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R&D 성장동력 약화 우려 확대
“시간 되면 기계 끄고 집에 가야 하나…”
[미디어펜=조한진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재계가 연구개발(R&D) 경쟁력 확보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근로 시스템 적용이 자칫 4차 산업혁명 기술 경쟁력을 더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각 기업들은 7월1일부터 시행되는 주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유연근무’를 도입하는 등 근로 시스템을 속속 정비하고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근무시간이 강제되면서 R&D 부문에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을 도입해도 제품 개발 시간이 길어지고, 과제 수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 홍모모델이 인공지는 플랫폼이 적용된 가전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그러나 기업들은 현실을 반영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자세를 낮추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하라면) 일단 해야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냐”라며 “튀는 행동으로 찍혀봐야 결국 기업만 손해 아니냐”고 말했다.

R&D 현장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현실이 잘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들은 앞으로 출입카드로 출퇴근 시간을 계산 하는 등 정부가 정한 근로시간을 철저하게 준수한다는 방침이다. 기밀유지가 필수적인 R&D를 회사에서 밖에서 진행할 수 없는 기업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 대기업 연구원은 “연구 과제를 밖으로 들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제품 테스트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기계를 끄고 가야하는지 의문”이 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현재 3개월까지 허용돼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만이라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앞서 1년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늘려달라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상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은 현행 2주 또는 3개월로 제한되고 있다.

이에 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은 단위 기간을 최대 1년까지 적용하고 있다. 일본도 노사합의라는 전제가 붙지만 6개월 이상을 허용하는 상황이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의 일괄 적용이 다가오면서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기술력 확보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 경쟁국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 '자율주행 기반 대중교통시스템' 실증과제 /사진=SK텔레콤

현재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기술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 4차 산업혁명 12개 분야(바이오·사물인터넷·우주기술·3D프린팅·드론·블록체인·신재생에너지·첨단소재·로봇·인공지능·증강현실·컴퓨팅기술) 기술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중국(108), 일본(117), 미국 (130)에 모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후에도 중국(113), 일본(113), 미국(123)에 비교 열위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일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 기술 발전을 통한 미래성장 동력 창출이 절실한 상황에서 대기업의 R&D 성장동력이 약화되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업간 융합·협업 활성화, 전문 인력 양성 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R&D 특성상 근무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52시간 근무가 되면 R&D 프로세스에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R&D는 장시간 집중을 요하는 부분이 많고, 일괄적으로 연구 업무를 나누기 쉽지 않다. 규제를 하면 미래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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