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심사가 해외에서 난항을 겪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해외 경쟁 당국들이 당초 예상보다 심사 수준을 상향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미국 정부를 우선 설득해 나머지 국가들에서도 동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일 본지 취재 결과 조 회장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미국 출장길에 올라 기업 결합심사와 관련한 현지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사정에 정통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과 우 사장이 이미 미국으로 떠났거나 곧 갈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는 완료됐지만 이후에도 EU·일본·중국 등 필수 신고국 승인을 받아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칠 수 있는데, 우선 미국부터 뚫어야 한다는 판단에 황급히 움직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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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한진그룹·대한항공 회장(좌)·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사진=대한항공 제공 |
조 회장과 우 사장의 세부 일정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으로 날아가는 이유는 현지 경쟁 당국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연방 법무부(DOJ) 승인 여부가 전세계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관계 당국 인사들과 만나는 데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경쟁 기업을 인수·합병(M&A) 하는 데에 있어 필수 신고국 경쟁 당국의 승인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현재 미국·유럽 연합(EU)·일본·중국 등 4개국이 필수 신고국인데, 한 나라라도 반대할 경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도는 무산되며, 앞으로의 경영 계획도 모두 틀어지게 된다.
미국 정부 승인을 얻어내면 임의 신고국인 영국과 호주에서도 같은 결과를 얻어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대체로 서방과 정책의 궤를 같이 하는 일본 정부도 동의할 여지가 크다.
최근 미국 민항 업계 2위인 유나이티드항공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M&A를 통해 한 회사가 될 경우 경쟁 제한성이 생길 것이라며 당국에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항공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인데, 코드 셰어를 하지 못하게 돼 경쟁력 상실을 우려해서다.
이와 관련, 연방 법무부는 M&A 심사 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격상했고, 이에 대한 해결사로 활약하고자 조 회장과 우 사장이 미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앞서 조 회장은 국내외로 미국 정부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자 '빌드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왔다.
지난달 21일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암참)가 주최한 '국내 기업 환경 세미나 2022'에 참석해 그는 "대한항공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까지 연 평균 여객 290만명을 미국으로 수송한 실적이 있다"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미국 경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를 높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대한항공 화물기·여객기를 동원해 미국으로 마스크·진단 키트 수십억개 등을 포함, 대미 항공 화물 수송량을 90만톤 이상으로 늘려 공급망 문제 해소에 일조했다"고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M&A 승인을 이끌어낸다 해도 조 회장과 우 사장은 EU와 중국의 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4월 초 에어캐나다는 EU 집행위원회가 에어트랜셋과의 합병을 불허해 M&A 계약을 철회했다. 불허 이유는 유럽-캐나다 간 항공 시장 경쟁성 감소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 제한·가격 인상 가능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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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공항에 주기돼 있다./사진=연합뉴스 |
그러나 대한항공은 에어캐나다와는 달리 아시아나항공과의 한국-EU 지역 중복 직항 노선이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페인 바르셀로나 4개 노선 외에는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중국·홍콩·중동 국적의 경쟁 항공사들도 인천공항에 취항하고 있어 독과점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짜 문제는 중국이다. 항공 시장 협상에 관한 유·불리함의 문제를 넘어 사드(THAAD)·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가입과 같은 외교·국방 문제가 걸려있어 승인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를 빌미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M&A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할 수도 있어 전방위적 외교술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은 폭스바겐은 현지 시장에 진출하고자 10년 간 현지 사무소를 유지했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M&A는 운항·객실 승무원이나 지상직 근로자들의 생계도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며 "조원태 회장과 우기홍 사장만 뛰어다닐 게 아니라, 대통령실·국토교통부·외교부·공정위가 혼연일체가 돼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을 설득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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