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의 눈물'이 이제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음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리더, 기업들은 기후 재앙을 피하자는 대원칙 속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가 바꾸고 있는 세상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다툼, 기회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후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과 냉철한 전략이 요구된다. 미디어펜은 '기후위기 리포트' 심층 기획시리즈를 통해 '신기후 시대'에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짚어보고 급변하는 환경에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 제로)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내세운 탄소중립 목표치가 이상에 불과하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일각의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4월 22일 미국 바이든 행정부 주최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감축 목표의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2019년 6월 3차 에너지기본계획, 2020년 5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및 7월 그린 뉴딜 종합계획에 이어 올해 6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구체적인 로드맵이 아니라 청사진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경제적 비용과 자발적 참여다.
특히 기업에 있어서 탄소중립은 손익이 뒤집힐 정도로 큰 비중의 비용을 치러야 할 난제다. 탄소중립을 선언하더라도 그에 대한 실현 방법은 별개나 마찬가지다.
국가 탄소배출권거래제 적용 대상인 네이버의 경우,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 증가 추이가 심각하다. 전력 소모가 큰 데이터센터 특징을 감안하면 탄소배출권 구매로 인한 재무적 부담이 2030년까지 총 1조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탄소배출량이 늘수록 재무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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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탐라 해상풍력 발전단지. /사진=두산중공업 제공 |
현대제철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현대제철이 지난 2018~2020년간 탄소배출권 구매로 지출한 금액은 1571억원이다. 현대제철은 향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포집기 2기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그 비용은 3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현대제철 영업이익 730억 원의 5배에 달한다. 사실상 영업이익을 전부 배출권 구매와 관련시설 설치에 써야할 지경이다.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최초로 탄소배출부채(배출권 비용) 202억 원을 기록했다.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석탄 대신 수소로 쇳물을 만드는 '수소 환원 방식' 고로로 대체해야 한다.
문제는 이 고로 1기 건설비용이 철거비를 포함해 6조 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고로 9기 전부를 교체하려면 54조 원을 투입해야 한다. 이는 포스코의 30년 치 영업이익에 해당한다.
전력을 실어나를 인프라도 문제다.
정부는 올해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를 구축해 발전량을 769.3TWh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지를 구축하더라도 송전로가 없으면 안된다. 특히나 신재생에너지 단지는 지방에 몰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수요지인 수도권까지 전력을 보내려면 대규모 송전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 소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국내 법·제도적으로도 한계가 명확하다. 일명 탄소 4법, 그린뉴딜기본법·기후위기대응법·에너지전환지원법·녹색금융촉진법의 경우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제적으로도 세계 각국은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았지만 올해 미국·중국·유럽 모두 역설적으로 석탄 소비가 늘어났다.
미국에서 전력 생산을 위한 석탄 소비 비중은 지난해 17%에서 23%로 늘었고, 중국의 경우 지난해보다 16% 증가했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도 석탄 사용이 늘었다.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시간대·날씨의 영향을 받아 제약조건이 많은 반면, 석탄과 같은 전형적인 화석연료는 그러한 제약조건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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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스코 포항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동국제강 당진공장, 세아제강 포항공장. /사진=각 사 제공 |
정리하자면 '탄소중립'이라는 기회를 잡을 것인가 놓칠 것인가 아직까지 그 가능성은 미지수다. 정부와 기업이 각자 해야할 역할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돈 문제다. 대대적인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려면 누군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현실은 매섭다. 앞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 RE100을 선언한 글로벌기업은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240곳에 달하는데 정작 우리나라 기업은 아직까지 한 곳도 없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 생존의 문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골은 깊다.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경제위기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