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주영 기자]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가 기습적인 2대주주 지위 확보로 경영권 장악 시도에 나서면서 한진그룹이 어떤 경영권 방어책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재계에서는 단기수익만을 추구하는 투기자본의 경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경영권 방어수단을 다양화 해야 한다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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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진빌딩. /사진=연합뉴스 |
◇반복되는 투기자본 공습…이번엔 한진그룹이 먹잇감
19일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KCGI는 최근 한진칼 지분 매입과 관련, “경영권을 장악할 의도로 지분을 확보 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앞서 KCGI 자회사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14일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식 9%를 매입, 조양호 회장에 이어 2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이에 재계에서는 KCGI가 한진그룹 경영권을 노리고 있다는 시각이 제기됐었다.
이에 KCGI측 구현주 변호사는 “언론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한진칼 경영권에 대한 위협보다는,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에 관한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며 “단기 이익실현을 지양하고, 장기적 회사 발전 등에 따른 직원, 주주, 고객의 이익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업계는 KCGI가 한진칼의 이사진을 교체하며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과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석태수 대표이사 등 3명의 상근임원과 이석우, 조현덕, 김종준 등 3명의 사외이사, 윤종호 상근감사 등 7명의 이사진 중 석태수 대표 등 3명의 이사와 윤종호 감사의 임기가 내년 3월 17일 끝난다.
다만 KCGI가 '경영권 참여가 목적이 아님'을 밝혔고 우호지분 확보 가능성은 아직까지 관찰되지 않은 점에서 지나친 우려라는 반응도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이 28.95%이고, KCGI에 5% 이상 의결권이 모두 위임된다고 하더라도 지분율이 26.18%로 낮은데다, 국내 기관과의 결합 가능성을 무조건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주요 기관투자자 중 한 곳이나 소액주주들을 끌어들이는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주주들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의결권 대결이 이뤄지면 국민연금, 크레디트스위스 등을 자기편으로 설득하는 게 양측 모두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진그룹은 이와 관련 “언급할 내용이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현재 계열사 위주로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경영권 방지책 마련 시급…재계 한 목소리
재계는 한진그룹에 대한 사모펀드의 경영권 위협은 예견된 일이었다면서도 기업에게만 경영권 방어를 전담시키는 것은 문제라며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동시에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액주주 권리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친 경영권 간섭은 오히려 기업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된 행동주의 투자자는 현대차그룹을 겨냥해 배당 확대, 회사 분할·합병 등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최근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반대하자, 현대차그룹이 이를 보완하겠다며 개편 작업을 중단한 바 있다.
재계는 또 그레이스홀딩스 등 ‘한국형 엘리엇’이 생겨난 이유로 정부가 행동주의 펀드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한 점이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난 7월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고, 금융위원회는 국내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분 규제를 완화했다.
현재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인 '차등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도입을 골자로 한 다수의 안들이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기업이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은 3%로 제한돼 기업의 의사결정권이 과도하게 제약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해외와 달리 국내는 회사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좌우될 수 있는 구조”라고 평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해외 투기자본의 폐해를 차단할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모니터링만 할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소버린이 SK그룹을 공격했을 때 감사위원 선임 건을 두고 의결권 제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며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경영권 방어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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