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건 쏟아져…'3%룰' 적용으로 소액주주 의사 관철되기도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12월 결산 상장법인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일단락된 가운데 올해 역대 최다 수준의 ‘주주 제안’이 쏟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16년 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 주주 제안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코드의 급부상, 작년의 상법 개정 등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주들이 올해 특히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 사진=연합뉴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법인들의 주주총회가 마무리 됐다. 특기할 점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역대 최다 수준의 ‘주주 제안’이 쏟아졌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자료에 따르면 정기 주주총회 주주총회소집공고를 공시한 12월 결산 상장사들의 주주 제안은 127건이며 코스피가 47건(16곳), 코스닥이 80건(15곳) 등이다.

주주 제안은 지난 2016년 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이후부터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단, 작년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초기 확산기가 주주총회 시즌과 겹치면서 주주 제안 건수도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산업계 전반에 ESG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시작되고 작년에 상법 개정까지 이뤄지면서 다시금 주주 제안도 급증한 모습이다.

작년 상법 개정 내용부터 보면, 올해부터는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를 적어도 1명 이상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규정(감사위원 분리선출)이 적용됐다. 이는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의도로, 각 주주의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는 이른바 ‘3%룰’이 이 단계에서부터 적용됐기 때문에 소수 주주들이 지지하는 후보도 선임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올해 나온 127건의 주주 제안 중 18건(14.17%, 10개사)이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와 관련해서 나왔다. ‘이사 선임의 건’(55건, 43.31%), ‘정관 변경의 건’(23건, 18.11%)에 이어 안건 중 세 번째로 많은 비중이었다.

물론 주주 제안은 늘었어도 실제로 가결된 안건은 6% 수준(8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건수는 적어도 8건 중 3건이 ‘3%룰’로 인해 가결된 것이라 질적 측면에서 분명히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선이다.

일단 지난달 26일 대한방직 정기 주총에서는 소액 주주가 내놓은 주주 제안 중 ‘비상근 감사 선임의 건’이 가결됐다. 경영진이 소액주주 측과 장기간 분쟁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소액 주주들의 의사가 관철된 것이다. 

아울러 소액주주들은 3년 임기의 신임감사로 회장의 안형렬 전 대한방직 비서실 부장이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안 전 부장은 대한방직 차명주식, 비자금 문제 등을 폭로한 인물이다. 소액주주들은 그를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30일 한국앤컴퍼니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분리 선출하는 사외이사 자리에 이한상 고려대 교수가 선임됐다. 그는 조현식 부회장 쪽이 추천한 인사로, 지분 구조에선 조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조현범 사장이 43.52%로 압도적이었지만 ‘3%룰’로 의결권에 제한을 받았다. 대신 총 지분율은 약 20%에 지나지 않는 소수 주주들의 지지를 받은 조 부회장의 안건이 탄력을 받았다.

이는 상법 개정으로 인해 가능해진 변화라 일각에서 강조하는 ‘주주가치 제고’에 분명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3%룰’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지분이 적은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자칫 외국계 투기자본 등에 대한 경영자들의 보호장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주총에선 3%룰이 실제로 효과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면서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에 대한 논의도 함께 확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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