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늦은 밤, 2015년이 꼭 1시간 남짓한 시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문다는 생각에 담배가 간절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담배가 없다. 아찔한 순간이다. 1월1일부터 담뱃값이 2000원 오른다는 걱정에 가까운 편의점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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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1일부터 담뱃값이 인상된다. 2500원짜리 담배 한갑 기준으로 2000원이 올랐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내 흡연구역에서 한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뉴시스 |
남들에게 "담배는 사 놓았냐'는 걱정이 담긴 질문을 받았지만 게으른 탓이다. 벌을 받는 느낌이다. 편의점 출입문에는 1갑밖에 안판다는 글귀와 그 전에 샀던 담배는 교환·환불이 안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불안했다. 역시나다. 그곳의 담배 진열대는 휑했다. "아~ 내가 찾는 담배가 없다". 왜 없느냐고 물었다. 담배가 안들어왔단다.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편의점 창고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 쟁여놓은 담배가 있으리라. 단속반이 들이닥쳐 편의점 창고에 쌓아둔 담배가 가득했다는 뉴스를 접한 터라 의심은 갔지만 알바생에게 원망하면 무엇하랴. 점원은 나같은 사람이 많다는 듯 "담배가 공급되지 않아 팔 담배가 없다"고 위로했다. 만일, 2000원을 더 얹어서 값을 치루면 줄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아무 담배가 골라서 나왔다. 내일 아침에 2000원이 인상된 담배를 사겠다고 다짐했다. 마음껏 살수 있다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해줄 요량이다. 보신각 종이 울린 2015년 1월1일 아침 다시 편의점으로 갔다. 분명 쟁여놓은 담배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빗나갔다. 담배가 없었다. "내일쯤 입고된다"는 답변만 들어왔다. 왜 담배값 인상을 앞두고 팔 담배가 없는지 답답했다. 그 많던 담배가 어디갔을까.
누구의 농간인지 잡히면 가만히 안놔두겠다는 격앙의 목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오르는 것을 꾹 참았다. 누구인지 몰라도 인상된 값의 담배를 팔아서 두발 뻗고 잘 먹고 살길 빌겠다. 그리고 차라리 담배를 끊으리라.
내 지인은 이미 사재기를 했단다. 3박스 챙겼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담배를 자신의 방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놨단다. 부러웠다. 욕심이 과해도 안좋다. 지인은 몇 보루 밖에 피지 못하고 버렸다고 했다. 너무 따뜻하고 건조한 곳에 놓아뒀더니 담배가 말라 비틀어져 맛이 안난다고 해서 버렸다고 했다. 믿지 않으려 했지만 담배 아니겠는가. 쌤통이다.
담배값이 인상된다고 사재기를 한 사람이나 담배품귀 현상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돈벌이에 이용했던 사람들 모두 밉다. 더욱 미운 것은 정부다.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이름의 법안으로 담배값을 올린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밉다. 정부의 말이 더 얄밉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가격 상승과 흡연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정책"이란다. 그 말을 믿는 끽연자들과 마음이 착한 국민들이 과연 있을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정서일 것이다. 담배값 2000원 인상을 보자. 담배 소비세 641원, 국민건강 증진 부담금 354원, 지방교육세 320원, 부가가치세 227원, 연초 안정화 부담금 15원, 폐기물 부담금 7원 모두 합쳐 1564원, 여기에 세금 2000원이 더해진다. 흡연율이 문제라면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흡연율을 줄이는 것은 500원 상승때 가장 효과적이란다.
오히려 비흡연자보다 흡연자가 세금을 국가에 더 낸다니 이 정도의 애국이 어디있겠는가. 담배값 인상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신감이 확 밀려온다. 간접흡연이 타인의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담배를 필 곳이 없다. 금연 거리에서 흡연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마음 편히 담배를 필 곳도 없다. 담배부스를 만들어 주던가. 흡연자의 권리는 없다. 건강을 해치는 해충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정부의 의도가 밉다.
범죄자 취급 받는게 싫다. 흉악한 범죄자들도 인권이라는 보호를 받는다. 무분별한 사재기를 하는 사람도 밉고 흡연자를 건강 파괴자로 몰고가는 정부도 밉다. 이참에 담배를 끊겠다는 오기가 흐른다. 그렇지만 힘들다. 몇번의 시도에도 중독성때문에 어렵다. 가족과 약속했다가 벌금에 손해만 봤다.
차라리 담배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인상된 가격으로 담배를 하루에 1갑씩 1년동안 피우면 164만원이 된단다. 끊어서 164만원의 행복을 만끽해 볼까.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듯 하다. 인터넷이나 SNS공간에서는 정부를 원망하며 금연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꼭 금연해서 정부에 눈먼 돈 안주고 싶다", "금연 성공해서 여성부 세금조달 중단하기", "담배값 인상, 이민갑니다", "금연이 젤 하고 싶다 정말...후회 중", "담배값 인상 닭 모가지 비틀기" 등의 불만이 쏟아진다.
정말 밉다. 담배값을 올려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정부가 밉다. 이틈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고 하는 그 누군가가 밉다. 담배핀다고 미개인으로 바라보는 그들이 밉다. 담배 달라고 손 내미는 너가 밉다. 담배 하나 때문에 이 글을 쓰는 내가 밉다.
만일 끽연자들이 마음먹고 금연하고 흡연율이 줄어서 세금마저 줄게 되면 담배 다음엔 술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