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서 지하처분연구시설 운영…길이 551m, 깊이 120m
대국민 신뢰도·수용성 확보 위한 거점으로 활용 가능
   
▲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입구에 설치된 로고탑/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미디어펜(대전)=나광호 기자]"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관련 정책이 수립됐을때 국내에 기술이 없거나 부족하면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핵심기술 보유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 만난 조동건 박사는 "일각에서는 정책이 수립되고 나서 부지선정 등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게 맞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앞뒤가 바뀐 주장으로, 데이터가 있어야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하는 방식으로는 해양처분·빙하처분·우주처분·심층처분 등이 있으나, 원자력 국제기구와 각국 규제기관 등은 안전성과 경제성이 입증된 심층처분 방식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독일·일본·프랑스·스웨덴·스위스 등은 자국 지질환경에 적합한 심층처분시스템 개발 및 지하연구시설(URL)을 이용한 실증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심층처분시스템은 고준위폐기물을 처분용기에 담아 완충재 등으로 이를 둘러싸는 공학적 방벽과 천연방벽(암반) 등 다중방벽시스템으로 격리시키는 것으로, 방사성 물질이 지표에 도달할 때 자연준위 수준으로 낮추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원자력연구원도 국내에서 가장 넓게 분포된 중생대 복운모화강암 암반에 터널을 뚫고 2006년부터 국내 유일의 소규모 연구용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을 운영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을 위한 부지선정시 유사한 지질에 대한 데이터가 존재하면 과학적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만20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연구원을 견학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현재 터널의 길이와 최고 깊이는 각각 551m, 120m다. 이 곳에서는 방사성 물질을 사용할 수 없으며, 장비를 통해 일일 40톤 이상의 물을 외부로 보내고 있다.

조 박사는 "KURT는 처분개념 및 처분기술 개발·평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실규모 실증이 가능한 수준의 URL은 아니지만 대국민 신뢰도 및 수용성 확보를 위한 거점시설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지하수 흐름 특성, 암반 안정성, 화학특성 등을 모니터링 하고 있으며, 올해 말 IAEA 주관 처분 교육도 예정됐다"고 밝혔다.

   
▲ 지하처분연구시설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설명을 들은 뒤 들어간 터널에서는 훈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았으며, 건설 당시 현대건설과 벽산엔지니어링 등 국내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려가면서 좌우를 둘러보니 장소마다 습도가 다르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 곳에서 만난 관계자는 "지하는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환경이 바뀌는 곳으로, 데이터 수집의 중요도가 높다"며 "일부 실험의 경우 노이즈 방지를 위해 출입통제를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수직 방향으로 지하 500m 까지 뚫고 들어간 시추공이 9개 구간의 데이터를 모니터링 하는 장면 뿐만 아니라 구리·티타늄·철 등 처분용기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소재들을 지하수와 직접 접촉시켜 모델링을 하는 설비도 볼 수 있었다. 금속을 두드려서 제작하는 단조가 일명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주조보다 단단하지만, 부식 등 다른 요소에 대한 안전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멍을 뚫고 히터를 넣어 사용후핵연료에서 발생되는 열이 암반과 지하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실험했던 장소도 남아 있었다. 처분용기와 완충재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연구도 수행하고 있으며, 성과가 나면 처분용기간 간격을 줄일 수 있어 공간활용 및 경제성 향상이 가능하다.

한병섭 박사는 "2029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 선정 등이 담긴 정부 계획이 이행되기 위해서는 처분시설 연구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지원이 부족한 상황"면서 "공론화 과정에서 필요한 전문가들이 배제되는 등의 문제도 새롭게 도출됐다"고 우려했다.

[미디어펜=나광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