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무어라 호칭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두 번의 국무총리와 여당 총재, 공동정부 파트너, 9선 국회의원, 중앙정보부장 등을 두루 경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호칭과 상관없이 'JP'로 상징된 그의 무게감은 계량이 버겁다. 하여튼 대한민국 정치사에 그만한 족적을 남긴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임은 분명하다.

그는 정치권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난 2015년 생전 평생의 업으로 살아 온 정치에 대해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정리했다. 그 해 2월 22일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로 찾아 온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전한 말이었다. 

그의 심중으로 헤아리지 못한 이들이 "부인을 떠나보낸 노(老) 정객의 허무주의적 표현"으로 해석했다. 그러자 곧바로 자신의 화두에 대한 풀이를 내놓았다. "정치를 잘 해서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는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고 정치인 본인에게는 허업"이라는 결문이었다.

JP와 함께 자유민주연합이라는 힘있는 제3당이라는 드문 역사를 만든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정치는 중업(重業)"이라고 정의했다. 국무총리와 국회부의장, 내무부장관, 여당 대표 등 만만치 않은 정치이력의 그가 2021년 생(生)을 마감하기 직전 내놓은 회고록의 제목이기도 하다. 

정치는 허업이라는 JP의 어구를 염두에 둔 제목이 상치돼 보이나 뜻은 하나로 통한다. "정치는 국사(國事)를 조직하고 이끄는 최고의 업"이라고 발문한 그는 역시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과(過)가 구태정치로 표현되는 낡은 정치 시스템에 봉사했다는 것이라면 공(功)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정치의 기본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철학이다.

신임 김진표 국회의장은 낡은 정치 시스템은 개혁하고 실질적인 국리민복을 추구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35년 된 낡은 헌법 체계를 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며 낡은 정치 시스템의 창조적 파괴를 천명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위한 권력구조 개편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서까래로 보인다. 과거 김종필과 이한동이라는 정치 거목들이 낡은 시스템에 갇혔던 한계를 반면교사삼아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정치인 김진표의 마지막 과업이다. 

김 의장이 필생 과업으로 개헌(改憲)을 이야기하는 것은 포퓰리즘과 거리가 멀다. 이미 2013년 6월 대정부질의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조를 주장했다. 또 2018년에는 '내 삶을 바꾸는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 승자독식의 정치구조 개혁이 국민 삶의 질 개선과 동의어라는 강한 신념의 표출이다.

   
▲ 김진표 국회의장의 정치성향은 경계성이다. 진보진영에서 보면 가장 오른쪽에, 보수진영에서 보면 가장 왼쪽에 위치한다. 그래서인지 여론에는 미온적 인물로 비쳐졌다. 이제 신념과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정치인 김진표와 신앙인 김진표의 마지막 과업의 성취를 기대한다. /사진=김상문 기자

김 의장은 부총리를 두 번 역임했다. 2003년 국가재정을 통괄하는 재정경제부 장관(부총리)은 약속된 자리였지만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부총리)에 임명된 것은 갈등으로 쪼개진 정치권의 피스메이커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여야의 극단적 충돌과  물론  청와대 경제수석, 국정자문위원장, 5선 국회의원을 두루 경험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 신념이 배태됐음을 읽을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정치성향은 경계성이다. 진보진영에서 보면 가장 오른쪽에, 보수진영에서 보면 가장 왼쪽에 위치한다. 그래서인지 여론에는 미온적 인물로 비쳐졌다. 하지만 정치권에 격랑이 일어나고 진영의 충돌이 위험수위에 오르면 늘 그의 이름이 호출됐다. 현역 정치인 가운데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넓은 공통분모와 정치자산을 가졌다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야에 흉심을 터놓고 이야기할 지기(知己)가 많음은 널리 회자된 바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개헌의 적임자이기도 하다.

현재 정치환경도 김 의장이 마지막 과업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 여권은 위험수준인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를 뚫고 나갈 타개책으로 개헌이라는 새로운 테마가 반갑다. 야권은 대선과 지방선거의 패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 기회로 여길게 분명하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표를 의식해 교회 문턱만 더럽히는 교인이 아니라 절대자의 선한 의지와 시간표를 믿는다. 그래서 보수 기독교계의 이익을 수호하는 꼴통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자를 신봉하는 그의 신앙은 그를 욕먹을 자신감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했다. 이제 신념과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정치인 김진표와 신앙인 김진표의 마지막 과업의 성취를 기대한다. /미디어펜=김진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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