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한 가운데,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쟁제한성을 낮추는 방안을 찾는데 함몰된 공정위가 결국 통합 항공사의 날개를 꺾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22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주식 63.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양대 항공사가 국제선과 국내선 일부 노선의 운수권과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반납하는 조건이다. 구조적 조치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의 주식 취득을 완료하는 날(기업결합일)로부터 10년간 이행해야 한다.
|
|
|
▲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운수권 반환 명령.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통합 항공사의 점유율이 높은 노선에 신규 항공사의 진입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그동안 대형항공사(FSC)만 운항하던 장거리 노선에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진출할 경우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 항공 자유화 노선에서 공항 슬롯을 내놔야 한다. 또 런던과 파리 등 '항공 비(非)자유화 노선'의 슬롯과 운수권을 신규 진입 항공사에 넘겨야 한다. 이 노선은 대부분 수익성이 높은 '알짜노선'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구조적 조치의 효과는 향후 항공업계의 적극적인 참여와 투자에 의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라며 "국제선에서 경쟁 압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매우 긴요한 사항이다. 국내 LCC 등의 적극적인 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은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촉진해 경쟁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슬롯과 운수권 반납 조치가 결과적으로 통합 항공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문제는 국내 LCC들이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초기 비용이 불가피하고, 서비스 품질 등 FSC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상 LCC들이 장거리 노선을 취항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최소 3대 이상의 대형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항공사들의 경영환경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최악으로 치닫았고, 정부 지원금 없이는 생존이 힘든 상태다.
항공업계와 증권업계에서는 항공업황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최소 2024년은 돼야 한다고 전망한다. 누적 적자와 손실을 메꾸고, 재정상태를 정상화시키기 바쁜 LCC들이 수년 내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기는 쉽지 않다.
일부 LCC는 사업성을 검토해 장거리 노선 운항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중·단거리 노선에 특화된 LCC가 사업 모델을 바꾸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LCC들이 알짜 노선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통합 항공사의 슬롯과 운수권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항사의 진입 문턱만 낮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외항사가 진입할 수 있는 노선을 항공 자유화 노선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국내 항공사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해외 공항을 허브로 가진 외항사는 이미 압도적인 슬롯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슬롯 이전이 필요없다. 해외 공항의 슬롯 또한 항공사의 중요 무형자산인 만큼, 슬롯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이전할 경우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현재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파리, 시드니 등 해외 주요 공항에서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슬롯 점유율은 0.2~0.5%에 불과하다. 다만, 10년이 지나더라도 통합항공사 노선에 진입을 원하는 신규 항공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실상 독점 운용이 가능해 진다. 공정위가 '구조적 조치가 이행될 때까지 행태적 조치를 병행 부과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이와 맞물린다. LCC들의 장거리 취항이 단기간내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을 인지한 만큼, 행태적 조치로 통합 항공사의 독과점을 해소하겠다는 전략이다.
행태적 조치는 각 노선에 대한 운임인상 제한, 공급축소 금지, 좌석간격·무료수하물 등 서비스품질 유지, 항공마일리지 불리하게 변경 금지 등이 골자다. 운임 인상 제한의 경우 각 노선별·분기별·좌석 등급별 평균운임을 2019년 운임 대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인상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로 2019년 대비 수요와 공급 모두 현저히 감소한 상황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상적 시장에서의 운임을 현 상황에 적용할 경우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회사에 따르면 현재 필수적인 비즈니스 수요와 상용 수요만 발생하는 만큼, 평균 운임은 41%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 공급석당 수익은 오히려 49% 감소한 상황이다. 이에 공정위는 '2019년 기준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경우 의무 내용을 조정할 수 있다'고 문구를 수정했다.
공급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도 항공업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당초 공정위는 노선별 공급 좌석수를 2019년 공급좌석수 미만으로 축소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항공좌석의 경우 '저장 및 사후 판매'가 불가능하다. 최소 공급량을 설정할 경우 수요 대비 공급이 과잉돼 고정비 등 지불해야 할 비용만 증가해 경영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또 가격 하락과 경쟁사 퇴출, 신규 진입을 저해할 여지도 충분하다.
지난해 양대 항공사의 여객사업은 총 3조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9년 기준 공급석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1조5000억원의 적자가 추가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 총 5조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날리는 셈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요구를 일부 수용했고, '노선별 공급좌석수를 2019년 공급좌석수 대비 일정비율 미만으로 축소를 금지한다'고 문구를 수정했다. 2019년 기준 수요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의무 내용이 조정 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공급량이 의무화되면 항공사는 승객 수에 따라 항공기를 교체하는 등의 유연한 기재 운영이 어려워진다. 좌석 수 제한으로 신규 항공기 도입 등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면서 노선 다양화를 저해하고 신기재 도입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마일리지 조항과 관련해서도 '2019년 말 기준 대비 불리하게 변경 금지'라고 못 박았다. 대한항공은 이미 2019년 12월 마일리지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전 제도로 환원될 경우 새 제도의 혜택을 받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침해하고 글로벌 경쟁력 하락 등 피해를 끼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구조적 시정조치 기간을 10년으로 설정하고, 이행감시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항공업은 유가와 환율, 전염병 등 외생변수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대응이 중요하다. 하지만 통합 항공사는 10년간 '족쇄'를 차고 있어야 하는 만큼, 리스크 대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시정조치는 '독과점'에 매몰된 결론"이라며 "FSC와 LCC의 차이점, 항공업 특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