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통제속에서도 양심의 소리 낸 이란국영TV와 대조적인 한국언론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란의 민간항공기 격추 사실이 밝혀진 후 이란 내의 반정부 시위가 다시 격화되는 가운데 이란국영TV방송 일부 기자들이 방송사의 거짓, 조작 보도에 항거하여 스스로 사표를 냈다. 국영방송의 한 앵커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이란 TV방송을 통해 지난 13년간 거짓말을 했다"며 사과했다.

이란국영TV방송은 가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폭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내의 미군기지 두 곳을 미사일로 공격하여 미군 8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에 이어 우크라이나 행 여객기가 기술적 문제로 테헤란 인근에서 추락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 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음이 곧바로 밝혀졌다.

이란 내의 '테헤란지구 언론인 협회'는 국영통신사를 통해 이란의 언론들이 "진실을 숨기고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며 "언론의 자유의 실종"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국영방송보다는 이란 로하니(Hassan Rouhani) 정권에 부담을 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Sans Frontières: RSF)'의 2019년 통계 발표에 따르면, 이란의 '언론의 자유' 수준은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0위로 지난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언론 탄압이 심한 나라 중 하나이다.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언론인들은 혁명재판소의 부당한 판결로 협박, 체포, 구금을 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이란의 젊은이들은 해외언론이나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한국의 '언론의 자유' 수준

위의 '국경 없는 기자회'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언론 탄압이 심한 나라는 180개국 중 179위인 북한과 177위인 중국이다. 2018년에 180위이던 북한은 2019년에는 불명예의 자리를 투르크메니스탄에게 내줬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언론의 자유' 수준은 세계 180개국 중 41위로 48위의 미국이나 67위의 일본보다도 높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언론의 자유를 증진할 목적으로 198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조직된 비정부기구로 각국의 언론 탄압을 감시, 경고하며 불법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저널리스트와 그 가족들 지원을 주된 활동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2002년부터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wide press freedom index)'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이 기구에서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는 각 나라의 보도의 자유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지수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레기'라는 오명을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은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높은 수준의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허위, 왜곡, 과장 보도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 '국경 없는 기자회'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언론 탄압이 심한 나라는 180개국 중 179위인 북한과 177위인 중국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의 자유' 수준은 세계 180개국 중 41위로 48위의 미국이나 67위의 일본보다도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언론이 여론을 호도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한다고 비난한다. /사진=청와대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무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18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국경 없는 기자회'의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사무총장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청와대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들루아르 총장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로 권력, 자본, 제도, 허위정보, 오보 등이 있는데, 근거 없는 소문, 광고, 기득권의 이익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위의 '세계언론자유지수' 통계로 평가할 때 한국은 '언론의 자유'에 관한 한 선진국에 속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언론을 '기레기'라 부르며 언론을 불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은 언론노조다. 언론 탄압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민노총 언론노조에 장악된 언론이 스스로 정부의 구미에 맞는 말과 글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들이 최고의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정권 코드에 맞춘 생각과 판단으로 기획한 뉴스와 정보로 국민을 현혹시키며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첫 번째 책무는 사실 보도이다. 사실에 입각한 해설과 비판으로 올바른 여론을 조성하여 국민의 힘을 통해 정치권력의 독재와 남용을 견제,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현대 저널리즘의 순기능에 대해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의 견해를 전해줌으로써 사회의 무지함을 계속 접할 수 있게 해준다(By giving us the opinions of the uneducated, it keeps us in touch of the ignorance of the community."라고 했다. 즉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지한 계층을 계몽하며 사회 전 계층의 생각이 농축된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서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제동을 거는 매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레기'라 불리는 우리 언론의 모습은 어떤가? 세계최고 수준의 언론의 자유를 누리면서 스스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거짓과 왜곡 보도에 앞장서는 모습이 그야말로 잘 길들여진 집비둘기 꼴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 탄압과 통제 속에서도 정권의 거짓에 항거하여 양심의 소리를 내는 이번 이란국영TV방송 일부 기자들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로우면서도 공정한 언론'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경 없는 기자회' 사무총장을 만나 "언론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며 "언론이 자유로우면서도 공정한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할 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백 번 지당한 말이다. 대통령 스스로 이를 지키고 언론이 언론의 책무를 지킨다면 이 나라 언론이 하루아침에 '기레기'란 오명을 벗을 것 아닌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정확성, 공정성, 객관성 등을 전제로 한 정보제공과 여론형성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핵심 기관이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고 언론이 '사회의 목탁'으로 대접받는 만큼 언론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그런데 그 '목탁'이 들루아르 사무총장의 지적처럼 권력, 자본, 제도의 탓이거나, 또는 무지, 무개념, 무책임, 이념적 편향 등 그 어떤 이유로든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찌그러진 깡통 소리를 낸다면 그 목탁은 버려야 마땅하다.

언론이 자신들의 허물은 철저히 은폐하면서 거짓 통계나 모순된 논리로 여론을 조작하려 한다면 스스로 '사회의 목탁'의 지위를 포기한 것이다. 이번 이란 사태에서 보듯이 언론인이 정치권력의 탄압 속에서 목숨을 걸고 양심의 소리를 내는데, 하물며 '언론의 자유' 천국인 대한민국의 언론이 스스로 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하며 불공정한 보도나 엉터리 소리로 국민을 속이려 들면 되겠는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