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낙하산'에서 '현 정권 알박기'로
공공기관 곳곳서 '자기사람 지키기' 천태만상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민원실에는 한 장의 고발장이 제출됐다. 더불어민주당 정치보복수사대책위원회가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재해 감사원장,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 3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 더불어민주당 정치보복수사대책위원회가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공개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지난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재해 감사원장,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 3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김상문 기자


문제의 발단은 한덕수 총리의 ‘입’으로부터 시작됐다. 한 총리가 지난 6월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관련해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앉아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우리(새 정부)하고 너무 안 맞다”고 말했던 것이다. 홍 원장은 결국 지난달 사퇴했다.

한 총리의 발언이 ‘직권남용’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홍장표 전 원장의 철학이 새 정부와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판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홍 전 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주요 테마였던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설계자인 까닭이다. 

소주성이 성공적인 정책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직까지 소주성을 말하는 사람도 이제는 찾기 힘들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에 유행시켰던 단어처럼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던 작년 5월 홍 전 원장을 KDI 수장으로 내려 보냈다. ‘낙하산 인사’라는 말이 나왔고, 임명에 앞서 KDI 출신 원로 연구자들이 임명 반대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으나 우이독경이었다.

이처럼 전 정권 말기에 내려 보낸 ‘낙하산’은 현 정권 초기부터 공공기관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과거의 낙하산이 현 정권에선 ‘알박기’로 변신해 버티기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는 9월 사장 교체가 예정된 한국벤처투자(KVIC, 한벤투)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 또한 일반의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한벤투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의 기타공공기관이다. 그런데 한벤투는 사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운영 방식과 정원을 지난 6월 갑자기 바꿨다. 원래 임추위 5명 전원이 외부 민간인사로 꾸려졌지만, 이번부터 3명의 사외이사를 포함해 비상임이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사규를 바꾼 것이다. 

사외이사들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전 정권 사람들이 새 사장을 뽑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과연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와 맞는 것이냐는 물음이 나온다.

더 나아가 업계 안팎에서는 이들이 한벤투 새 사장으로 카이스트 초빙교수 K씨를 앉히고 싶어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것을 사외이사 3인만의 의지로 볼 수는 없다. 임추위 사규를 바꾸는 작업부터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낮은 지지율과 씨름하고 있는 동안 공공기관 곳곳에선 이렇게 낙하산과 알박기가 혼탁하게 뒤엉킨 천태만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 정권 관계자와 현 정권 관계자들이 각각 ‘자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자리싸움에 몰두하는 동안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들어설 여지는 좁아지고 있다. 한벤투는 오는 12일 사장 후보자 면접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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