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항 4개월만 블라디보스톡 취항 ‘공격경영’
270명 직원이름 외우는 사장님...별명은 ‘볼매’
"조종사부터 지상조업까지 함께 워크숍가는 회사"
[미디어펜=(광주)최주영 기자]엄일석 에어필립 회장은 임직원들과 ‘주먹인사(브로피스트·주먹과 주먹을 맞부딪치는 걸로 하는 인사의 한 방법)’ 하기를 좋아한다. 부담스럽지 않게 친근함을 표시하려는 그만의 특별한 소통법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악의를 갖고 덤벼드는 사람도 금세 무장해제시킬 듯한 편안함은 그가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사람 좋아하는 천성까지 타고났으니 곁에는 늘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에어필립이 강조하는 사업 철학 또한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지난 9일 광주 상무지구에 위치한 필립그룹 13층 접견실에서 엄일석 에어필립 회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엄 회장은 "에어필립의 성장비결은 직원을 동료로 생각하는 기업문화"라고 강조했다. /사진=에어필립 제공


◇1만 번째 탑승객에게 K사 준중형차 경품... 파격마케팅으로 인지도 제고

“당장 저비용항공사(LCC)로 전환한다고 해도 에어필립의 운항능력과 인프라는 이미 충분하다.” 

지난 9일 광주 에어필립 사무실에서 만난 엄 회장의 일성(一聲)이다. 에어필립은 이날 국토교통부에 국제항공운송사업면허(ACL)를 신청하고 올해 3번째 항공기를 도입했다. 에어필립은 국토부 면허를 신청한 항공사(플라이강원‧에어로케이‧에어프레미아‧에어필립) 가운데 유일하게 항공기 운항 경험과 능력을 보유한 항공사다. 

지난 6월 30일 처음 취항한 지 75일 만에 1만 번째 탑승객을 맞았고 취항 4개월만에 첫 국제선인 무안~블라디보스톡 노선을 개설했다. 항공업계에서 비약적인 발전이다. 2017년 3월 출범후 1년만에 항공기(ERJ-145기종) 4대를 들여왔다. 내달 일본 오키나와 취항도 앞두고 있다. 국적사가 가장 많이 보유한 737-800항공기는 면허 취득 이후 순차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엄 회장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4호기까지 도입을 마치면 5호기부터는 189석 규모 737-800항공기가 도입될 것”이라며 “‘너무 밀어붙이는것 아니냐’고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신생 항공사일수록 기재도입과 노선취항 속도가 빨라야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웃어보였다.

초기 항공업계에 진출한 에어필립을 두고 업계 반응은 ‘반신반의’ 였다. 그동안 국내에 50인승 소형항공기에 프리미엄 서비스를 접목한 항공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만 번 째 탑승객에 자동차 업체 K사 준중형차를 경품으로 내놓는 등 '파격마케팅'은 이미 정평 났다. 그런가 하면 항공기 동체를 버건디(청색기미가 있는 적색) 컬러로 뒤덮어 경쟁사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 지난 3월 필립그룹 단체워크숍에서 엄일석 에어필립 회장과 임직원들이 제트보트를 탑승중인 모습. /사진=에어필립 제공


◇조종사 90%가 737-800 조종면허 취득

에어필립에는 50명 이상의 조종사가 근무중이다. 대형항공사에서 평균 2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우수한 인력들을 엄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하러 뛰어다녔다. 이중 90%가 LCC 대표기종 737-800의 조종면허를 취득한 상태다. 당장 LCC로 업종을 바꿔도 어색하지 않다. 그는 “승객들이 숙련된 기량을 가진 기장들의 조종 실력에 대형항공기보다 더 안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취항하는 무안~인천 노선은 새벽 시간대 경우 전석 예약이 마감됐다. 엄 회장은 “전남 여행객 40만 명중 30만명이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4시간에 걸쳐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새벽 2~3시부터 아침 6시까지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무안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안에 인천에 도착한다면 시간 절약도 되고 불편함도 줄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인천발 국제선 취항 계획은 없냐”는 ‘돌직구’ 질문을 받은 엄 회장은 “무안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인천 출발 국제선에 대해 엄 회장은 “국내 해외여행객 70%가 4시간 이내 단거리 여행을 가는데 무안에서 북경, 일본, 동남아 가는 수요를 잡는 것이 포인트”라고 했다. 오는 2025년 무안을 통과하는 KTX노선이 뚫리기 전 서남권 수요를 공략하겠다는 복안이다.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인터뷰 도중 “보여줄것이 있다”며 뒤쪽 선반으로 가 500페이지 분량의 사진집 몇 권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올 3월 도입한 1호기를 타고 제주도로 워크숍을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이란다. “당시엔 160명(임직원 수)이었는데 지금은 270명으로 늘었네요.” 엄 회장은 사진 속 직원들 얼굴을 가리키면서 한명 한명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 
 
항공사의 경영지원 등 사무직부터 지상조업과 여객운송직이 한 자리에 모인 조합은 기자에게 매우 생경하게 다가왔다. "에어필립의 성장 비결은 ‘문화’다. 실제 이윤보다 사람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과 회장은 상하관계가 아니고 동업자 관계라고 생각한다. 존중받는 직원은 사명감으로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이다."

에어필립은 운송과 지상조업, 고객센터 등 모든 직원이 정직원이다. 엄 회장 스스로 이것이 회사 경쟁력이라고 자부한다. 회사와 직원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 실제 직원들 유니폼부터 모자, 단체행사 의상까지 엄 회장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에어필립 정비사들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유독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 여름 야외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정비사들을 위한 엄 회장의 배려다. 장마철에는 공항 현장근무자에게 헌터 장화도 직접 보급했다. 

   
▲ 필립그룹이 주최한 하모니 페스티벌에서 엄일석 에어필립 회장이 노래를 열창하며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사진=에어필립 제공


◇엄일석 회장 " “‘원래 항공업계는요...’라는 말 제일 싫어해

엄 회장은 또 운송직원(공항카운터 직원)을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운송직원이 가장 최일선에서 승객들을 접하고 있지만 평소 빛을 보지 못하고 묵묵히 일하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늘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공항에 들러 직원과 수시로 ‘하이파이브 인사’를 주고받는 덕분에 광주공항 관계자들 사이에선 엄 회장이 ‘볼매(볼수록 매력있는 사람)’로 통한다. 

에어필립에 늘 ‘파격’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이유에 대해 “항공업 출신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회장은 “‘원래 항공업계는요...’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며 “우리 비행기(2·3호기)에 강렬한 색을 도입한 것도 항공업계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에어필립은 현재 300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확보했고 2022년까지 12대의 기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국제항공운송사업면허를 취득하는 내년에는 큰 기종으로 항공기를 도입할 계획이다.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노선도 취항을 고려하고 있다. 

엄 회장의 사업 방향은 명확하다. LCC 면허를 취득하게 되면 5년 내 이런 경쟁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자신감이다. 그는 “에어필립이 초단기 고속성장할 수 있는 비결은 다른 항공사에는 없는 ‘기업문화’ 때문”이라며 “미래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LCC로의 전환, 다양한 수익구조 창출 등을 실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