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열, '독전'서 버려진 조직원 락 역 맡아 조진웅과 호흡
"촬영하며 울적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 좋은 경험 됐어요"
"애드리브 없는 연기 처음… 이해영 감독 글솜씨에 반했죠"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이 차기작에서 아쉬운 성적을 거두는 현상에 '응답하라의 저주'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응답하라 1988' 이후 류준열의 행보를 보면 저주는커녕 축복이라 할 만큼 탄탄대로다. '더 킹'부터 '침묵', '택시운전사', '리틀 포레스트'까지, 모두 류준열을 위해 준비된 레드카펫 같다.

불과 2년 새 10개의 작품에서 타이틀롤을 도맡은 류준열. 단기간 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배우로서 큰 부담감일 테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라는 그는 일손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찾아 함께했고, 소처럼 묵묵히 열일하며 동료들과 수확의 기쁨을 나눴다. 성실하고 똑똑한 배우다. 이번 '독전'에서는 묘한 매력의 마스크와 독보적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범죄극. 마약 조직에게 버려진 조직원 락으로 분한 류준열은 몇 마디 없는 대사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극을 이끈다.

"'독전'을 촬영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감정만으로도 관객들에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거에요.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땐 고민이 됐어요. 그동안 제가 가진 깜냥으로 안전하게 인물을 만들어왔다면 이번 작품은 분명 달랐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인물을 만들어갈지 많이 고민했어요."


   
▲ '독전'의 배우 류준열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독전'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준열은 평단의 연기 호평에 엄살부터 떨었다. 새롭게 도전하는 캐릭터에 겁도 나고 어렵기도 했다는 류준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재미를 발견했단다. 락의 감정에 충실할수록 이해영 감독의 우렁찬 'OK' 소리가 들렸고, 조진웅과의 숨 막히는 독대 신에선 눈빛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연기를 하고 나서 역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번 작품에선 괜시리 울적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촬영 내내 농담도 많이 하고, 많이 웃고 떠들었는데도 웃고 돌아서면 씁쓸함이 남더라고요.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컷을 찍고 나선 조진웅 선배와 포옹을 했는데, 단순히 '고생하셨습니다' 이런 의미보단 '락과 원호가 잘 왔다 갔다', '감정을 잘 마무리한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받은 것 같아요. 그 때 비로소 락이 누군지 알 것 같더라고요."


   
▲ '독전'의 배우 류준열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순발력과 유연성이 무기인 류준열이지만 '독전'에서만큼은 정공법을 택했다. 그래서 더 락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원래 애드리브도 하고 조사나 어미를 많이 바꾸는 편이에요. 근데 이 영화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이토록 대본에 충실해서 연기한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근데 또 돌아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게, 이해영 감독님이 작가 출신이잖아요. 워낙 글솜씨가 좋다 보니 재밌는 대사나 여러 의미를 관통하는 대사가 많았어요. 그래서 참 좋았어요."

류준열은 마약 조직을 쫓는 형사 원호(조진웅)와의 공조를 통해 이성적이고 세련된 표정도, 버려진 이의 애처로운 얼굴도 선보인다. "7cm 앞 류준열의 눈은 대단했다"며 '류준열 다중인격설'까지 입에 담은 조진웅의 극찬에 류준열은 조진웅으로부터 연기를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고 화답했다.

"굉장히 열정적인 조진웅 선배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첫 리딩 때 의견을 주고받는데, 제가 생각해온 몇 자 안 되는 것들은 꺼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준비를 해오셨더라고요. 나중에 다이어트를 마친 선배와 현장에서 만났는데, 똑바로 쳐다보진 못하고 거울 너머로 한참을 봤어요. 이런 마스크가 있으셨나. 전혀 다른 사람이 돼서 오셔서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많은 노력을 하셨구나' 생각이 들었죠."

소문난 애주가 조진웅은 다이어트를 위해 회식 자리에서도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다고. 류준열은 "'너희 즐겨라. 난 영화 끝날 때까지 절대 안 먹겠다'고 하시더라"라며 "조진웅 선배 에너지의 원동력은 작품을 즐기는 것이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고, 꼭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 '독전'의 배우 류준열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조진웅, 故 김주혁, 김성령, 차승원 등 선 굵은 선배들 사이에서 류준열은 가장 깊이감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하는 순간이 고통스럽다는 류준열의 말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제 연기는 잘 모니터하지 않는 편이에요. 모니터하는 순간이 고통스럽고 부끄러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연습을 안 해본 건 아닌데 하루 이틀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연습할 수도 없는 거라서. 저도 제 멋에 사는 사람인데 연기를 보면 쑥스럽더라고요. 제 영화를 편하게 즐겁게 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워요."

자신의 출연작 중 유일하게 즐기며 본 작품은 영화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소셜포비아'(2015)란다. 멋모르고 선보인 첫 연기를 다시 재연할 자신이 없다는 류준열은 알수록 어려운 작품 세계와 입지를 쌓으며 생긴 책임감에 대해 느끼고 있었다.


   
▲ '독전'의 배우 류준열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짧은 기간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에도 연신 고개를 숙이는 건 반짝 스타가 아닌 오랜 연기자로 남고 싶은 마음 때문일 테다. 너스레만 늘었다는 친구들의 말처럼 류준열은 이러한 고민들에 영화 홍보 멘트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해영 감독님이 언론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와서 '어땠어?'라고 하길래 그럭저럭 봤다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서운해하시더라고요. 전 제가 많이 나와서 집중이 안 되니까 부끄러워서 못 봤다는 얘기였거든요. 그 뒤에 붙인 말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였는데, 전 그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몰입도가 높다는 뜻이니까요. 부끄러움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기 때문에 관객분들도 즐겁게 보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독전'의 배우 류준열이 미디어펜과 만났다.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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