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건설사 재개발‧재건축 시공권, 시공사 교체 잇달아
수익성 낮은 지방 작은 현장까지 대형건설사 진출해
   
▲ 김병화 건설부동산부장
[미디어펜=김병화 부동산부장]“해도해도 너무 하네요. 몇 년을 고생하고 이제야 좀 나아지나 싶었는데 빼앗아가네요. 현장에 투입된 인력들은 갈 곳을 잃었고,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도 물거품이 됐습니다.”(A 중견건설사 관계자)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수주시장에서 상도덕이 사라졌다. 중견건설사들이 조합원들과 씨를 뿌리고 가꿔 놓으면 대형건설사들이 무임승차해 수확해 가는 모양새이다. 중견 건설사들은 그야말로 아사 직전이다.

몇해 전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혼탁하긴 했어도 나름의 룰이라는 게 있었다. 서울의 규모가 큰 현장은 대형건설사, 지방의 작은 현장은 중견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하는 식이다.

정비사업의 시공권 확보는 사업주체인 조합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만큼 브랜드 파워와 자금력을 앞세운 대형건설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형건설사는 마음만 먹으면 독식할 수 있지만 과욕을 부리지 않고 중견건설사들의 생로를 열어줬다.

하지만 최근 정비사업 시장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대형건설사들이 지방 소규모 현장까지 무차별적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심지어 대형건설사가 로비와 야합으로 조합을 선동해 중견건설사가 이미 확보한 시공권을 탈취한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중견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해 사업을 추진하고 착공시점에 돌입하면 대형사가 시공권을 빼앗는 식이다.

   
▲ GS건설이 도시정비사업 '클린수주'를 선언하며 지난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서울 종로구 본사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사진=미디어펜


대형건설사의 무임승차는 지난해 두드러졌다. 서울 서대문구 한 재개발조합은 지난해 10월 기존 시공사였던 지방 중견건설사인 B사와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공사 선정에 나선 상태다.

해당 사업장은 최초 시공사가 불투명한 사업성으로 사업추진을 포기하자 2017년 B사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후 B사는 조합에 사업비를 대여하고 사업시행변경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사업진행을 위한 인허가과정을 수행했고, 조합원 80% 이상 이주를 마치며 올 상반기 착공 및 분양에 나설 예정이었다. B사는 대형건설사인 C사와 D사가 조합과 야합해 시공사를 변경했다고 주장한다.

지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울산 중구 한 재개발구역은 2014년 중견건설사 3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시공사로 참여했고, 재개발사업은 팔부능선을 넘으며 지난해 10월 일반분양에 나설 예정었다. 하지만 컨소시엄 3사의 지분변경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고 결국 조합은 시공사 계약을 해지하고 재선정을 결정했다. 3사는 시공사 지위 확인 청구 소송에 돌입한 가운데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대형건설사 E사와 조합이 사전에 시공사 변경에 대해 논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밖에 최근 시공사 변경에 나선 서울 은평구 F 재건축, 성북구 G 재개발, 경기 남양주 H 재건축, 경남 양산 I 재건축 등도 비슷한 사례로 꼽힌다.

대형건설사도 새로운 먹거리를 찾을 수 있지만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기존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을 조장하고 원활한 사업추진을 막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비사업의 주체인 조합원도 정당하게 시공사를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공사 재선정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 사업지연과 기존 시공사와의 소송비용 등에 따른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골목상권이 살아야 지역경제도 활력을 찾을 수 있다. 공룡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면 제품 가격은 인상되기 마련이다.

대형건설사와 중견건설사가 상생해야 정비사업 시장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1군 대형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독식하면 공사비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펜=김병화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