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4개월 국가이성 마비단계, 박근혜대통령 결단내려야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지난 봄 세월호 사고 이후 지금까지 4개월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이 출구 없는 상황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정치권의 무책임 혹은 리더십의 부재 현상이라고 볼 순 없다. 관리 미흡이나 정책 실패와도 차원이 다르다. 그보다 사안이 무겁고 구조적이기 때문인데, 어제 오늘의 정치사회 상황은 미시적 진단의 차원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 위기상황으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는 지금 국가이성의 마비단계로 진입했다는 판단을 피할 수 없다. 국가이성(reason of state)이란 국가가 국가이기 위하여, 그 틀을 유지·강화해가는 데 필요한 공리(公理)이자 행동법칙을 말하는 정치철학의 개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의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 힘과 룰을 총칭한다.

세월호 사고와 그 뒤처리 과정이 직접적인 계기가 돼 이 소중하고 결정적인 국가이성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 지금이다. 단순한 해상 안전사고에 불과한 이 사건이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악마적이고 주술적인 파괴력으로 발전해 불모(不毛)의 여의도 정치를 강타한 데 이어 대한민국 콘트롤타워인 청와대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는 중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엇 때문이고 해법은 무엇일까?

악마적이고 주술적인 파괴력으로 점차 발전중인 세월호 사건

국가이성의 해체 징후는 핵심 사회인프라인 언론의 직무유기 혹은 무책임에서 우선 드러난다. 결정적 사례가 '유민 아빠'로 통칭되는 김영오(47) 씨에 대한 보도 태도다. 광화문광장 단식 농성을 주도하던 그가 11년 전에 이혼 한 뒤 유민 양을 포함한 두 딸을 잘 보살피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인 게 엊그제 주말이었다. 인터넷과 SNS에는 김 씨가 과격 성향의 금속노조 조합원인데, 딸에게 양육비조차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는 의혹이 확산됐다.

이혼한 아빠도 딸을 사랑할 수 있고, 자식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표할 순 있다. 단 면목없는 그가 단식 농성을 주도하며 대통령과 면담을 해야한다며 유가족을 대표하는 순간 모든 게 거짓과 위선의 막장 드라마로 발전한다. 그는 방한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상대로 해 허언(虛言)을 했는데, 그게 대국민사기극임이 새삼 드러났다.

지난 16일 김씨가 광화문 시복 미사에서 교황에게 직접 건넨 편지에도 "(유민이는) 나를 꼭 안고 곁에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뒤에서 안고 아빠, 아빠 부르고 잘 때 팔베개해주던 딸"이라고 적었다. 상대방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조립된 그의 추악한 발언을, 참다 참다 못해 등장한 유민 양 외삼촌의 너무도 생생한 증언과 대조해보라.

   
▲ 유민아빠 김영오는 이혼후 유민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무심한 아빠였던 김영오씨가 마치 극진하게 딸사랑을 한 것처럼 호도하며 '감성단식'을 벌이고 있다. 거짓과 위선,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김영오는 국민들에게 사과부터 하고 자숙해야 한다. 세월호 4개월을 맞아 국가이성이 마비될 위기를 맞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넋나간 여야는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을 뿐이다.저널리즘은 무너졌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싸고 좌파 야당이 반체제 반정부 투쟁물로 악용하고 있다.

'유민 아빠' 김영오는 국민 사과와 함께 자숙하는 게 도리

"다른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하면 이해하겠지만, 김영오씨 당신이 이러면 이해 못 하지. 당신이 유민이한테 뭘 해줬다고. 유민이 아기 때 똥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 없는 사람이. (…) 누나가 너랑 이혼하고 10년 동안 혼자 애 둘 키운 거 알지? 그러는 넌 그동안 뭐 했냐. 1년에 한두 번 보는 게 끝이지."

그동안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일부 언론에선 김씨를 "두 딸을 어렵게 키우던 아빠"로 애써 포장해왔던 이미지가 무너진 것이다. 예상대로다면 세월호 사건을 반정부투쟁으로 끌고 가려는 음험한 세력의 장난은 이쯤에서 수습의 계기가 만들어졌어야 했다. 김영오라는 사람은 더 이상의 스캔들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과와 함께 자숙하는 게 도리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저들의 이중성을 더 드러내고 반정부 투쟁의 동력을 소진시켜야 할 신문과 방송이 이 사안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30 재보선에서 교육감 후보 고승덕과 그의 딸 사이의 시비를 과잉보도하고 폭로하는데 앞장섰던 '하이에나 저널리즘'의 저들이 이번엔 완전히 거꾸로 간다. 이중잣대도 이런 이중잣대가 없다.

게이트 키핑, 어젠더 세팅의 문제를 넘어선 무책임언론의 극치

안타깝다. 7.30 재보선에서 세월호라면 넌더리가 난다는 민심을 제대로 보여줬지만, 이 땅의 신문 방송은 여론과 완전히 따로 가기로 작심한 상황이다. 이점은 조중동과 좌파언론, 그리고 지상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있다. 눈먼 신문방송의 헛발질은 단순한 게이트 키핑이나, 어젠더 세팅 기능의 문제를 넘어선다. 국가이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책임 언론의 극치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망가진 건 언론뿐이 아니라 불모(不毛)의 여의도 정치가 심각한 문제다. 세월호 특별법은 민간인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다는 발상 자체가 위헌(違憲)이고, 포퓰리즘적 발상인데도, 사건 초기부터 새민련과 유가족이 암묵적 합의 아래 이 법안이 만능인양 추진해왔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무책임한 야당과 이성을 잃은 유가족 사이의 이런 행태에 일찌감치 브레이크가 걸었어야 했다.
 

세월호법은 당장 한국정치의 마비를 장기화하고 있는데다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진단대로 "한계상황에 직면했고, 경제성장의 엔진이 꺼져가는 한국경제"의 상황을 악화시킨다. 각종 민생경제법안을 국회가 서둘러야 하는데, 현재로선 길이 안 보인다. 여당은 정치력이 부족하고, 야당은 장외세력에 발목 잡힌 채 급진화하고 있다. 국가이성의 마비현상을, 나라를 말아먹는 무책임을 여야 정치권처럼 여실히 보여주는 집단이 또 있을까?

국가이성의 마비를 재촉한 건 아마도 대통령 자신일 듯

실은 악성 세월호 법에 힘을 실어줬고, 국가이성의 마비를 재촉한 요인은 따로 있는데, 그건 바로 박근혜대통령 자신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영선 새민련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한 달 보름 전 청와대 회동(7월10일)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덜컥 합의하고 말았다.

일이 한 번 더 크게 꼬인 게 그때를 전후해서였는데, 식견 짧고 소신없는 정치인들에게 국가이성의 구현을 요구하는 건 무리일까? 지금 상황은 아주 안 좋다. 무너진 저널리즘, 넋 나간 여야, 무능의 끝자락을 달리는 청와대 앞에서 벌이는 유가족들의 밤샘 농성시위가 며칠 째 거듭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나와라"고 외치고 있는 무법천지인데도 공격하는 사람이나 공격 받는 청와대나 모두 최악이다. 지금 대통령이 당장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며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농성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게 상식이다.

세월호 수습은 여야와 대통령이 결단만 내리면 되는 사안

세월호 수습의 정답은 이미 나왔다. 여야와 대통령이 썩 나서 결단을 내리면 된다. 두 번씩이나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이니 더 이상은 양보가 없다고 선을 그으면 된다. 청와대도 겁에 질린 채 "세월호 법은 입법부 소관이니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못 뒤집는다"고 변명만 반복하지 말고 포괄적 책임을 등에 지고 썩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저들이 망가뜨린 국가이성 회복의 첫걸음이다.
 

이렇게 아무도 손을 대려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이성의 마비, 그 이후'가 불러올 디스토피아의 앞날이 나는 은근히 두렵고 심히 걱정된다. 그런 모종의 두려움은 이 나라의 평균적 국민들이 요즘 들어 부쩍 품고 있는 걸로 나는 가늠하고 있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