만 이에 대해 증명하지 못했다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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