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주차장 등 기본 시설 부족·카드결제 거부…'백태'
   
▲ 박규빈 산업부 기자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전통시장의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달 24일, 중기부가 추가경정예산을 29억5000만원을 편성해 전통시장에 공기청정기를 보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6일엔 2130억원의 무지막지한 규모의 예산을 전통시장 살리기에 쏟아붓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전국 286곳에 산술평균 7억4476만원씩 뿌리는 셈이다.

사실 정부가 전통시장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2006년에 전통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도 발행하는 등 1473억원을 썼고, 매년 예산 규모가 증가해 2016년엔 무려 3609억원을 썼다. 

이만큼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했는데 전통시장 상인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졌을까. 전국 전통시장 총 매출액은 2006년 24조9000억원에서 2016년 21조 8000억원으로 되레 하락세를 보였다.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이 지난 11년 간 160곳이 사라지고, 서울 남대문시장의 점포수는 2017년 기준 5493개로 2008년 대비 절반 가량 줄었다.

3년이 지난 현재는 점포 수와 매출액 모두 더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정도면 가히 경쟁력 없는 시장에 정부 지원만 바라보는 '세금 좀비'를 양산하는 정부 정책의 실패라 할만 하다.

정치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2012년 3월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됐다. 개정안의 골자는 대형마트 영업시간과 휴업일을 강제로 지정하는 것이었는데, 중소상인들은 유통대기업들과의 상생의 길이 생겼다며 쌍수들고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와 같이 정부와 정치권이 정책적으로 밀어줌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이 살아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전통시장에 간다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드물다. 오히려 휴업일 전날 대형마트는 대폭 할인행사를 하고, 소비자는 그곳으로 몰리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통시장, 왜 몰락의 길을 걷나

전통시장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비단 정부와 정치권의 실책 탓만은 아니다. 생활문화가 바뀜에 따라 마켓 구조의 재편이 완료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과 교통경로를 따라 장터가 생겼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시대까지의 이야기다. 주거공간이 고밀도로 구성된 대단지 아파트가 생겨나고, 교통수단이 발달한 지금은 생활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에 상업지구로 기능하던 전통시장이 설 자리를 잃고 대형마트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전통시장을 몰락케 한 가장 심각한 요인은 전통시장과 시장 상인들이 가진 내적 문제점들이다.

우선 외형상 대형마트와는 다르게 노출된 구조를 갖고 있다. 냉·난방이 되지 않아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장 보기가 대단히 불편하며, 주차공간과 화장실이 부족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기본적인 시설 수준부터 열악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발길을 주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전통시장에 대한 신뢰도의 문제다. 위와 같은 문제로,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식품의 신선함과는 거리가 있어 위생 등 품질과 직결된 이슈가 발생할 여지가 크며, 물건 가격을 제대로 써두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는 때도 생겨날 수 있다.

   
▲ 사진=JTBC 화면 캡쳐


흔히 용산전자상가가 망한 이유로 '용팔이'를 꼽는다. "손님, 맞을래요?"와 같은 불친절한 행태로 손님이 뚝 끊기고 카드 결제와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면 거의 무조건적인 현금 거래를 선호했기 때문인데, 전통시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심지어 한 종편 보도 중엔 "카드 결제가 왜 안 되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한 수산시장 상인은 "자연산이라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황당한 답변을 하는 장면이 담기기도 했다.

이와 같이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편한 점들이 산적해 있는데 개선되지는 않고, 시장 상인들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또한 문제 해결 의지나 자구책 조차 없기 때문에 전통시장을 찾는 발길을 끊는 것이다.

◇광장시장에서 전통시장의 미래를 보다

골목상권 침해 이슈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기부는 프랜차이즈 사업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이사를 참고인으로 지목했다.

백 대표는 국감에서 한 의원이 "TV 프로그램 '골목식당'에서 식당 사업에 뛰어들라고 부추긴다"는 취지의 발언에 "오히려 준비되지 않았으면 하지 말란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음식 장사를 시작한지 20년 넘었는데, 시장 원리에 따라 (선택받지 못한 사업자들은) 도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 대표의 발언은 냉정하지만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어야 시장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종로4가 광장시장은 114년 역사를 간직한 고(古)시장이다. 이곳엔 육회집과 길거리 튀김집이 즐비하다. 그러나 다른 전통시장들과는 달리 광장시장엔 저녁시간마다 소비자들이 줄을 선다. 상인들이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충족시켜 지갑을 열고싶게 만드는 포인트를 만드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쇠퇴해가는 전통시장 상인들이 광장시장에서 지혜를 찾으면 매출 증대에서 상권 부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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