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 홀연히 사라져버린 딸

2평 남짓의 작은 방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부산의 한 고시텔. 창문 하나 없이 어둡고 비좁은 방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사람은 65세의 박 씨(가명)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사라진 딸의 흔적. 그런데 이번에도 허탕이다. 우편함에 쌓인 건강보험료 독촉고지서가 딸의 주소지가 이곳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 방 어디에도 딸과 관련된 것은 없었다.

딸과의 연락이 완전하게 끊긴 건 3년 전인 2019년. 걱정 끝에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찰 수사로도 딸을 찾거나, 딸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 경찰에서 확인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금융기록, 통신기록 등 실종된 딸의 생존반응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딸은 살아있기는 한 것일까. 도대체 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홈페이지


▲ 갑작스러웠던 가출, 그리고 고발

"신분증, 여권, 주민등록증, 통장… 싹 다 챙겨가고, 큰 트렁크 같은 거는 다 그냥 있는데 옷도 들고 가고…" - 실종자 김규리 씨 어머니 -

어머니가 그토록 찾고 싶은 딸은 실종 당시 36살이었던 김규리 씨.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미술관 전시기획 일을 하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삼남매 중 유독 온순하고 가족을 살뜰히 챙겼다는 둘째 딸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7년부터 규리 씨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가족들은 설명한다. 당시, 말없이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가 하면, 이에 대해 가족들이 걱정하자 평소와 다르게 불같이 화도 냈다는 것. 그러던 중, 규리 씨는 그해 11월 자신의 짐을 모두 챙겨 갑자기 집을 떠났다는데… 이제부터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살고 싶다는 게 가족에게 밝힌 가출의 이유였다.

가족들을 더 놀라게 한 사건은 규리 씨가 집을 떠나고 5개월 후인 2018년에 일어났다. 어린 시절 당한 차별과 학대를 보상하라며 어머니를 상대로 15억 원의 손해배상 고소를 한 것. 어머니가 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건, 규리 씨가 고소장을 제출하던 경찰서 앞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 당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언론사들에 제보까지 했다는 규리 씨. 가족들은 규리 씨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돌변했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는데… 김규리 씨 가족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왜 갑자기 부모님을 고소, 고발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걸까. 그리고 규리 씨의 이런 변화는 실종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 카메라 뒤 의문의 동행

실종된 규리 씨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SBS와 인터뷰했던 규리 씨의 영상을 찾아냈다.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며 언론사들에 제보를 했던 2018년 11월, 당시의 영상이다. 이 인터뷰가 이뤄지고, 약 2개월 후 그녀는 실종자가 된 상황. 그녀의 실종에 단서가 될 만한 사실은 없는지 확인하던 영상에서 제작진은 한 남자의 존재를 발견했는데…

규리 씨 옆에 있다가 그녀에게 인터뷰 내용을 상기시키는 남자. 확인해보니 그 남자는 규리 씨가 고소장을 경찰서에 제출할 당시에도 옆에 있었다고 한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김규리 씨가 가출하기 6개월 전 선을 통해 만났다는 홍 씨(가명)였다. 2017년 규리 씨가 가출한 후, 홍 씨에게 동생을 찾는 전화를 했었다는 언니. 당시 홍 씨는 규리 씨가 어디 있는지 모르며, 그녀와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는데…

그런데, 2017년 경찰에 첫 번째 실종신고를 했던 가족들은 홍 씨의 대답에 의문이 생겼었다고 한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확인한 규리 씨의 당시 위치가 홍 씨가 거주하던 지역과 일치했고, 2019년 생존 반응이 사라지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보이는 장소도 홍 씨가 거주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규리 씨와 홍 씨는 어떤 관계였을까. 그리고 홍 씨는 정말 규리 씨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는 걸까.

▲ 수상한 통신 기록과 마지막 통화자

제작진은 규리 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홍 씨를 찾아갔다. 제작진을 마주한 그는 가족 관계 때문에 고통을 겪던 규리 씨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그 일 때문에 그녀의 실종 후 경찰의 강압수사까지 받아야 했다며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규리 씨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고 싶은 것도, 알고 있는 것도 없다는 입장을 밝힌 홍 씨. 가족과 연을 끊고 사라진 규리 씨는 자신을 도와준 그와도 연을 끊고 아무도 모르게 잠적해버린 걸까.

현재, 김규리 씨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가족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통신 기록. 제작진은 2018년 8월부터 2019년 1월까지 김규리 씨의 통신 기록 자료를 전문가들과 함께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 무렵, 규리 씨는 이모에게 '친구와 여행을 간다, 새 직장을 구했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이모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상의 규리 씨 위치와 휴대전화의 발신기지국 위치는 일치하지 않았으며, 규리 씨가 거주했다고 소개한 고시텔 근처에서는 2018년 8월 이후 단 한 번의 통화 기록도 포착된 적이 없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규리 씨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긴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이 바로 홍 씨였다는 것. 과연, 규리 씨의 통신 기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3년째 생존반응이 없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긴 규리 씨. 그녀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오늘(24일) 밤 11시 10분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고발과 증발 - 마지막 통화 미스터리' 편으로 3년 전 미스터리하게 사라진 김규리 씨 사건을 세밀히 들여다본다. 그녀가 남긴 흔적들을 통해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는 한편, 관련법의 부재로 인해 실종 직후 바로 대처가 어려운 성인 실종 사건의 보완책은 없는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미디어펜=석명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