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미디어펜 산업부장
코로나19 여파가 우리 경제를 흔들고 있는 와중에 대기환경 규제에까지 발목이 잡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올해로 시행 6년차를 맞고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이야기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지난 2015년 도입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가격 폭등으로 기업에 부담을 주고 심지어 감산까지 고려하는 상황을 만들며 기업은 물론 산업 경쟁력까지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벌금을 내거나 배출권을 사서 채우도록 하는 제도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중국과 미국은 물론 뒤를 잇고 있는 인도, 러시아, 일본 등은 외면하고 있지만 탄소배출량 10위권 밖에 있는 우리나라는 선제적으로 도입해 모범 국가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세계적인 숙제에 강대국들은 뒷짐을 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우리나라만이 경제와 산업은 외면하고 대외적인 체면 속에서 도입한 규제정책이라 할 수 있다. 강대국들이 자국 이익을 위해, 산업 보호를 위해 탄소배출 규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 대장으로 나선 셈이다. 정작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중국도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마치 환경지킴이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했다.

탄소배출 규제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도입했어야 했느냐는 아쉬움과 의문점이 남는다. 온실가스 문제는 국제적인 환경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나서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중국, 미국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판인데 이들은 아직까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선택은 올바른 판단이었을까. 시기적으로 보면 판단 착오로 볼 수밖에 없다.

철저한 준비와 계획으로 환경과 산업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든 후 도입했어도 늦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탄소배출권을 도입한 이후 관련 정책을 도입한 국가는 아직까지 없다.  

   
▲ 2015년 1월 12일 부산시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내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탄소배출권이 주식처럼 거래되는 시장이 개장했다. /사진=연합

더욱이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 이후 우리나라 탄소배출량 감축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사업 확대로 탄소배출량이 늘어나고 있는 기업들에게 부담이 가중되고 배출권 사재기, 가격 폭등 등 부작용이 발생하며 시장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2015년 도입 당시 톤당 7860원이던 것이 4만원까지 치솟았다가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주춤하며 3만원대로 떨어졌으나 내년 탄소배출 감축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여 올 4분기 이후에는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산업계는 내년 배출권 가격이 7만원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탄소배출권 벌금은 최대 톤당 10만원으로 설정돼 있는데 상황에 따라 최대치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제3차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는 내년에는 더 큰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일부 업종은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이 현재 3%에서 10%로 확대된다. 부담이 3배 이상 늘어나는 것이다.

탄소배출권에 대한 불확실성, 정책의 불합리성 등으로 배출권이 적정 가격이 아닌 이상 폭등으로 이어지며 시장이 날로 왜곡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기업만 압박하고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규제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얻은 벌금 등 수익은 시행 이후 사용처도 알 수 없다. 당초 기업들에게 재투자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무너진지 오래다. 산업계에서 걷어들인 수익인 만큼 기금형태로 운영해 기업과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사용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 내년 3차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겪었던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실패를 거울 삼아 기업에게 족쇄가 아닌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규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구조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또한 코로나19 여파로 우리 기업들이 비상경영을 펼치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해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당분간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줄여야 한다.

30년을 목표로 시행되고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적용되는 기업, 산업에 대한 보호와 함께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합리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 해야한다.

[미디어펜=김영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