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문까지 작성해 실행의지 뒷받침…국회의 계엄해제 방지 대책은 위헌적
[미디어펜=김규태 기자]청와대가 지난 20일 발표한 기무사의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놓고 사실상 쿠데타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문건이라는 의혹과 구체적 실행 합의나 예하부대 전파가 확인되지 않아 계엄에 대한 세부 검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교차하고 있다.

청와대가 문건의 세부자료 내용을 공개한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문건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의 난타전이 벌어졌다.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기존 법에 전혀 맞지 않은 형태의 계엄을 계획했다. 쿠데타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절차"라고 주장했고 박주민 의원이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을 무력화시킨 내용이 더 놀랍다"고 밝힌 반면,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하락할 즈음 쿠데타 운운하는 것이 적폐청산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닌가"라면서 청와대의 문건 공개 시점을 두고 반박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세부자료 발표를 통해 "모든 내용은 탄핵이 기각됐을 경우를 가정했던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에서 통상의 절차에 따라 2년마다 수립되는 계엄실무편람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고 전했다.

67쪽 분량의 세부자료에 대해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우리 부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임무하고는 차이가 있다고 최초부터 판단했다"며 "결재 칸과 최종 결재권자가 누구인지 없었다. 수사를 통해 확인돼야 할 사안이지만 사령관 이상 보고된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기무사 문건 세부자료와 관련해 '국회의 계엄해제 권한 방지대책' 내용은 위헌적이라고 평가하면서 포고문까지 사전 작성한 것은 당시 기무사의 계엄령 실행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관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문건 내용이 현실화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쿠데타 준비가 아니다"라며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세부자료는 탄핵이 기각되는 경우를 상정해서 박근혜 정부가 계엄을 통해 강력한 통치권한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계엄 선포 주체가 대통령이고 군부가 이를 받든다는 점에서 군 일각에서 대통령 군통수권에 반기를 드는 쿠데타 개념과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부자료에 완전한 계엄 실행계획과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당시 '만약을 위한 사전대비'나 기무사령관의 독단적인 보고로 제기된 '의혹'이라는 수준은 벗어날 수 있다"며 "다만 2017년 3월 당시 20대 여소야대 국회 상황을 고려해 입법부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한 대책은 명백히 위헌적"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계엄사령부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활동 위반 시 구속수사 방침을 발표한 후 야당 의원들을 집중적으로 검거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정족수에 미달하도록 만드는 계획은 지난해 여소야대 상황을 고려한 쿠데타적 발상"이라며 "내란 예비음모라는 여권의 주장은 너무 나갔다고 보이지만 기무사의 직무 범위를 뛰어넘은 범죄 모의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합동참모본부가 아니라 기무사가 문건 작성을 비밀리에 주도한 것도 문제"라며 "일각에서는 탄핵 기각에 따라 시위가 격렬해질 경우 이에 대한 통제 상황을 가정해 만든 검토 보고서라고 보고 있지만, 계엄령 선포 후 발표할 담화문까지 작성하고 통상적인 계엄실무편람 수준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전체 내용이 더 공개되고 규명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다른 법조계 인사는 "이번 세부자료 공개로 기무사의 내란 음모 혐의가 더 짙어졌다고 볼 수 있다"며 "탄핵심판 기각을 전제로 문건이 작성됐다고 하지만, 1979년 10.26이나 1980년 5.18 사태 당시 담화문과 함께 2017년 3월에 공포하려 했던 담화문이 나란히 실려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으로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아직 세부자료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실행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우선 국방부와 기무사를 제외한 실제 증원대상 예하부대까지 전파됐는지 불확실할 뿐더러, 어떤 목적과 누구의 지시에 따라 문건이 작성됐고 문건 내용이 실행 단계까지 도달했는지 규명되지 않았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국방부 특별수사단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해놓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며 "특별수사단이 얼만큼 투명하고 명백하게 문건 작성의 실체를 규명할지에 달렸다"고 관측했다.

문 대통령이 문건 세부자료 공개를 전격 지시하면서 기무사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가 한층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바른미래당은 "특별수사단이 발표해야 할 문건을 청와대가 나서서 발표한 것은 최근 최저임금 문제로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술수"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특별수사단은 현재 계엄 관련 추가 문건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무사 이외의 부대에서 관련 문건들이 추가로 나와, 기무사 계엄 세부계획이 일선 부대로 하달되어 사실상 실행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 이를지 주목된다.

   
▲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기각될 경우를 가정하고, 계엄을 통해 언론, 국가정보원, 국회를 장악하겠다는 문건 세부자료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자료사진=국군기무사령부 홈페이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