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에 공공지출 감축 등 현안 산적한데 노사갈등만 격화
   
▲ 류준현 경제부 기자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정부의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부터 확고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이어 지난달 31일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도시, 세계적인 무역도시, 또 배후에 첨단 기술산업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금융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며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조속하게 추진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여기에 금융위원회가 구상 중인 산은 이전 로드맵이 최근 공개되면서, 이전 현실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계획'에 따르면 금융위와 산은은 계획 확정에 앞서 △부산시와 이전 대상부지 실무협의 △이전대상 업무 선별 △서울사무소 설치 및 본점-서울사무소 간 기능조정 △인력·설비 이전 일정 △전산망 구축방안 등 기본방안을 연내 검토할 방침이다. 

특히 내년에는 '본점을 서울시에 둔다'는 산은법 제4조의 개정도 추진한다. 이후 부지매입 및 사옥 신축·이전 실무절차 등을 걸쳐 건물이 준공될 시기에 본점을 이전한다는 구상이다. 과거 부산으로 이전한 예탁결제원 사례도 이와 비슷했음을 시사했다. 관련 소식을 사측이 아닌 언론을 통해 접한 임직원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뒤통수 맞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방통행식으로 상황이 전개되면서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카더라'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토지 강매와 산은 본점 및 부지 매각 의혹이다. 특히 본점 부지는 매각 후 상업용 복합쇼핑몰 건설로 이어질 것이라는 풍문이다. 여의도 본점의 고도제한 문제만 해결되면, 인수기업이 서울의 새 랜드마크로 거듭난 '더현대서울'에 견줄 쇼핑몰을 세우지 않겠느냐는 것. 산은은 과거 을지로1가(현 롯데백화점 본점)에 위치했지만 롯데그룹의 롯데타운 조성에 따라 부지를 매각하고 현 위치로 이전했다. 전례가 있었던 만큼, 일부 직원들은 의혹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산 이전으로 임직원들의 신경이 곤두선 가운데, 강석훈 산은 회장은 추석 연휴 전인 지난 8일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서신'이라는 제하의 메일을 통해 "우리가 지방으로 이전을 한다고 해서 산은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우리 조직의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회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묵묵부답이던 강 회장이 서신으로나마 소통에 나섰지만, 부산 이전에 대한 뜻은 굽히지 않았다. 다만 이전 당위성은 여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의 모습이 짙어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 회장이 교수 시절 자신의 블로그에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소신있는 논객의 모습을 보였던 것을 고려하면 말이다. 

"…너무 인생을 쉽게 살려는 것 아닌가? 갑작스런 수도이전. 부동산 실패 만회를 위한 묘수가 될까? 위헌판결난 수도이전이 갑자기 합헌이 될 수 있을까? 아, 헌법재판소를 맘대로 할 자신이 충만한가 보다. 내가 그걸 몰랐구나. ㅠㅠ" (2020년 7월23일, '앞으로는 총리나 장관들이 뭐라고 해도 대통령 말씀만 믿어야겠다....'에서)

"한국판 뉴딜단상 #2. 정부가 향후 5년간 160조원을 투입해서 190만개 일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일자리 한 개당 8421만원이 든다. 차라리 연봉 4천만원 하는 일자리 400만개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2020년 7월23일, '한국판 뉴딜은 정부주도 뉴딜이 아니라, 민간주도 뉴딜이 되어야 한다'에서)

그가 언급한 두 내용은 산은 이전을 추진하면서 빚어지는 문제점에서 고스란히 오버랩된다. '법치의 실종'을 지적한 메시지는 산은법 개정, 직원들과의 대화조차 갖지 않은 채 부산이전을 강행하려는 물밑작업을 연상케 한다. 뉴딜 일자리를 비판한 내용은 산은이 지방이전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에도 빗댈 수 있다.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이 취임 후 적극적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을 만나 서울 잔류 필요성을 어필한다는 점에서, 강 회장의 소극적인 모습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 산업은행 노사가 지방이전 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갈등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강석훈 산은 회장이 노조에 성명서를 낭독하는 모습./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무엇보다 산은의 당면 과제가 산적한 만큼, 지방이전으로 노사갈등을 부추기는 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우선 강 회장의 취임사와 노조의 언급대로 금리·환율·물가 등이 연일 급등하며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다. 투자은행(IB)으로서 1차 경제방어막인 산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더불어 금융위가 국책은행의 알짜 거래처들을 시중은행에 넘기고 이들이 잘 취급하지 않는 대출에 앞장서라고 요구했다는 논란도 사실이라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진행 중인 기업구조조정도 문제다. 대표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무산, 하청지회의 파업에 따른 손실(매출 약 6468억원, 고정비 약 1426억원, 선박 인도 지체보상금 약 191억원)까지 더해지면서 매각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산은은 외부 컨설팅의 결과에 따라 민간 매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속 대우조선을 인수할 회사를 찾는 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 감축을 목적으로 '공공기관 혁신안'을 내놓았는데 지방이전을 강행하는 점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은행권이 직면한 '임금피크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올해 5월 말 기준 은행별 임피제 적용 직원은 산은이 9.81%(3913명 중 384명)로 주요 은행 중 가장 높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임피제를 적용하지 못하면 산은은 732억원을 추가 임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각종 현안을 차치하더라도 내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강 회장은 아직도 직원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실무급과 젊은 직원들은 계속해서 산은을 퇴사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산은 직원은 상반기에만 40명, 7~8월에만 20여명이 추가로 퇴사해 지난해 말 대비 60여명이 떠났다. 모두가 갈등을 최소화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산은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미 묻지마식 강제 이주를 두고 '포퓰리즘' '윤핵관의 숙원사업'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정책실험'은 강 회장의 지적대로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한국판 뉴딜, 부동산 정책으로 족하다. 강 회장은 부산 이전의 목적과 의도, 이전에 따른 비용과 실익, 기대효과 등을 소상히 밝혀, 지방이전에 대한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할 것이다. 강 회장의 논리적이고 솔직한 입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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