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뱅크런 대비한 안전장치 마련 시급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 백지현 경제부 기자
총자산 276조원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단 36시간 만에 '초고속 파산'했다. 40년 역사의 SVB가 고작 이틀이 채 안 돼 파산한 배경엔 '디지털 뱅크런'이 자리한다. 지난 8일 SVB가 약 18억달러의 손실을 봤다는 공시가 난지 하루 만에, 예금자들이 두드린 스마트폰 자판을 통해 420억달러(약 56조원)가 썰물처럼 빠졌다. 유동성 부족과 지급불능 상태에 이른 SVB는 바로 다음 날 금융당국으로부터 폐쇄됐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은 금융 시장에 위기감이 조성되거나 돈을 맡긴 은행에 재정 건전성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불안 심리가 커진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려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발생한다. 은행은 고객의 현금인출에 대비해 일정 비율 지불준비금을 보유한다. 하지만 일단 뱅크런이 시작되면 지불준비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당장 자금줄이 바닥난 은행은 파산에 내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뱅크런의 대표적 사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 지난 2007년 영국 노던 록(Northern Rock) 은행에서 3일 만에 약 20억파운드(약 3조7000억원)가 인출됐다. 국내에선 1997년 종합금융회사의 연쇄 부도와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따른 뱅크런을 경험했다.

   
▲ 국내에선 1997년 종합금융회사의 연쇄 부도와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에 따른 뱅크런을 경험했다./사진=김상문 기자


다만 과거 뱅크런이 '실제' 은행 창구에서 돈을 인출했던 행위였다면, 이번 SVB에서 벌어진 뱅크런은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마트폰 뱅킹 앱 클릭 몇 번만으로 대형은행도 파산할 수 있다는 디지털 금융의 이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 셈이다. SVB의 초고속 붕괴엔 각종 메신저와 소셜미디어(SNS) 등도 한몫했다. SVB 위기설이 SNS로 급속도로 퍼지면서 시장에 대한 공포감이 커진 예금자들의 뱅크런에 불을 지핀 것이다.

문제는 디지털 강국인 한국도 '디지털 뱅크런'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디지털 금융의 보편화로 자금 이체의 시공간적 제약이 사라지면서 언제든 클릭 한 번으로 돈을 인출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는 고객수는 처음으로 2억명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인터넷뱅킹 하루 평균 이용금액과 이용건수는 각각 76조원, 1900만건을 넘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입출금과 자금 이체 중 인터넷뱅킹의 비중은 78%에 달한다. 반면 은행 창구 비중은 5.5%에 불과 그쳤다.

금융당국은 SVB 사태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하며 유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보완 장치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SVB 사태가 발생할 경우 예금 전액을 정부가 지급 보장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검토중이다. 23년째 1인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 제2의 SVB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디지털 뱅크런이 고객의 불안 심리에서 기인하는 만큼, 정부가 은행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신뢰감'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다른기사보기